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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객 1만6천명…사회현상으로 번진 마왕의 죽음

문화 일반

    조문객 1만6천명…사회현상으로 번진 마왕의 죽음

    • 2014-11-02 17:07

    3040세대 추모 열기 뜨거워…"90년대 청춘의 의식과 감성을 견인한 주체"

    (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지난 27일 세상을 떠난 고(故) 신해철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이 1만6천여 명에 달했다.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 빈소가 마련된 28일부터 회사에 월차를 내고 온 여성 팬, 지방에서 고교 동창들과 올라온 30대 후반 남성 팬, 신해철의 음악으로 꿈을 키웠다는 무명 기타리스트 등 갖가지 추억을 품은 이들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퇴근길에는 직장인들이 몰려 빈소가 있는 2층 전체로 줄이 길게 늘어섰다. 으레 동료 연예인이 중심이 되는 빈소가 일반인 참여로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30일에는 고인의 장례식장 한쪽에서 촛불을 환히 켜고 추모 행사도 마련됐다. 신해철의 생전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사진과 포스터들이 내걸렸다.

    온라인에서도 고인의 죽음이 알려진 날 밤부터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며 비통한 심정이 담긴 글, 신해철의 음악과 함께 한 옛 추억을 꺼내놓은 글이 쏟아졌다.

    온라인 중고 거래 장터에서는 신해철의 초기 앨범이 경매 등을 통해 고가에 거래됐고, 저서 판매도 증가했다.

    이처럼 신해철의 죽음은 하나의 사회 현상처럼 들끓었다.

    가요계에서도 한 가수의 죽음에 이같이 뜨거운 조문 행렬과 비통함을 토로하는 모습은 처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굳이 신해철의 팬이 아니어도 그의 죽음에 먹먹해하고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어이없고 갑작스러운 죽음인 탓인지 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사람들의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이는 신해철이 음악적 영향력뿐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까지 지닌 아티스트임을 보여준 대목이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씨는 "신해철은 음악을 통해 실험적인 도전을 하면서 시대의 오피니언 리더로 부상했다"며 "마왕, 독설가로 불린, 그의 정치·사회적인 발언은 차치하고 그의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의 의식과 감성을 견인했다. 소셜테이너의 전형적인 인물로 세대의 감성과 의식의 주체였다. 존재감이 여기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1990년대에 청춘을 보낸 3040세대의 허망함과 상실감은 컸다.

    제약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이모(42)씨는 "고인의 소식을 들은 이후부터 내내 가슴이 먹먹하다"며 "신해철이란 이름 석 자만으로도 바로 대학 시절로 돌아갔는데…. 1990년대 아이콘은 많지만 그저 사랑 노래만 부르던 다른 가수의 죽음에 이토록 슬플 것 같진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작곡가 용감한형제(35)도 "'날아라 병아리', '도시인' 등 신해철 선배님의 실험적인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로 공허함과 허무함이 크다"며 "며칠째 우울한지 모른다. 생각이 정리 안 돼 복잡한 감정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중문화평론가 김교석 씨는 "일반 스타라기보다 시대의 한 페이지를 차지한 분이어서 지금의 3040세대에게는 젊은 시절의 한 페이지가 찢겨 나간 느낌일 것"이라며 "특히 신해철 씨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라디오를 시작하면서 '라디오 키드'들이 생겨났고 넥스트의 음악과 라디오를 공유한 시간에 정서적인 감정이 이입된 것"이라고 말했다.

    3040세대는 대중문화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만든 세대다. 솔로 뮤지션과 록밴드 넥스트를 병행하며 자아실현, 포기하지 않는 꿈, 세상을 향한 촌철살인의 시선을 노래한 신해철의 음악은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많은 이들이 그의 대중적인 히트곡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재즈카페', '안녕' 등을 기억할지 모르나 자아성찰을 노래한 '이중인격자', 포기하지 말라며 희망을 강조한 '해에게서 소년에게', 자신을 길들이려는 세상에 맞서라는 '껍질의 파괴', 어두웠기에 낭만은 더욱 절실했던 1970년대를 노래한 '70년대에 바침' 등 그의 시선과 철학적인 가사는 폭넓었다.

    문화평론가인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과 교수는 "신해철 씨 세대에 청춘을 보낸 이들에겐 중산층의 희망이 살아있었다"며 "신해철 씨뿐 아니라 먼저 세상을 떠난 동갑내기인 최진실 씨 등이 보여준 이미지와 메시지는 노력하면 그런 세상이 올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청춘이 40대가 돼보니 세상이 녹록지 않고 희망에 대한 상실감을 느끼는데, 이들이 신해철 씨의 죽음에 큰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반 팬들뿐 아니라 세대와 장르를 아우른 동료 가수들도 신해철의 애석한 죽음 앞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이승철, 윤종신, 신대철, 싸이 등 지난 31일 영결식장에는 동료들이 대거 참석했고 고인의 화장장까지 함께 했다. 이들은 급기야 고인의 사인에 대한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며 유족을 설득해 화장 절차를 중단하고 "부검을 한다"는 긴급 기자회견도 마련했다.

    유족은 고인의 장협착 수술을 한 병원을 상대로 고소장을 접수했고, 내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부검이 실시된다.

    그래서 아직 끝나지 않은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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