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 (사진=윤성호 기자)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해양경찰청이 세월호 선체가 아직 물 밖에 떠있던 '골든타임'에 "아직 구조단계는 아니고 지금 지켜보고 있는 단계"라고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구조자수를 두고 오락가락하고, 안전관리 책임을 피하기 위한 조치를 주문하거나 구조에 동원된 헬리콥터를 이주영 해양수산부장관의 이동을 위해 불러내려고 하는 등 사고 초기 초동 대응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 청와대, 생명 구조보다는 인원 파악과 대통령 보고에만 관심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은 해양경찰청 기관보고가 열린 2일 해양경찰청 상황실 주요 라인의 사고 당일 녹취록을 전격 공개했다. 녹취록은 세월호가 침몰한 지난 4월 16일 해경이 청와대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안전행정부, 국가정보원 등과 통화했던 내용으로, 사고 초기 정부기관의 허술한 대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선 해경과 청와대의 핫라인 녹취록을 보면 청와대는 사고 당일 오전 9시 20분부터 세월호가 현재 침몰 중이라는 보고를 받기 시작했다. 오전 9시 42분에는 청와대에서 '지금 구조작업을 하고 있나요?'라고 묻자 해경 상황실은 "지금 아직 구조 단계는 아니고요 지켜보고 있는 단계입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새정치연합 우원식 의원은 "청와대와 해경은 '골든타임' 침몰 순간에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 때문에 불안에 떨고 있는 시민과 국민들이 여러 곳에 전화하는 상황에도 상황 판단을 못하고 이러고 있었다"고 질타했다.
세월호가 침몰한 직후에도 청와대는 구조를 채근하기보다는 인원 파악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는 오전 10시 10분 "빨리 인원만 확인해 가지고 다시 한번 전화를 주시고요"라고 주문했다.
청와대는 이어 오전 10기 25분 박근혜 대통령의 첫번째 메시지를 전달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단 한명도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여객선 내에 객실과 엔진실 등을 철저히 확인해 누락되는 인원이 없도록 하라는 내용이었다.
해경과 청와대는 이후 세월호에 탑승한 인원을 두고 혼선을 거듭했다. 당일 '전원 구조' 오보로 한바탕 소동을 겪고 나서도 청와대는 오후 2시 30분까지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해양경찰청 (사진=박종민 기자)
해경은 오후 1시 4분 국가안보실 상황반장에게 "현재까지 확인된 것으로 생존자 370명이랍니다"라고 보고를 했다. 그러나 불과 26분 만에 "약간 중복이 있다"고 말하더니 오후 2시 6분에는 "370명은 잘못된 보고"라고 말했다. 이어 2시 24분에는 "166명에 사망자는 2명"이라고 생존자 숫자를 바꿨다. 청와대는 이에 "166명이라고요? 큰일났네. 이거 VIP까지 보고 다 끝났는데"라고 말했다.
우원식 의원은 "처음 370명에서 166명으로 수정하면 200여명이 사라진 상황인데 국민의 안위를 걱정하는 청와대라면 생명은 어떻게 된 건지 물어봐야 한다"며 "우리 청와대는 국민의 안위보다는 대통령에 대한 보고를 걱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의전에 신경 쓰는 해경…책임 피하려는 은밀한 조치도 사고 당일 실종자 구조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당일 오후 12시 50분 119 수난구조대가 수난구조 전문요원이 헬기를 탄 채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고 여러 차례 해경에 알렸지만 해경은 "지금 우리도 아직 준비중인 것 같다"면서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17일 새벽에도 해군 해난구조대는 잠수를 시도하지도 못한 채 오전 1시 6분에 현장에서 철수했다. "현장 조류가 너무 세서 위험을 각오하고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의욕을 보이던 해경도 한 시간 뒤 현장을 떠났다.
해경은 당시 구조 작업에 동원된 헬리콥터를 이주영 해수부장관의 탑승을 위해 이동시키는 등 구조보다는 '의전'에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해경의 이런 시도는 현장 직원에 의해 1차 제지됐지만 해경은 거짓말까지 해가며 헬기의 이동을 요구했다.
해경 본청 상황실은 "해수부 장관이 무안공항으로 가신다고 한다"며 "512호 헬기를 지금 임무 중지하고 무안공항에 가서 연료 수급받고 대기하라"고 하자 현장 직원은 "아니, 구조하는 사람을 놔두고 오라고 하면 되겠냐"고 반발했다. 이에 상황실은 제주해경청에 전화를 걸어 "장관 편성차 간다고 이동한다고는 얘기하지 말라"면서 헬기가 무안공항으로 가도록 조치했다.
또한 기상 상황 때문에 규정상 헬기를 띄울 수 없다는 해경 직원에게 김석균 해경청장의 이동을 위해 준비하라고 채근하기도 했다. 이에 직원은 "저희가 직접 구조임무보다는 청장님 입장할 수 있게끔 준비하라는 거냐"고 재차 확인했다.
세월호 침몰과 초기 구조활동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목포해경 (사진=황진환 기자)
특히 수백명의 인명이 물 속에 잠기고 있는 급박한 상황에도 세월호 안전점검의 책임을 피하기 위한 은밀한 조치를 요구하는 대목도 있다. 세월호가 완전 침몰하기 직전인 당일 오전 9시 58분 해상안전과장은 부하 직원에게 "출항 전에 어떤 조치를 해서 보냈는지, 원래 여기서 안전관리하게 돼있잖아"라고 말하더니 "그런 거, 은밀하게 한번 해놓고 우리가 얼마나 안전점검 주기하고 그런 거 다 한번 파악 좀 해놓아"라고 지시했다. {RELNEWS:right}
이밖에 세월호 사고 원인을 둘러싸고 논란이 될만한 대목도 녹취록 곳곳에서 발견된다. 해경 본청 상황실은 당일 오전 11시 4분 사고 원인을 묻는 국무총리실의 질문에 "암초 위를 올라탔다고 하는데 정확하게 그 이야기는 하면 안 될 것 같다"고 보고했다. 오후 3시 30분에는 수색구조과에서 사고 해역의 지질을 확인해 달라고 하자 CVMS 상에서 봤을 때는 바위가 있기는 한데 정확하게 알아보시려면 목포로 전화해서 물어보셔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해경 대테러 부대에서 사고 원인을 확인하려는 대목에서는 문맥만으로는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운 선문답이 오가기도 했다. 대테러계장은 일단 폭발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물을 일단 채취하라고 지시하고 나서 "혹시나 '자기'도 한번 검사할 수 있으면"이라고 주문했다. 이에 직원이 "예, 그것도 한번 보겠다"고 답하자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요"라고 다시 확인만 하고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