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을 질주하는 한국 모터스포츠' CJ 슈퍼레이스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중국 상하이에서 대회를 열었다. 사진은 25일 펼쳐진 슈퍼6000클래스 결선 모습.(상하이=CJ 슈퍼레이스)
25일 중국 상하이 인터내셔널 서킷. F1 그랑프리 경주장으로 이날은 CTCC(China Touring Car Championship)가 펼쳐졌다. GM, 포드, 푸조를 비롯해 현대, KIA 등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들이 자사 양산차를 출전시키는 대회로 중국 내에서는 F1을 제외하고 가장 큰 인기를 자랑한다. 대회 기간 5만여 명의 관중이 찾았다.
한국의 대표 자동차경주대회인 '2014 CJ 헬로모바일 슈퍼레이스 챔피언십'도 함께 열렸다. CTCC 대회 기간 초청 레이스로 펼쳐진 것이다. 지난해 상하이 티엔마 서킷 개최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다.
국내 레이스를 왜 해외에서 여는 것일까. 김유상 CJ 스포츠마케팅팀 과장은 "머신과 장비 등 막대한 물류비에 3~4억 원 정도 예산이 드는 국내 대회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든다"고 귀띔했다. 슈퍼레이스는 지난 2010년 일본에서 첫 해외 대회를 연 데 이어 지난해 중국으로까지 확대했다. 올해 중국 2회, 일본 1회인 횟수를 내년에는 모두 2회씩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외 레이싱팀도 운영하는 CJ그룹은 모터스포츠에 연 4~50억 원 정도 예산을 쓴다. 김 과장은 "골프와 함께 그룹 스포츠단 예산에서 가장 많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6년부터 자동차경주에 뛰어든 CJ는 지난 9년 동안 약 300억 원을 썼다.
모터스포츠가 불모지인 국내 사정을 감안하면 꽤 많은 지출이다. 한국 자동차경주는 지난 2010년 전남 영암에서 처음 열린 F1 그랑프리가 4회 만에 좌초될 정도로 열악한 수준이다. 수백억 원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 F1 대회가 올해 취소됐다. 이런 상황에서 CJ는 어떤 이유로 모터스포츠에 막대한 금액을 쏟아붓는 것일까.
▲"모터스포츠 전성기는 반드시 온다" 일단 CJ 측은 미래를 선점하기 위한 투자라고 강조한다. 자동차산업과 레저 산업의 결정체로 꼽히는 모터스포츠가 유럽이나 미국,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충분히 성장할 가능성을 본다는 것이다. 김준호 슈퍼레이스 조직위원장은 "당장 이뤄지는 투자에 비해 수익은 나지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향후에 자리를 잡는다면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장까지 주도한다는 목표다. 국내외 모터스포츠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결국 CJ는 국제적인 대회 프로모터를 꿈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대회 개최 역시 연장선 상에 있다는 것이다. 김준호 위원장은 "국내에서만 대회를 치르기에만 시장이 넓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모터스포츠에서 기존의 강점인 문화 수출 기업의 이미지를 굳힌다는 계획이다. 이번 중국 대회에서 CJ는 모터스포츠 '한류'(韓流)라는 표현을 대대적으로 쓰고 있다. 가요와 드라마 등 연예 분야에서 중국 대륙을 강타했던 한류를 모터스포츠에서도 이루겠다는 야심이다.
'중국에서도 한류 스타' 류시원 팀106 감독 겸 선수는 일본에 이어 중국에서도 적잖은 팬들을 불러모았다.(상하이=CJ 슈퍼레이스)
한류 스타 류시원이 팀106 레이싱팀의 감독 겸 선수로 뛰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국내 대회에는 아직도 수백 명의 일본 팬들이 류 감독을 보기 위해 한국을 찾는다. 영화와 드라마, 가요 채널 등을 운영하는 거대 미디어그룹CJ는 대회 이벤트로 한류 스타들의 공연을 준비할 수 있는 힘도 갖고 있다.
오는 8월 24일 전남 영암 서킷에서 예정된 한중모터스포츠페스티벌도 같은 맥락이다. 김준호 위원장은 "한중 국교 수교일을 기념해 CTCC를 초청해 레이스를 펼치면서 각종 공연도 펼쳐 4일 동안 한여름 밤의 축제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외 대회, 브랜드 알릴 계기" 산업적 측면에서도 해외 대회는 의미가 있다. 단적인 예가 올해부터 대회에 참가한 신생팀 금호타이어의 엑스타 레이싱팀이다.
엑스타는 래퍼 레이서 김진표를 감독 겸 선수, F1 출신 일본인 레이서 이데 유지 등을 영입해 창단했다. 당초 금호타이어는 대회 타이어 업체로만 참가하다 올해부터는 아예 경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제 금호타이어도 합니다' 김진표 엑스타 레이싱팀 감독 겸 선수(왼쪽 세 번째)와 F1 출신 일본인 레이서 이데유지가 25일 CJ 슈퍼레이스 결선에 앞서 레이싱걸들과 파이팅을 다짐하고 있다.(상하이=임종률 기자)
이정웅 금호타이어 마케팅팀 과장은 "CTCC도 내년까지 3년 동안 공식 타이어"라면서 "그러나 아무래도 주요 시장이 한, 중, 일인 만큼 레이싱팀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과장은 "한국 팀 소속인 일본인 레이서가 중국에서 경기를 한다는 조합"이라면서 "소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엑스타 레이싱팀 창단으로 한국타이어와 경쟁 구도도 만들어졌다. 자회사를 통해 아트라스BX팀을 운영하는 한국타이어는 금호타이어와 함께 보다 적극적으로 모터스포츠에 기여할 수 있게 됐다. 김진표 감독은 "모터스포츠는 물론 산업적으로도 금호타이어의 가세는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최대 배기량(6200cc) 슈퍼 6000클래스에서 정상에 오른 조항후 아트리스 BX 감독 겸 선수도 "오랜만에 타이어 회사끼리 경쟁이 이뤄지게 됐다"며 금호타이어의 합류를 반겼다.
▲"한류 스타 의존보다 모터스포츠 자체 경쟁력 키워야" 하지만 아직까지 성과가 미미한 게 사실이다. 매니아 스포츠인 자동차경주가 국내에 자리잡기까는 꽤 많은 시일이 필요하다. 김준호 위원장은 "언제 투자한 만큼 수익이 날지 모른다"고 말했다.
여기에 CJ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모터스포츠 한류도 한계가 있다. 경기 자체가 아닌 스타 위주로 추진됐다는 것이다. 한 모터스포츠 관계자는 "사실 지금까지 슈퍼레이스는 류시원이라는 스타에 의존해온 게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유명인은 한계가 있고, 특히 당장 류시원이 다른 대회로 간다고 하면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실 경기 수준으로만 따지만 중국은 이미 우리를 넘어섰다"고 덧붙였다. 김진표 감독 역시 "7~8년 전만 해도 중국은 우리 모터스포츠의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 열심이었는데 지금은 정말 많이 달라졌다"고 혀를 내둘렀다.
결국은 모터스포츠 자체의 힘을 키워가야 한다는 것이다. 김진표 감독은 "연예인들이 아니라 정말 실력이 있는 감독, 선수들이 주목을 받아야 하고 김연아, 박찬호 같은 스타 선수들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레이싱 실력만 놓고 보면 한류는 유경욱 등 경쟁력 있는 선수들이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몰려든 구름 관중' 중국 모터스포츠 팬들이 25일 CJ 슈퍼레이스 결선 레이스에 앞서 피트로 내려와 경주용 차량을 직접 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상하이=슈퍼레이스)
일단 올해 슈퍼레이스의 중국 대회는 큰 문제 없이 마무리가 됐다. 스톡카 슈퍼6000 클래스는 조항우의 동료 김중군이 2위, 김동은(인제 레이싱)이 3위에 올랐다. 1400cc초과 5000cc미만 양산차량들이 벌이는 GT클래스는 쉐보레 레이싱팀 이재우 감독과 탤런트 레이서 안재모가 1, 3위를, 정연일(팀106)이 2위에 올랐다.
중국 자동차경주협회와 CTCC 관계자는 "한국 스톡카의 배기음에 놀랐다"면서 "앞으로 한중 모터스포츠가 발전할 계기가 될 것"이라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김준호 위원장도 "중국 관중의 열화와 같은 성원이 고무적"이라면서 "큰 시장이 되는 만큼 중국 개최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CJ 관계자는 "모터스포츠에 투자하는 금액으로 야구나 농구단 등을 운영할 수도 있다"라면서도 "그러나 결국은 문화, 산업까지 아우르는 선진 스포츠의 도래는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CJ의 무한 도전이 과연 어떤 결실을 맺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