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야, 금 인형 말고 금메달 선물 줄게' 펜싱 간판 남현희는 지난해 딸 하이를 출산한 뒤 2개월 만에 훈련에 복귀해 자식의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아시안게임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자신의 SNS에 올린 딸과 함께 한 모습.(사진=남현희 트위터)
"아이가 너무 보고 싶어요."
딸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날카롭던 눈빛이 변했다. 승부사의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영락없는 엄마의 얼굴이었다.
펜싱 국가대표팀의 인천 아시안게임 미디어데이가 열린 27일 태릉선수촌. 여자 플뢰레 간판 남현희(33, 성남시청)에게 쏟아진 질문은 출산 후 경기력에 관한 것이었다.
지난 2011년 결혼한 남현희는 지난해 4월 딸 공하이를 얻었다. 하지만 쉬는 것도 잠시, 출산 2개월 만에 다시 검을 손에 쥔 남현희는 지난해 9월 대표팀에 복귀했다. 올해 초 부다페스트 월드컵(A급)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거두며 건재를 확인했다.
다만 이 종목 세계 최강을 다투는 남현희임을 감안하면 조금은 아쉬운 결과. 열심히 훈련했지만 전성기 컨디션을 되찾기가 쉽지 않았다. 남현희는 "그동안 부상에서 회복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출산 후 회복은 몇 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경기력이 좋아지긴 했으나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다. 남현희는 "머리로는 생각을 하는데 몸이 따라가지 못한다"면서 "전에는 느낌이 왔을 때 10번 중 8∼9번은 찔러 성공했는데 지금은 5번 정도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 펜싱계를 떨게 했던 '땅콩 검객'의 명성이 출산 후유증에 떨어질 위기.
하지만 이번 아시안게임 우승을 양보할 생각은 없다. 자신보다 딸 하이 때문이다. 엄마로서 자랑스러운 모습을 딸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남현희는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많이 도와주셔서 복귀가 가능했다"면서 "그래도 하이랑 떨어져 있어서 미안한 마음이 있다. 그런 만큼 최선을 다해 금메달을 따 하이 목에 걸어주고 싶다"고 다부진 각오를 드러냈다.
이번 대회는 2002년 부산 이하 남현희의 4회 연속 아시안게임 출전이다. 첫 출전인 부산 대회만 단체전 금메달을 땄을 뿐 2006년 도하, 2010년 광저우는 모두 개인전까지 2관왕에 올랐다. 아시아에서는 사실상 적수가 없다.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라 부담도 있지만 4번째 참석하는 만큼 노련한 경기 운영을 펼치겠다"고 다짐한 남현희. '땅콩 검객'에서 '엄마 검객'으로 변신한 관록이 묻어나는 각오다. 과연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딸 하이에게 찬란한 금메달 선물을 안길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