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지목된 정윤회 씨. (박종민 기자/자료사진)
검찰이 정윤회 씨 국정개입 문건 수사에 착수하고 한 달 동안 온 나라가 들썩거렸지만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에는 미흡하다. 결국 초반의 우려대로 국정농단 의혹의 본질은 흐려지고 문건 유출자 일부만 색출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문건 내용과 유출이라는 두 갈래로 뻗어갔던 검찰 수사는 양 쪽 모두에서 일정한 한계를 보여줬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문건내용 수사의 한계 : 한 달치 통신추적으로 국정개입 없다 확신할 수 있나
우선 문건 내용과 관련된 수사는 정윤회씨와 핵심 비서관 3인방(이재만·안봉근·정호성) 등 십상시로 불리는 청와대 직원들간의 비밀회동을 확인하는 데에서 출발했다.
세계일보가 지난달 28일 보도한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문건 내용에 따르면 정윤회 씨와 십상시 멤버들은 지난해 10월부터 강남의 J모 중식당 등에서 매월 2회 정도 비밀회동을 갖고 국정운영 등을 논의한다고 돼 있다. 김기춘 비서실장 사퇴설 등도 이 모임에서 나온 얘기라고 문건은 밝히고 있다.
청와대측으로부터 세계일보에 대한 고발장이 접수되자, 검찰은 명예훼손 전담 부서인 형사1부(정수봉 부장검사)에 사건을 배당했다.
검찰은 일단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비밀회동' 여부에 방점을 찍고 관련자들의 통신기록 분석에 집중했다. 관련자들의 휴대전화에 같은 시간대에 기지국이 겹친 흔적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수사기법이었다.
그런데 검찰이 확보한 통신 기록은 최근 1년치였다. 문건 작성 시기는 1월 6일이기 때문에 유의미한 기간은 이전인 12월 한 달치에 불과했다. 이미 관계자들이 더욱 몸조심에 들어간 이후의 통신 기록 분석은 증거로서의 의미가 퇴색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검찰은 통신 기록 분석에 매달렸다.
정윤회 씨나 청와대 비서관들의 휴대전화를 직접 분석하면 문자메시지나 통화기록이 남아있어 가장 정확한데도, 검찰은 어찌된 일인지 휴대전화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밖에도 강남 중식당의 CCTV와 매출전표 분석 등도 실시했지만 제3의 장소에서 만났을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만나지 않아도 평소 연락을 긴밀히 주고받았을 확률도 있다. 정윤회 씨와 이재만 비서관은 처음에는 "절연했다"고 주장했다가 올해 4월에 박지만 EG회장 미행설과 관련해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은 것으로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박관천 경정의 정보원으로 알려진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이 중간에 진술을 뒤바뀐 것도 찜찜한 부분이다. 박 전 청장은 안봉근 비서관과 김춘식 청와대 행정관 등 십상시 멤버들과 친분이 있고, 정보계에서는 나름 유명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왜 허위 소문을 제보했는지 원인이 불명확하다.
이처럼 여러 가능성이 열려있는데도 검찰은 정윤회 씨와 십상시 비밀회동은 없다고 일찌감치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문건에 언급된 다른 의혹에 대해서는 일체 확인하지 않았다. 정윤회 씨가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과 김덕중 전 국세청장의 인사 등에 개입했다는 의혹이나 야당이 고발한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 인사 개입설도 수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한 달치 통신 기록과 중국집 한 곳을 뒤졌다고 국민적 의혹이 짙은 비선 라인의 국정개입이 전혀 없었다고 단정짓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검찰 관계자는 "처음부터 국정농단에 대한 수사가 아니라 명예훼손 수사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국정개입은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죄도 아니기 때문에 수사 시작부터 한계는 안고 있었다"고 총평했다.
정윤회 문건의 작성자이자 유출자로 의심받고 있는 박관천 경정. (박종민 기자/자료사진)
◈ 문건유출 수사의 한계 : 최 경위의 석연치않은 죽음과 박관천 경정의 말바꾸기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 행위"라고 성토한 당일날, 곧바로 특수부가 동원됐다. 문건 유출 분야만 따로 맡게 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임관혁 부장검사)는 초반부터 빠른 기세로 수사를 진행했다.
박관천 경정이 청와대에서 가지고 나온 문건이 서울경찰청 정보분실 소속 최모 경위와 한모 경위의 손을 거쳐 외부로 유출됐다고 결론내린 검찰은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영장을 모두 기각했고, 그로부터 며칠 뒤 조직의 안팎에서 압박을 받던 최 경위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영장 기각과 최 경위의 죽음으로 문건 유출 수사는 난관에 부딪혔다.
특히, 최 경위가 남긴 유서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한 경위에게 회유와 함께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어 이를 두고 여전히 진위 공방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한 경위가 한 종합편성채널에서 청와대 회유설을 인정하는 인터뷰를 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한 경위의 변호인이 나서서 이를 부인하는 헤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해당 언론사는 여전히 인터뷰는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실체적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결국 화살은 곧바로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 경정에게 돌아갔다. 검찰은 그가 청와대 문서를 바깥(서울청 정보분실)으로 반입한 자체가 중범죄에 해당한다며 뒤늦게 박 경정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직접 '찌라시 성격'이라고 규정지은 정윤회 씨 문건 등 각종 동향보고서는 '대통령기록물'이 됐다. 검찰이 모두 허위라고 결론낸 내용들도 '공무상 비밀'이 됐다.
검찰은 박 경정의 주변을 살피는 과정에서 사건과는 관련없는 뇌물 수수 혐의를 추가해 별건 수사를 진행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내 입은 자물쇠"라며 혐의를 극구 부인하던 박 경정이 구속된 이후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한 것도 뇌물 수사에 따른 압박 때문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현재까지 이 사건과 관련해 구속된 인물은 문건을 작성하고 세상에 가지고 나온 박 경정이 유일하다. 배후로 의심받고 있는 조응천 전 비서관의 경우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법원에서 영장이 발부되기까지는 공방이 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