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박' 박지성이 그라운드 은퇴를 선언했다 (자료사진/노컷뉴스)
박지성(33)이 축구 국가대표팀의 TV 중계 화면에 클로즈업될 때마다 프로필과 소속팀을 소개하는 자막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박지성은 그 존재 만으로도 한국 축구와 팬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해외 프로스포츠 구단이 국내에서 엄청난 사랑을 받는 '국민 팀'으로 거듭난 사례는 많지 않다. 과거 박찬호가 뛰었고 지금 류현진이 뛰고있는 메이저리그 LA다저스가 있다. 그리고 한국인 최초 프리미어리거가 된 박지성이 맨유를 '국민 팀'으로 만들었다.
박지성이 걸어온 길은 곧 한국 축구의 찬란한 역사였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대표팀을 거쳐 2001년 1월 처음으로 성인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박지성은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우뚝 섰다.
사상 첫 16강 진출 여부가 달린 조별리그 마지막 포르투갈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고 거스 히딩크 감독의 품에 안긴 박지성의 모습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 떠올려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하는 명장면으로 남아있다.
박지성은 2006년 독일월드컵에 이어 2010년 남아공 대회에도 뛰었다. 매 대회 골을 넣으며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세웠다. 2010년에는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이끌어냈다.
'산책 세리머니'도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만한 명장면이었다.
박지성은 2010년 5월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전반 6분 만에 선제 결승골을 넣었다. 침묵에 빠진 일본 관중들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마치 산책을 하듯 그라운드를 질주했다.
'캡틴 박'으로 불리는 축구 대표팀의 심장이 어떤 존재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박지성은 한일월드컵이 끝난 뒤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에 입단했고 2005년 7월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의 눈에 띄어 맨유 유니폼을 입었다.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한국은 물론이고 아시아를 대표하는 선수로 우뚝 섰다.
박지성의 진가는 그라운드 밖에서도 빛을 발했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의 성실한 자세와 프로 정신을 높게 사며 소속팀의 젊은 선수들에게 "박지성을 롤 모델로 삼으라"는 말을 종종 전하기도 했다.
박지성이 맨유를 떠나 퀸스파크레인저스로 이적하자 평소 박지성을 가장 좋아했던 퍼거슨 감독의 손자가 한동안 할아버지와 대화를 하지 않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처럼 박지성의 이름이 국내 축구 팬들에게만 각인된 것은 아니다.
라이언 긱스가 감독대행이 되어 처음으로 맨유의 지휘봉을 잡았던 지난 4월27일 프리미어리그 노리치시티전.
맨유가 4-0 승리를 굳힌 후반 막판 팬들은 긱스와 함께 했던 옛 동료들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폴 스콜스의 이름이 나왔고 잠시 뒤에는 박지성의 이름이 올드트래포드에 울려퍼졌다.
박지성의 유럽 친정팀인 PSV 에인트호번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2013-2014시즌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 마지막 경기가 열린 NAC 브레다전에서 박지성이 후반 44분 교체되자 팬들은 응원가 '위숭빠레'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