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회심의 카드로 내민 안대희 후보자가 ‘전관예우’ 파문으로 전격 사퇴하는 바람에 후임 총리를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멘붕’에 빠진 청와대와 새누리당 내에서는 이런저런 인물이 하마평에 오른다.
청와대와 여당은 집단 사고(Group Thinking)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판사와 검사 등 법조인 출신보다는 정치인과 학자 중에서 고르는 게 무난하다는 의견을 개진한다.
특히 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잘 알려진 인물 중에서, 그것도 정치인 중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총리 후보가 두 번씩이나 청문회에 서보지도 못하고 낙마하는 바람에 겁이 난다”며 “아마도 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서는 정치인이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용준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과 안 후보자에 이어 후임 총리가 또 다시 낙마할 경우 후폭풍은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에서는 청와대 인사검증팀을 믿을 수 없기에 언론에 등장한 인물 가운데 국정 경험이 있으면서도 화합형이면 괜찮지 않느냐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새누리당에서 찾는다면 누가 적임자일까?
◈김무성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김무성 전 원내대표. 윤창원 기자/자료사진
김무성 전 원내대표다.
김 대표는 오는 7월 14일 치러지는 새누리당 당권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정도로 새누리당을 대표하는 정치인 가운데 한 명이다.
지난 2012년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가 이런저런 문제로 곤경에 처하자 김무성 의원을 선거대책총괄본부장으로 앉히면서 얽힌 실타래들이 하나둘 풀렸다.
그의 특장인 어려운 사안에 대한 판단력과 정리 감각이 뛰어나고 의원들만이 아닌 당내 중간 당직자들까지의 의견을 들어 결정하는 소통의 정치인이라는 평을 듣는다.
실제로 새누리당에서는 김 의원을 따르는 의원들이 현재로선 가장 많다.
그는 또 김영삼 정권 시절 40대 초반의 나이에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맡아 YS 정권 초창기 사정과 개혁작업을 진두지휘했다.
94년에는 내무차관을 맡아 지방행정 개혁과 지방자치제 도입을 준비했다.
김영삼 정권 시절 5년 동안 그는 젊은 실세그룹에 속했다.
김영삼 정권이 집권 1년차인 1993년부터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 국정의 모든 분야에 걸쳐 전방위적인 사정과 개혁작업을 몰아붙일 때 김 의원은 그 중심에 있었다.
그의 이런 경험은 박근혜 대통령이 신임 총리에게 요구하는 부정부패와 관피아 척결 방침과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또 여당 원내대표와 국회의원 5선의 경력은 정무적 감각과 함께 입법부와 행정부의 관계와 업무를 꿰뚫어 보는 안목을 키웠다.
이명박 정권이 힘겨워하던 2010년 5월부터 2011년 5월까지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맡아 원활한 당청관계를 구축하고 야당과도 소통을 하며 야당에겐 명분을 주고 실리를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민주당의 카운터파트너였던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김무성 의원은 남의 말을 일단 듣는 사람이다”면서 “그가 총리를 맡으면 정부와 당, 국회와의 소통은 괜찮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김무성 의원에 대한 신뢰 관계가 그다지 깊지 않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무대’(무성대장의 애칭)와 서먹서먹한 시기가 너무 길었고, 박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전 때때로 직언을 서슴지 않아 부딪치기도 했다.
무대가 오죽했으면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날인 지난 2012년 12월 19일 “나는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직을 맡지 않겠으며 백의종군한다”고 발언하고 훌쩍 떠나버렸을까.
그는 18대,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못해 한 번은 무소속으로, 한 번은 불출마에 따른 보궐선거로 여의도에 입성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무성 의원과의 좀 어색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그를 총리로 기용한다면 그가 대통령 후보가 될 자격이 있는지를 제대로 시험해볼 수 있고, 7월 중순의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자신이 미는 중진을 당 대표로 기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점이 있다.
오는 7월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놓고 친박계와 '한판승부'를 예고하고 있는 김 의원을 기용할 경우 비박계에 손을 내미는 모습도 연출할 수 있다.
◈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다음은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다.
그는 행정고시를 통해 경찰에 입문해 충남 경찰청장을 끝으로 경찰 생활을 접고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그는 김영삼 정권 시절 최고 실세 최형우 전 내무장관이나 당시 실세들과의 관계가 워낙 좋고 능력도 인정받아 경찰청장이 거의 보장되다시피 했었다.
그는 충남도지사 시절, “YS 정권에서 경찰청장이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으나 정치에 입문하려면 지방경찰청장에서 마쳐야 한다는 생각에 따라 정치권에 들어갔다”며 “그래야 큰 정치 꿈을 꿀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선 충남도지사를 성공리에 역임하는 등 행정 경험도 탁월하다.
이명박 대통령에 맞서 세종시의 과학비즈니스 벨트 전환을 강하게 반대하며 사표를 던지는 등 강단도 있다.
이명박 정권에 미운털이 박혀 6개월가량 주변을 샅샅이 뒤지는 내사를 받았다고 회고했다.
당시에 마음 고생이 너무 자심해 하루에 두세 갑의 담배를 피웠고, 건강을 헤쳐 암이라는 생사를 넘는 고통의 시기를 겪었다.
그는 오뚝이처럼 일어났으며 2013년 보궐선거로 국회에 진입했다.
2014년엔 새누리당의 원내대표도 거머쥐었다.
정치력에 정무적 감각도 뛰어나다.
입법부와 행정부, 경찰, 지방자치단체 업무를 잘 파악하고 있어 국정개혁과 관피아 척결이 주요 업무가 된 총리 자리에 그만한 적임자를 찾기도 쉽지 않다.
그의 고향은 충남이어서 법조인과 PK 출신들이 즐비한 박근혜 정권의 핵심자리에 비 영남 출신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다.
충남과 충북 도지사 선거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문제는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다시 선출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 이인제 의원
이인제 의원. 자료사진
다음 총리 후보로는 이인제 의원이다.
그 역시 고향이 충남으로 판사와 노동부 장관, 경기도지사, 국회의원을 지낸 명실상부한 입법과 행정부, 사법부를 두루 거친 경험이 풍부한 정치인이다.
추진력과 강단이 보통 단계를 넘어 웬만한 사람이 상대하기가 버거울 정도다.
지난 1997년 한나라당이 이회창 전 총리를 대선 후보로 선출한 뒤 이 후보의 지지율이 10%대로 급락하며 요동치자 탈당하고 당을 만들어 대선에 출마했다.
‘그가 만약 9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다면 김대중 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는 한나라당과 보수 진영의 논리에 지금까지도 시달리고 있다.
그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인 새천년민주당에 둥지를 틀었으나 2002년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패하자 또 탈당했다.
이인제 의원은 당시에 청와대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민주당의 경선이 좌지우지 된다며 경선 후보를 중도에 사퇴했다.
박지원 의원은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노무현 전 해수부 장관을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만들기 위해 광주지역에서 '작업'(이른바 공작정치)을 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노무현 후보와 노 대통령을 강력 비판한 그의 이력 때문이었던지, 이인제 의원은 노무현 정권 시절 기소돼 재판을 받았고 결국 무죄로 풀려났다.
그는 지금도 “노빠”(노무현 전 대통령 추종 세력)라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리고 지난 2012년 탈당했던 새누리당에 15년 만에 돌아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했다
선거 당시 박근혜 후보는 이인제 의원에게 “꼭 본인 선거처럼 열심히 하고 계시더군요.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7월 중순의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의지를 갖고 있으나 3위권 당선이 쉽지 않음을 알아채고 총리 발탁을 내심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새누리당 탈당과 입당 이력으로 인해 국민 여론이 별로 좋지 않다.
박 대통령이 그런 약점을 감싸서 그를 총리로 낙점하기가 쉽지 않겠으나 국정 운영에는 역량을 발휘할 후보다.
◈ 김문수 경기도지사
김문수 경기도지사. 자료사진
마지막으로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새누리당 내에서도 총리 적임자라는데 이론이 별로 없다.
두 번의 도지사 경력은 그의 청렴하고 강직한 이미지에 행정가로서의 능력까지 보탰다.
새누리당 내에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그만큼 한 인물은 이재오 의원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
그는 박정희 정권 시절 박정희 퇴진 운동을 주도했다.
그의 이러한 삶의 족적으로 말미암아 박근혜 대통령과는 너무 다른 길을 걸으며 살았고, 사안을 바라보는 안목도 크게 다르고 괴리감이 상당하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특히 대표적인 친이명박계 인사로 알려져 있다.
박 대통령이 김문수 카드를 쓰려한다면 이러한 점을 감수해야 하고 때론 극복해야 한다.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잦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