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때아닌 '석패율제' 논란으로 시끄럽다.
지난해 상반기 석패율제 도입에 대해 한나라당과 당시 민주당(현 민주통합당)이 적극적으로 도입을 추진했지만, 중소 정당들이 일제히 반대하면서 무산됐다가 최근 4월 총선을 앞두고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석패율제는 선거에서 불리한 지역에 출마해 떨어진 후보를 비례대표 몫으로 뽑아서 구제해 주는 장치로 고질적인 지역구도를 깰수 있는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여야는 도입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으며, 26일 열리는 공직선거법 개정 소위원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를 할 예정이다. 거대 정당이지만 현실적으로 영.호남 지역구도에 기댄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전국정당을 지향하고 있어 석패율제 도입을 원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문재인, 문성근, 이학영 후보 등이 이에 대해 반대 입장을 보였지만 최근에는 조건부 찬성쪽으로 기울고 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난 20일 트위터를 통해 "국회 정개특위에서 나온 이번 석패율제 안은 두가지 요건(정당명부 비례대표제 입법 약속, 진보정당도 같은 혜택)이 모두 갖춰지지 않아 찬성하기 어렵다"고 반대쪽에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24일에는 "석패율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논쟁을 지켜보면서 무조건 반대는 곤란하다고 생각해 글을 썼다. 두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는 강조점에는 변함이 없다"며 미묘한 입장 변화를 보였다.
문성근 최고위원도 25일 CBS에 출연해 "근본적인 개혁은 아니고 어떻게 보면 임시방편이라고 할 수도 있고 또 비례대표의 취지에 역행되기 때문에 좋은 제도라고 보지는 않는다"며 "다만 민주진보진영이 다수 정당이 된 다음에 독일식정당명부제로의 개정을 노력한다는 전제하에 협의가 되면 검토해 볼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석패율제가 지역구도를 해소하기 위한 온전한 제도는 아니더라도 차선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의 반발은 여전하다.
노회찬 대변인은 "석패율제 도입시도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승자독식의 현행 선거를 유지하기 위한 담합에 기초하고 있다"며 "비례대표 2,3석으로 취약지역 석패후보를 구제하는 식으로 지역주의 폐해가 완화될 것이라 말하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문 이사장 등이 단 전제조건에 대해서도 "석패율에 무슨 조건을 단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면서 "무엇이 진정한 정치개혁의 길인지 국민 앞에서 철저하게 검증할 공개토론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또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내년부터 들어서는 새 정권하에서 독일식 제도를 정말 추진한다고 하면 올해 석패율을 도입할 이유가 없다"며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을 요구했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도는 비례대표 의원 숫자를 대폭늘려 권역별 정당의 득표율을 감안해 비례대표 의원을 할당하는 것이다. 야권에서 석패율제를 놓고 팽팽하게 맞서는 것은 올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은 이번 총선에서 불모지인 영남지역에서 몇석이라도 건져야 콘크리트같은 지역구도를 다소나마 깰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를 발판으로 대선에서 항상 불리하게 작용했던 영남지역에서 표 차이를 줄이면 정권교체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나라당도 같은 논리로 야당의 텃밭인 호남에서 일부 지역구도에 균열을 낼 필요성이 있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다만 이번 총선에서 각종 악재로 크게 밀릴 것으로 보고 있어 민주통합당만큼 적극적이지는 않다. 통합진보당의 석패율제 도입 반대에는 진보성향 유권자들의 표가 흩어질수 있다는 우려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석패율제가 직접적으로 의석수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사표방지 심리로 거대 정당으로 표가 쏠릴 개연성이 있어 전체 득표율에 영향을 줄수 있다. 이럴 경우 정당 득표율에 맞춰 배분되는 지역비례 대표 의원 숫자가 줄어들 수도 있다. 통합진보당이 "야권연대에도 악영향을 줄수 있다"며 경고하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수 있다.
결국 석패율제도가 야권연대 협상에 앞서 풀어야 할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는 셈이다.
[BestNocut_R]통합진보당이 최근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지역별 득표율이 그대로 의석수에 반영돼 민주주의 원칙에 가장 충실한 제도라는 게 학계의 일치된 의견이다. 이 제도는 명분을 떠나 소수정당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다 준다.
심상정 대표는 "2004년도에 민주노동당이 13% 정당 지지를 얻었는데 그대로 하면 한 40석을 얻어야 되는데 10석밖에 못 얻었다"며 "정당명부제 도입으로 의석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민주통합당도 이 제도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선거구제를 바꾸는 등 개헌과도 맞닿아 있어 당장 도입이 어렵다는 의견이다.
이에 따라 민주통합당은 석패율제 요건을 강화하고 대선이나 총선 공약으로 정당명부제 도입하는 등의 '당근책'으로 통합진보당을 설득하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