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망자가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적다는 KBS 보도국장의 발언이 큰 파장을 낳고 있는 가운데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8일 밤 서울 여의도 KBS앞에서 보도국장의 면담을 요구하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황진환기자
KBS에 내부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 바람으로 길환영 사장 체제가 흔들리는 모양새다.
지난 7일 KBS 입사 1~3년차 젊은 기자들이 세월호 보도와 관련된 반성문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KBS 사내 전산망에는 이를 호응하며 KBS 경영진과 보도본부 간부들을 규탄하는 글들이 연달아 게재되고 있다. 개인적인 의견을 담은 글 뿐 아니라 공채 동기 일동이나 KBS 기자협회, PD협회와 기술인협회, 경영협회 등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지난 8일, 세월호 유족들이 KBS에 항의 방문한 것에 이어 9일엔 김시곤 보도국장이 사임 표명 중 "사사건건 보도본부에 개입하며 독립성을 침해한 길환영 사장은 자진사퇴하라"고 발언하면서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거세진 상황이다.
KBS기자협회는 9일 성명서를 내고 "길환영 사장은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마지막 품위를 다하라"며 "보도 관련 간섭 내용과 청와대 압력 정황을 밝히고, 보도국장의 촉구대로 그 자리에서 즉각 물러나라"고 전했다.
"길환영 사장은 지난 해 인터넷 기사 수정 파문 당시 기자협회에 '보도에 간섭하지도 않았고, (앞으로) 간섭할 뜻도 없다'고 전달했다. 당시 기자협회는 KBS 사장의 약속이라는 권위를 존중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지만, 이번 보도국장의 발언으로 사장은 스스로 자신의 말을 뒤집고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 왔음이 드러났다"고 지탄했다.
이어 "기자협회는 길환영 사장은 이제 더 이상 사장으로서의 리더십은 사라졌다고 선포한다"며 "길환영 사장은 공영방송으로서 품위를 다하라. 스스로 행한 보도와 관련한 간섭 내용 그리고 청와대 압력 정황을 밝히고 보도국장 촉구대로 그 자리에서 즉각 물러나라"고 했다.
같은 날 KBS PD·기술인·경영협회도 '막내 기자들의 외침에 응답하라'는 제목의 공동성명서를 사내 게시판에 게재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KBS 구성원들은 비참한 심정으로 반성문을 읽고 있다"며 "그들은 현장에서 우리 모두를 대신해 비판받고 욕먹는 사람들이자 눈앞에서 침몰하는 KBS 저널리즘을 보며 가장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썼다.
또 "기술인협회, 경영협회, PD협회는 선배로서, 동료로서 먼저 반성하지 못한 점을 막내 기자들에게 정중히 사과한다"며 "KBS 저널리즘을 살리겠다는 그들의 뜻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이 시점에서 그들이 보여준 용기에 진정어린 경의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사망자와 관련한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던 김시곤 KBS 보도국장이 9일 오후 여의도 KBS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기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다. 윤창원기자
이어 보도국 간부들에게는 "이번 세월호 참사 보도는 물론이고 그간 KBS 보도가 잃어버린 신뢰에 대해 가장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사람들을 바로 당신들"이라고 꼬집으며 "막내 기자들의 요구로 합의된 12일 기자협회 토론회에 진심으로 응하라"고 요구했다.
입사 18년차인 24기 라디오PD 9인도 "길환영 사장, 당신이 해결하라!"는 성명서를 게재했다.
이들은 "KBS는 MB정권 때부터 관제방송의 적폐를 일삼더니, 급기야 재난 주관 방송사로서의 위상마저 망각하고 말았다"며 "재난보도마저 정권보위를 우선시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잃고 만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념과 정파를 떠나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마저 져버린 이런 처신이 괴물 같은 KBS의 오늘이 되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이 정권만 쳐다보며 자리보전에 급급했던 무능 간부들이 빚어낸 패륜적 인재라고 생각한다"며 길환영 사장을 향해 공개 사과와 자기반성, 공정방송을 위한 대국민 약속 공표 등을 요구했다.
기자직을 제외한 PD, 아나운서, 영상제작, 방송기술, 기획행정, IT, 콘텐츠, 영상그래픽 직군의 KBS 공채 38기 85명 전원도 '동기를 기레기로, KBS를 세월호로 만들지 마십시오'란 제목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KBS 앞에 모였다. KBS의 보도행태를 비판하고 책임자인 사장과의 면담을 요구했지만, 사장님은 끝끝내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며 "KBS 앞까지 온 국민들은 그렇게 언론사에게 문전박대 당하고 청와대로 향했다. 국민은 홀로 국가를 상대하게 됐다. 그 사이에 국민의 방송, KBS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RELNEWS:right}
이어 "이로써 모든 것이 명약관화해졌다. 동기들과 막내급 기자들이 부담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외친 그 목소리는 진실이었다"며 "현장의 기자가 낸 목소리마저 묵살되는 뉴스에 현장 날 것의 목소리가 실릴 리 없고, 대문 앞 목소리도 듣지 않는 언론사에 그런 것이 들릴 리 만무하다"고 적었다.
더불어 "어제의 참사에 대한 사장님과 간부들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