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장고 끝에 시리아 공습이라는 '초강수'를 꺼내 들었다.
'이슬람 국가'(IS)의 주 활동 무대인 이라크를 공격하는데 그치지 않고 근거지에 해당하는 시리아까지 소탕해 극단주의 테러세력의 뿌리를 뽑겠다는 의지를 과시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9.11 테러 13주년을 하루 앞둔 10일(현지시간) 정책연설에서 IS를 겨냥해 "어디에 있든 격퇴시킬 것이며 시리아 공습을 주저하지 않겠다"며 "미국을 위협한다면 피란처(safe haven)를 찾지 못할 것"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1년전 민간인들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하는 시리아 아사드 정권에 대한 공습 결정을 의회에 떠넘겼다가 이를 철회했던 태도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 오바마 "IS에 피란처 없다"…IS 대응 적극적 공세 전환
미국이 이라크에 국한된 공습을 시리아로 확대하는 것은 IS에 대한 미국의 군사개입이 제한적 공세 기조에서 적극적 공세 기조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이후 견지해온 대(對) 중동전략의 중요한 변화를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1년 12월 이라크에서 철군한 이후 중동지역에서의 군사개입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성공적인 '종전'(終戰)을 했다고 선언한 마당에 다시 중동지역 전쟁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피하려는 기류가 강했다.
여기에는 이라크·아프간전 종전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오바마 대통령의 개인적 소신이 작용한데다 미국 내 여론도 신(新) 고립주의로 불릴 정도로 해외 군사개입에 소극적으로 흘렀기 때문이다.
지난달 초 IS가 발호한 이라크에 대해 군사행동을 결정할 때도 미군은 '제한적 공습' 기조를 유지하고 이라크 정부군과 쿠르드 군을 지원하는 역할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IS의 격렬한 저항 속에서 이라크 내전이 장기화되고 지난달 하순부터 2주 간격으로 미국인 기자 두명이 참수되는 천인공노할 사건이 돌출하면서 미국 내 분위기가 돌변하기 시작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소극적 외교대응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현재의 제한적 공습 기조를 넘어서는 강경한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정치적 압박감이 커진 것이다.
특히 두 기자 참수 사건을 거치며 미국내 여론이 시리아 공습을 단행하라는 쪽으로 급속히 기울었다. 지난해 9월초 시리아 공습 논의 때와는 달리 미국 워싱턴포스트(WP)와 ABC방송이 9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시리아 공습에 찬성하는 응답자 비율이 65%에 달할 정도였다.
그렇지 않아도 대외정책에서 '우유부단'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여론의 흐름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시리아 공습을 결심하게 만든 결정적 배경이 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또 IS가 알 카에다 이상으로 미국 본토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도 작용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IS의 안식처로 볼 수 있는 시리아를 공격하지 않고는 세력을 근본적으로 뿌리뽑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 '다자주의적 개입' 유지…이라크 정부군·시리아 반군 지원
오바마 대통령이 IS에 대한 적극적 공세기조로 돌아섰지만 '다자주의적 개입'과 '배후 주도'(leading from the behind)라는 기존 대외정책의 원칙은 유지하고 있다.
미국이 독자적으로 군사행동을 하는게 아니라 동맹·우방국들과 국제적 연합전선을 형성해 대응하고, 미국이 직접 작전에 나서지 않고 이라크 정부군과 시리아 반군을 지원하는 형태로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중심으로 한 유럽 동맹과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아랍에미리트(UAE) 공화국 등 중동 우방들을 연합전선에 참여시키기 위해 외교적 교섭활동을 벌이고 있다. 미국의 IS 격퇴전략에 참여할 의사를 표명한 국가는 현재 38개국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 군사행동에 참여할 수 있는 국가의 숫자는 아직 불투명해 보인다.
이 같은 동맹·우방국들의 지원 속에서 미국은 이라크와 시리아라는 '두개의 전선'에 대해 차별화된 대응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이라크 정부군과 쿠르드 군이 작전을 주도하고 미국과 동맹국들은 공습을 강화하는 형태로 지원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궁극적으로 이라크의 신정부가 각 정파를 아우르는 강력한 통합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인식을 깔고 있는 셈이다.
시리아에서는 온건주의 반군의 군사역량을 강화하고 지원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수십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아사드 정권과는 철저히 선을 긋고 반군이 군사작전 과정에서 적극적 역할을 하도록 도울 것이라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의회에 시리아 반군을 무장하고 훈련하는 데 필요한 5억 달러의 예산지원을 요청했다.
주목할 점은 앞으로 미국이 언제, 어떤 형태로 시리아 공습을 강행할 것인가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날 IS를 상대로 '조직적인 공세'(systematic campaign)를 펴겠다고 밝혔다는 점에서 조만간 이라크와 시리아 전선에서 동시다발적인 공습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또 미국이 먼저 이라크 내에서의 공세를 강화한 뒤 본거지인 시리아 국경으로 넘어가는 IS세력을 '추격'하는 형태로 공습을 개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공습'만으로 IS 발본색원 의문…국제적 연합 결속력 미지수
그러나 워싱턴 내에서는 이 같은 전략이 과연 실제로 IS를 격퇴할 수 있느냐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현실적으로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고 공습만으로 IS의 근거지를 소탕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공습표적에 대한 정보와 조준능력이 확실치 않으면 민간인들에 대한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가 뒤따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외교소식통은 "단순히 외관상의 건물뿐만 아니라 IS 지도부와 조직을 일망타진하려면 지상군 투입이 필수적"이라며 "잘못하면 민간인 희생만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시리아 정부의 요청없이 공습을 감행하는데 따른 국제법적 논란이 부각될 가능성이 있고 시리아 정부군의 군사적 반발을 야기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 미군과 동맹국들의 지원하에 군사작전을 주도해야 할 이라크 정부군과 쿠르드 군의 작전수행 능력이 약한데다 시리아 반군 역시 분열돼있어 통합적인 군사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동맹·우방국들도 어느 정도 결속력을 유지할지도 두고 봐야 할 일이다. 같은 미국의 우방이지만 카타르와 쿠웨이트는 이슬람 운동을 둘러싼 내부 분열로 IS 격퇴에 적극적이지 못하다. 터키는 쿠르드 자치구와의 갈등으로 원만한 협력체계를 유지할지 미지수다.
중동지역 내부에 존재하는 IS에 대한 자금줄과 지원세력을 어떤 식으로 차단할지도 어려운 과제라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