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은 중동과 우크라이나 사태에 시선이 고정된 미국 외교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줬다.
연설의 대부분을 이슬람국가(IS) 격퇴, 대(對) 러시아 견제, 이란 핵협상을 언급하는데 할애했고 아시아는 단 한 차례만 거론됐다. 그나마도 한반도와 북핵문제는 아예 언급되지 않았다.
이는 그만큼 IS와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등의 불'이 되고 있기 때문이지만 현 오바마 외교의 정책적 우선순위와 비중을 반영하고 있다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대체적 시각이다.
특히 중동과 우크라이나 사태에 밀려 2기 오바마 행정부가 표방해온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전략은 사실상 실종된 것 아니냐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연설에서 가장 큰 방점을 찍은 대목은 'IS와의 전쟁'이었다. 유엔 총회라는 무대에서 국제사회를 향해 'IS 격퇴' 전략에 동참해달라고 공식 호소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세계가 전쟁과 평화의 기로에 서 있다"며 "오늘 이 자리에서 더 많은 국제사회가 IS 격퇴 노력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는 아랍 5개국과 함께 시리아 공습을 결행하기는 했으나 전통적 맹방이 참여하는 엄밀한 의미의 국제연합 전선이 제대로 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시리아 정부의 승인 없이 이뤄진 이번 공습을 놓고 국제법적 논란이 대두되면서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국제사회의 확실한 지지라는 명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는 지난해 5월 웨스트포인트 연설에서 이라크·아프간 전쟁의 성공적 '종전'을 강조하며 군사력 사용을 자제하겠다고 선언했던 태도와는 분명히 달라진 것이지만, 지상군 투입 등 주도적인 군사개입을 꺼리는 기존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교소식통은 "미국이 단독으로 행동하지 않고 국제연합군의 형태로 개입하겠다는 다자적 개입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IS 대응의 연장선에서 주목할 점은 현재 교착상태인 이란 핵협상을 언급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며 "이란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세계에 확인시키고 미국은 이란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하는 해법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IS 격퇴전략에 올인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중동의 맹주인 이란의 군사적 협력이 필요한 상황인식 속에서 양국관계의 최대 걸림돌인 핵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메시지를 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강조한 또 다른 현안은 우크라이나 사태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야기한) 러시아가 전후질서를 흔들고 있다"고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크림반도 강제합병을 계기로 거침없이 패권확장 드라이브를 거는 러시아를 확실히 견제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시아를 유일하게 언급한 것은 역내 분쟁의 방지라는 맥락에서였다. 해상충돌 예방법규를 준수하고 국제법에 따라 영유권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주변국과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는 중국을 겨냥한 발언이지만 크게 힘이 실리지는 않은 듯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날 한반도 상황과 북핵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지난해 유엔총회 때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핵문제를 안고 있는 이란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면서도 북한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외교소식통은 "현재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북한문제에 신경쓸만한 정신적 여유가 없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이는 그만큼 오바마 행정부 내에 '북한 피로' 현상이 심화되면서 북핵문제에 대한 관심도가 크게 떨어져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여기에 북한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태도가 한층 강경해진 것도 영향을 미치고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억류자 석방을 위해 전직대통령에 해당하는 최고위급 특사를 요구하고 나서자 미국은 불쾌감을 표시하며 유엔 총회 계기에 북한인권을 정면 거론하며 각을 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