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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신학자의 눈에 비친 '엑소더스' "아쉬운 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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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신학자의 눈에 비친 '엑소더스' "아쉬운 타협"

    복수·가학적 신이 부른 폭력의 재생산…"과감한 성서 재해석 부재"

     

    "현대 신학의 난제로 꼽히는 모세 설화 속 난폭한 신에 대한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외면함으로써 논란의 중심에서 비껴가려 한 타협의 흔적이 엿보인다."

    성서에 등장하는 모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이하 엑소더스)을 미리 본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의 총평이다.

    3일 개봉에 앞서 1일 서울 행당동에 있는 CGV 왕십리점에서 언론시사를 통해 첫 공개된 엑소더스. 이 영화의 만듦새는 기원전 14세기 이집트에서 노예로 지내던 40만 히브리인들을 자유로 이끄는 '해방자' 모세의 영웅적 서사에 무게 중심을 둔 모습이다.

    엑소더스의 이야기는 앞서 올 4월 개봉해 일부 기독교인들로부터 "성서를 왜곡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던, 신의 목소리를 듣고 고뇌하던 한 인간의 불안한 의지에 주목한 '노아'의 과감한 재해석과는 결을 달리한다.

    이날 함께 엑소더스를 본 민중 신학자이자 한백교회 담임 목사인 김 실장은 "현대를 사는 많은 기독교인들은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난폭한 신의 모습을 낯설게 받아들이는데, 이것이 현대 신학의 난제"라며 "한국과 미국의 다수를 차지하는 복음주의(성서에 기록된 문자 그대로의 복음을 중시하고 실천할 것을 강조하는 경향) 기독교인들에게는 이 영화 속 모세가 익숙하게 받아들여질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극중 신이 어린 아이로 묘사된 점을 짚으며 "아이의 순수함으로 신의 난폭함을 정당화 또는 단순화하려는 의도로 다가왔는데, 이는 민감한 문제를 피해가려는 장치로 비쳐졌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의 부족 설화를 보면 유일신 야훼가 스스로 자기분열을 일으키는 모습이 종종 등장하죠. 이러한 신의 갈등은 곧 그 신을 따르는 집단 내 갈등으로 해석됩니다. 모세 설화에는 그러한 분열적인 신이 잘 드러나지 않아요. 모세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 때에는 연출자의 다소 과격한 해석이 없을 경우,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신의 가치를 끄집어내기 힘들어 보입니다."

    결국 엑소더스는 신의 갈등, 부당한 신탁에 동요하는 인간을 배제한 채 스펙터클을 위시한 볼거리에 많은 공을 들임으로써, 모세 설화 속 난폭한 신의 모습을 지금 시대에 걸맞게 해석할 여지를 열어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 "히브리인은 민족 아닌 계급…국가주의적 모세 읽기의 한계"

    영화 '엑소더스'의 한 장면. (사진=이십세기폭스 코리아 제공)

     

    김 실장은 이 영화에서 히브리인들이 단일민족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영화와 달리 현대 신학 연구는 히브리인을 당대 하층민으로서 민족보다는 계급 개념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라는 것이다.

    "기원전 15세기경 나일강 상류 가까운 지역의 도시에 세워졌던 한 문서고가 생생하게 보존됐는데, 진흙으로 만든 판에 새겨진 문자를 보면 '아피루 탓에 국경수비대가 힘들다'는 식의 표현이 나와요. 아피루는 생계를 잇기 위해 용병 또는 도적, 상인으로 살아가는 떠돌이 집단입니다. 이 아피루를 히브리인과 동일한 존재로 보는 게 정설이 되고 있습니다."

    김 실장에 따르면 모세 설화는 단일민족 사회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다. 그 안에 이미 여러 종족이 혼합됐다는 근거가 녹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성서의 최종 편집 과정에서 내셔널리즘, 그러니까 국가주의가 도입됨으로써 모세가 민족의 해방자로 그려지기에 이른다.

    "구약성서, 평이하게 제1성서라고 하는데, 제1성서가 지금과 유사한 버전으로 만들어진 것이 기원전 7세기 유다국에서죠. 앞서 기원전 10세기께부터 팔레스티나(가나안이라 불리던 곳으로, 지금의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지중해 동부 해안의 남부 지역)에서는 유다국과 이스라엘국이 '야훼' 신을 섬기고 있었죠. 이스라엘국은 팔레스티나를 침략하는 외부 세력들과 전쟁을 치러야 했고, 기원전 7세기에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합니다. 상대적으로 약소국이던 유다국은 이때 살아남아 번영기를 맞아요."

    결국 유다국은 이스라엘국이 발전시킨 모세 설화를 들여와 광범위한 문서작업을 통해 이를 내셔널리즘에 입각한, 왕실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역사로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우리가 보는 성서의 골격이 됐다는 것이다.

    보다 근원적인 물음을 하나 던져 보자. '그러면 우리가 아는 모세 설화의 기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김 실장은 "권력투쟁의 산물"이라고 답했다.

    모세 설화는 야훼 신앙이 형성되는 초기 국면을 그린 이야기로 '엘' 신을 섬기던 팔레스티나에는 원래 야훼 신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모세 이데올로기를 지닌 히브리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하면서 야훼 신을 팔레스티나에 들여온 거죠. 영화 말미에 가면 모세가 산을 오르는 와중에 산 아래 사람들은 황소상을 만들어 페스티벌을 벌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국은 야훼를 황소상으로 묘사하는 게 일반적이었어요. 예배에서 농경을 뜻하는 황소상을 만지고 바라보며 풍요와 다산을 빌었던 거죠. 반면 유다국의 야훼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이었어요. 밀폐된 성전에서 예배를 보고 신을 모신 공간에도 막이 쳐져 있어서 제사장 중에서도 우두머리만 들어갈 수 있었죠. 결국 나중에 이스라엘국이 멸망한 뒤 유다국이 황소신앙을 제거한 겁니다."

    모세 집단이 들여온 야훼 신과 팔레스티나 원주민들이 믿던 엘 신이 권력투쟁을 거치면서 하나로 통합됐다는 말인데, 우리 성서에서 엘을 '하나님'으로, 야훼를 '여호와'로 번역한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단다.

    ◈ "성서에 충실한 이야기 흐름…역사적 사실 혼란 불러"

    영화 '엑소더스'의 한 장면. (사진=이십세기폭스 코리아 제공)

     

    성서에서 모세는 120년을 산 것으로 나온다. 여기에는 도망자로 산 40년과 유랑기 40년이 포함된다. 엑소더스는 이 기간을 9년으로 줄였는데, 리얼리티를 강조하려는 뜻으로 읽힌다. 영화에서처럼 모세는 시나이반도(아라비아 반도와 아프리카 대륙을 잇는 삼각형의 반도)에서 유목집단과 함께 산 것으로 전해진다.

    영화 속 모세가 "장군(general)"으로 불리는 점도 눈길을 끈다. 김 실장은 "성서에서 모세는 제사장, 예언자, 장군, 정치인 등으로 표현되는 복합적인 인물"이라고 했다.

    "성서 속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요,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인물로도 그려집니다. 모세에게 부여되지 않는 유일한 이미지가 왕이에요. 이는 모세를 권력의 중심에서 제거하려는 정치적 의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영화 엑소더스가 성서의 모세 이야기에 충실하려다 보니 역사적인 사실을 거스른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에 따르면 엑소더스의 시기를 두고 기독교 내 보수파는 기원전 15세기로, 학자들은 기원전 12, 13세기로 보는 것에서 큰 차이가 난다. 전자는 성서의 이야기를 따른 설이고, 후자는 역사적 사건들과 맞춰 본 데서 근거한 것이다.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인의 수도 40만 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원전 12세기께 팔레스티나 지역 전체 인구가 5만 명 정도로 추론된다는 점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이주하는 것은 불가능했단다. 극중 하층민인 히브리인들이 모여 사는 '비돔'이라는 거주지도 그렇다. 비돔은 기원전 7세기에 부각된 도시 형태라고 김 실장은 전했다.

    그는 "성서의 이야기를 역사적 산물들과 단순하게 접목시키려다 보니 실제 역사적인 맥락과는 맞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진 듯싶다"며 "성서의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맥락을 읽지 않고 단순한 흐름으로 읽으려 한 점이 나타나는데, 연출자가 그런 부분에서 다수 개신교 신자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타협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고뇌 아닌 묵인 택한 모세…통속적 지도자형 못 벗어나"

    영화 '엑소더스'의 한 장면. (사진=이십세기폭스 코리아 제공)

     

    김 실장의 표현을 빌리면 "모세 설화나 야훼 신앙은 몹시도 혈통 중심적"이다.

    소위 근본주의라 불리는 기독교 내 집단에서는 스스로를 새로운 핵심 혈통으로 자부하면서 모세 설화를 내셔널리즘 강화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의 부시 정부가 벌인 이라크전쟁도 정당화될 수 있었다고 그는 전했다.

    김 실장은 "영화 엑소더스의 모세는 부당하다고 느낄 법한 신탁에도 별다른 동요 없이 따른다는 점에서 남다른 지도자상을 보여 주는 것 같지는 않다"며 "신과의 갈등 국면에서 고뇌보다는 묵인을 택한 극중 모세는 통속적인 지도자의 전형으로 다가온다"고 꼬집었다.

    "극중 가장 아쉬운 부분은 신의 갈등이 없다는 점입니다. 히브리인들의 해방을 위해 이집트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없애는, 복수심에 불타는 어린 아이 같은 신의 잔인함만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해야 할까요. 오늘날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 유일신 종교들의 횡포입니다. 가장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종교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요."

    "이러한 맥락에서 모세가 잘못된 방향으로 재해석될 때 얼마나 큰 폭력이 우리의 기억에 개입할 것인가를 절실히 고민해야 할 때"라고 그는 말했다.

    ◈ "과감한 모세 읽기…예수 설화 속 성찰적 신이 해법"

    영화 '엑소더스'의 한 장면. (사진=이십세기폭스 코리아 제공)

     

    김 실장은 모세 이야기를 두고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는 초석적 설화"라는 표현을 썼다. 언제, 어떤 사건이 있을 때마다 모세가 소환돼 왔다는 의미다.

    이때 모세는 압제자를 단죄하고, 고통받는 노예를 해방시키는 식으로 비주류의 편에 서 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오늘날 우리가 모세를 재해석할 때는 지배층이 외면한 소외된 집단을 품을 수 있는, 신의 약속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근거로서 의미가 있을 겁니다. 모세 설화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누군가를 정복해서 폭력을 가하는 집단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군주국 설화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정복 논리로 변형됐죠."

    이러한 국면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모세 설화를 시대적 요구에 맞게끔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읽어낼 수 있을까.

    김 실장은 "죽음을 통해 폭력의 중단을 외친 예수 설화 속 성찰적 신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수 설화는 잔인한 신에 대한 항거를 품고 있습니다. 신이 스스로 자신을 죽임으로써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는 셈이죠. 반면 모세 설화는 성찰의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신의 모습만 부각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는 모세 설화가 이런 식으로 와전되면 폭력의 재생산을 부를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폭력과 복수가 만만해 보이는 타자를 향하고 있다는 점을 그 단적인 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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