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라디오 '뉴스로 여는 아침 김덕기입니다']
■ 방 송 : FM 98.1 (06:00~07:00)
■ 방송일 : 2015년 1월 1일 (목) 오전 6:38-47(9분간)
■ 진 행 : 김덕기 앵커
■ 출 연 : 변이철 (CBS 노컷뉴스 문화연예팀장)
▶ 2부 첫 순서는 변이철의 '검색어 트렌드'입니다. CBS 노컷뉴스 변이철 기자 어서오세요.
=. 안녕하십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오늘은 새해 첫 시간답게 올해 새로운 트렌드를 소개해 주신다고요?
=. 예, 새해에는 '평범함'과 '여유'라는 키워드를 한번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이제 진정으로 럭셔리한 아이템은 유명브랜드가 아니라 평범함 속의 여유다”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청춘 멘토로 잘 알려진 김난도 교수가 있는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도 2015년 새해 트렌드로 “럭셔리의 끝은 평범함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요.
‘놈코어’ 그리고 ‘킨포크’라는 두 가지 트렌드를 통해 ‘평범함 속 여유의 가치’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 놈코어, 킨포크? 조금 생소한 말이네요. 어떤 뜻인가요?
=. 예, 놈코어(normcore)는 2014년 위키피디아에 공식 등재된 용어인데요. ‘평범’을 뜻하는 영어 노멀(normal)과 ‘철저한’을 뜻하는 하드코어(hardcore)가 결합한 신조어입니다.
그러니까 철저하게 소박하고 평범한 것을 택해서 오히려 ‘스타일리시’하고 ‘쿨’함을 드러내는 패션을 말합니다.
실제로 노톤 셔츠와 데님, 스니커즈와 같은 담백하고 자연스러운 스타일이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며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는데요.
생전에 늘 한 가지 스타일만을 고수했던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시면 이해가 빠르실 것 같습니다.
고 스티브 잡스
▶ 그러고 보니 스티브 잡스도 ‘검은색 셔츠’만 고집했던 것 같아요.
=. 그렇습니다. 잡스는 무려 12년 동안이나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처럼 ‘검은색 하프터틀넥 셔츠’에다 ‘물 빠진 청바지’를 고수했죠.
평범하면서도 기능적이고 강단 있는 잡스를 가장 잘 표현한 패션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지극히 평범한 패션을 선보였던 스티브 잡스야 말로 ‘놈코어’라는 용어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놈코어’의 정수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잡스는 이 ‘평범함의 미학’을 패션을 넘어 애플의 디자인으로 구현해 내기도 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잡스가 입었던 검은 셔츠는 일본의 명품 브랜드인 ‘이세이 미야케 제품’이었는데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 티 안 나게 티를 낸다는 거군요. 이제는 대놓고 브랜드를 드러내면서 과시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런 말 같아요.
=. 그렇습니다. 프리미엄 소비 계층은 이미 브랜드를 초월했습니다. 브랜드 그 자체가 자신의 가치를 높여주는 요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 이태리 수공예 가죽 브랜드 ‘발렉스트라(Valextra)’는 최상의 가죽을 쓰고 수준 높은 마감처리를 하는 초고가 명품이지만, 겉면 어디에도 브랜드 이름이 적혀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남들이 인정해주기를 갈망하는 ‘노출의 프리미엄’이 아니라 자신감과 도도함을 추구하는 ‘은밀한 프리미엄’인 셈이죠.
유튜브 화면 캡쳐
▶ 그러니까 ‘명품 브랜드’ 그 자체 보다는 그 안에 숨어 있는 평범함이 더 주목받는 시대다... 이렇게 해석해도 될 것 같네요.
=. 그렇습니다. 지난여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마이보틀’ 역시 평범함으로 허를 찌른 케이스인데요.
둥근 투명 물병에 삐뚤빼뚤한 손글씨 같은 켈리그라피로 My Bottle이라고 쓴 것이 디자인의 전부거든요.
그런데 심플함의 극치인 이 투명물병이 수입가가 6~7만원을 호가했는데도 날개 돋친 듯 팔리면서 히트상품 반열에 오른 것입니다.
역시 평범함, 단순함을 선호하는 소비심리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게 '놈코어'라는 말이고... 2015년 새해의 또하나 트렌드가 아까 ‘킨포크’라고 하셨나요?
=. 예 최근 킨포크(kinfolk)에 대한 관심이 아주 뜨거운데요. 킨포크는 라이프스타일 잡지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트렌드 코드입니다.
사전적 의미는 가깝고 친한 관계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지인들끼리 함께 소박한 집밥을 나눠 먹거나 집이나 정원을 가꾸며 일상의 여유와 느긋함을 누리는 라이프스타일을 말합니다.
특히 세월호 침몰 등 대형 사건사고와 ‘묻지마 범죄’ 등의 영향으로 최근 가족과 함께 하거나 자연과 교감하는 여유 있는 삶이 그 어느 때보다 각광 받으면서 '킨포크'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 결혼하고 제주도로 내려간 가수 이효리 씨가 언뜻 생각나는데요.
=. 그렇습니다. 이제는 ‘섹시 퀸’이라는 수식어보다 ‘소길댁’이라는 닉네임이 더 자연스럽죠.
이효리 씨는 제주에서 ‘텃밭 가꾸기’ 등 자연친화적인 생활 모습을 SNS 등을 통해 종종 공유해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또 최근에는 ‘제주에서 한 달 살기’도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파트나 펜션을 단기로 임대하는 건데요.
제주에 가서 눌러 살지는 못해도 정신없는 2박3일 여행보다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제주의 일상을 누려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겁니다. 이 역시 '킨포크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죠.
▶ 그런데 이런 여유 있는 생활이 현실에서는 사치로 다가오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 맞습니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일상에서 누리는 이런 ‘여유’와 ‘편안함’이 역설적으로 럭셔리한 것으로 점차 받아들여지는 소비트렌드입니다. 이런 변화를 눈여겨 보자는 거죠.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 허시족(hush族)이 점차 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허시족은 붐비지 않는 한적한 곳만 찾아다니거나 서비스를 고를 때 ‘조용함’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허시족의 증가는 불신과 불안이 팽배하고 경쟁에 지친 사람들이 바쁜 일상에서 탈피해 조용히 쉬고 싶은 욕구가 점차 커지는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 우리만큼 바쁘게 살기로 유명한 일본은 ‘킨포크 라이프’에 대해 어떤 반응인가요?
예, 일본도 소비문화 중심지가 여유롭고 자연친화적인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일본 도쿄의 경우, 1970년대에는 번화가인 ‘긴자’와 ‘신주쿠’가, 그리고 1980년대는 패션산업이 발달한 ‘시부야’와 ‘아오야마’가 중심지가 됐습니다.
그리고 현재 도쿄의 신소비문화의 중심은 다이칸야마(代官山)와 가루이지와(經井澤)로 이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