권력은 얻었지만 사랑은 잃었다. 모두가 죽고 살아남은 이는 오로지 주인공 기황후뿐이었다. 드라마는 허구임을 강조했지만 모두가 다 죽어버린 LTE급 마무리는 흡사 임성한 작가의 ‘오로라공주’를 연상케 했다.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가 51회 대장정을 순항 끝에 마무리했다. 시청률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29일 최종회는 28.7%의 전국 시청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10월, 첫 방송 당시 11.1%로 출발한 ‘기황후’는 끊임없는 역사왜곡논란과 치정에 치중한 막장전개에도 불구하고 21.9%의 평균 시청률로 줄곧 월화극 1위를 달렸다.
‘기황후’는 고려시대 원나라에 끌려갔던 공녀가 원나라의 황후로 등극한다는 실록의 짧은 설명에 기인한 작품. 그러나 제작 초 역사왜곡논란에 휘말리면서 주진모가 맡았던 고려 28대 왕충혜를 가상의 인물 왕유로 변경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대본을 집필한 장영철, 정경순 작가 부부는 드라마 제작발표회 당시 “현재 해외이민자 700만 시대인 만큼 글로벌코리아라는 관점에서 드라마를 기획하게 됐다”라고 해명했지만 ‘기황후’의 주된 전개는 ‘글로벌 코리아’와는 관계없는 몽골왕실 내 치정과 권력다툼으로 일관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권력을 얻기 위해 몽골황실에서 주술을 사용하는 모습 등을 그려 한국사가 아닌 몽골 역사까지 왜곡했다는 일부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적 책임의식은 ‘시청률’ 1위라는 성적 앞에 무릎 꿇었다. MBC는 “많은 시청자들이 즐겨 보며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라고 줄곧 해명했지만 공영방송으로서 책임의식은 부족했다. 방송 내내 헐거웠던 전개는 성급하게 마무리됐고 결국 제작진은 마지막 회, 주인공 기승냥을 제외한 모든 출연진을 사망시킨 뒤 자막으로 실제 역사를 고지했지만 시청자들의 원성은 줄어들지 않았다.
▶하지원, 지창욱만 남았다
‘막장 사극’이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기황후’가 줄곧 1위를 달릴 수 있었던 이유에는 주인공들의 빛나는 연기력이 한 몫했다. 주인공 기승냥 역의 하지원은 공녀에서 황후가 되는 승냥의 파란만장한 삶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해냈다.
초반 남장여자로 분했을 때는 털털하고 보이시했고 고려왕 왕유(주진모 분)와의 멜로는 사랑에 빠진 여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자신에게 일방적인 구애를 펼쳤던 타환(지창욱 분)과의 사랑은 정치적인 이해관계와 인간적 연민 사이에서 번민하는 모습을 표현해냈다.
뿐만 아니다. 하지원은 궁중암투가 심했던 황실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여인의 간사한 음모와 모략을 소름끼치게 표현해내며 극과 극을 오가는 감정신을 연기, ‘역시 하지원’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타환 역의 지창욱은 ‘기황후’가 발굴한 보석이었다. 극 초반 유약했던 황태제에서 승냥을 사랑하는 한 남자로, 위엄과 카리스마 넘치는 황제에서 광기와 집착만이 남은 모습을 다채롭게 연기해냈다. '웃어라 동해야' 이후 이렇다 할 작품이 없었던 지창욱은 '기황후'를 통해 자신의 이름 석자를 오롯이 알리며 차세대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