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현지시간) 한 남성이 상가의 물건을 챙겨 긴급히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오늘 속눈썹 하나 팔았어요. 어떻게 해요."
19일(현지시간) 찾은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 한인 '뷰티 서플라이' 상점 '킹스 뷰티' 여주인 유진이(44)씨의 어머니는 약탈 사건 후 손님이 뚝 끊겼다며 울상을 지었다.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18)이 백인 경관 대런 윌슨(28)의 총에 맞아 사망한 다음날인 10일 오후 늦게부터 시작된 시위를 틈타 도둑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미국 사회가 또 다른 흑인 폭동으로 번지는 것 아니냐며 사태를 주시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유 씨의 가게는 약탈 첫날인 11일 오전 1시께 습격을 받았다. 자동차로 3번이나 유리창을 들이밀고 들어온 남녀 흑인 4명은 유 씨의 가게에 있던 값나가는 물건을 모조리 차에 싣고 달아났다.
뷰티 서플라이는 가발, 신발, 매니큐어, 귀고리, 목걸이 등 여성 미용과 관련한 모든 물품을 지칭한다.
퍼거슨 지역에서 한인이 운영하는 미용 상점만 20곳으로 손님의 99%는 흑인이다.
유 씨의 가게는 유리창 뒤 제법 무거운 선반을 비치한 덕분에 시간에 쫓긴 약탈범들이 서둘러 도망가느라 피해가 적었다.
그래도 피해액이 최대 2만 달러(약 2천40만원)에 달한다고 유 씨는 말했다.
개업 3년차인 그는 "조금씩 훔쳐가는 좀도둑이야 종종 있었지만 이번처럼 작정하고 가게를 턴 도둑은 없었다"며 "폐쇄회로(CC)TV를 보니 남녀 모두 얼굴을 가렸지만 우리 가게를 잘 아는 이들로 비싼 물건만 챙겨 달아났다"고 한숨을 쉬었다.
상점을 순찰하던 경찰의 신고로 약탈 사실을 안 유 씨는 "폭동이 났다는 소식을 들어 상점이 털렸다는 소식을 듣고도 당장 가지 못하고 해가 밝은 오전 5시에서야 가게에 도착했다"며 "경찰의 통지를 받고도 늦게 왔다며 비협조적이라는 비난도 들었다"고 당시를 되짚었다.
상점을 닫을 수 없어 가족이 힘을 모아 산산조각이 난 창문을 떼어낸 뒤 그 자리를 서둘러 나무로 막고 흐트러진 진열장을 정리함과 동시에 영업을 다음날 재개했다던 유 씨는 "동네가 괜찮아 장사가 잘되는 편이었는데 치안 불안으로 이후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 장소인 퍼거슨시 웨스트 플로리샌트 거리에서 5㎞ 떨어진 조원구(68) 세인트루이스 한인회장의 미용 상점도 같은 날 오전 손해를 입었다.
창문을 뜯고 범인들이 들어와 물건을 훔쳐간 바람에 조 회장 역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경호업체의 벨이 울리면서 경찰에 신고가 들어갔지만 범인을 잡기에는 이미 늦었다.
조 회장은 "그래도 다 털린 다른 한인 미용상점과 한인 휴대전화 상점보다는 나은 편"이라며 "여기에 정착한 지 15년째인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브라운 사망 후 웨스트 플로리샌트 거리 주변은 밤낮으로 시끄럽지만 그 주변을 벗어나면 그렇게 불안하지는 않다"며 "바깥에서 생각하는 만큼 위험하지 않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다만 야간 통행금지령도 있었고 밤에 움직이는 것은 좋지 않아 삼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과 미국 전역에서 걸려오는 전화로 최근 상황을 바쁘게 전하는 조 회장은 "퍼거슨시는 원래 조용한 곳이고 이곳의 흑인도 근면하게 일을 해 온 모범적인 동네"라며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긴 뒤 약탈로 피해를 당한 한인들이 어떻게 생계를 꾸릴지 막막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 회장은 앞으로 약탈 재발 방지와 흑인 사회와의 유대를 강화하고자 미용 업체를 운영하는 한인 업주 대표들과 브라운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세인트루이스 광역권에 거주하는 한인 동포는 1만명이 채 안 되는 수준으로, 대부분 퍼거슨에서 떨어진 서쪽 지역에 살고 가게만 이곳에 둔 이들이 많다고 조 회장은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