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인 5일 오전 서울광장 합동분향소를 찾은 어린이들이 헌화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황진환기자
'어린이 날'에도 세월호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안산 화랑유원지에는 이른 아침부터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서울 강남에서 합동분향소를 찾은 K 모(40)씨는 오전 7시부터 서둘러 아이들을 깨웠다.
매년 '어린이 날'이면 벌써 몇년째 놀이공원을 데려갔지만 K씨는 이날 늦잠자는 아이들을 깨워 안산 합동분향소를 가자고 했다.
"아빠 합동분향소 아! 언니 오빠들을 모셔놓은 곳 말하는 거지...."
평상시 같으면 놀이공원가자고 칭얼 거리던 소연(8)이도 미연(10)이도 이날은 달랐다.
아이들과 함께 안산 화랑유원지 정부합동분향소에 도착한 건 오전 11시 쯤.
분향소를 들어가기위해 길게 늘어선 줄에 묻혀 두 아이에 손을 꼭 잡은 K 씨는 15분쯤 기다리다 분향소에 들어섰다.
국화꽃 한송이를 손에 들고 영정들이 모셔진 제단 앞으로 두줄씩 200여 명이 늘어섰고 다시 그뒤로 두줄. 이렇게 6줄이 늘어섰다. 분향소 안에만 1,200여 명의 조문객들이 들어찬 셈이다.
제일 앞에 두줄이 조문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5분.
제일 먼저 국화꽃 한송이를 바치는 헌화. 두번째 고인에 대한 묵념. 세번째 유가족들에 대한 목례로 이어지는 조문방식이다.
목례가 끝나면 4단으로 모셔진 영정들을 오른쪽에서 왼쪽 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걸어가면서 조문을 모두 마치게된다.
K 씨는 아이들과 세번 울었다. 분향소에 들어서자 마자 국화꽃 한송이를 들었을때 울컥 눈물을 쏟았다.
그 차가운 물속에서 아우성 쳤던 아이들을 생각하는 순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눈감고 묵념할때는 또다시 아이들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며 소리없는 눈물을 흘렸고 마지막으로 하나같이 미소짓는 영정사진속의 아이들을 보며 또 흘렸다.
소연이도 미연이도 울었다. 아빠가 울기때문이 아니다. 이제는 영영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언니, 오빠들 때문일 것이다.
K 씨는 분향소를 나오면서 다시 한번 아이들의 손을 꼭잡았다. 그는 "아빠가 너희를 지켜줄꺼야"를 몇번이나 중얼거렸다.
아이들과 함께 분향소를 찾은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K 씨는 "우리 아이들을 꼭 제가 지켜주겠다는 다짐을 하고 싶었어요"라며 이날 분향소에 대한 느낌을 털어놨다.
K씨는 "어른들이 정말 못할짓을 한것 같습니다. 정말 아이들한테 할말이 없어요","이번 '어린이 날'은 아이들한테도 저한테도 정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라며 귀가 길을 서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