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 환급액 축소 논란과 관련 21일 오후 국회에서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연말정산 대책 긴급당정협의가 열리고 있다. (윤창원 기자)
정부와 새누리당이 출산입양 세액공제 신설과 다자녀 세액공제 수준 상향 조정, 노후연금보험료 세액공제 확대 등 연말정산 공제 항목을 재조정해서 올해 연말정산에 소급적용하기로 했다.
성급한 세법 개정으로 연말정산 혼란을 초래한 정부가 또 다시 400만 명에 달하는 납세자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세법을 바꿔 개정하겠다고 나서면서 세금정책의 안정성이 크게 훼손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여론의 반발에 떠밀려 급하게 세법 개정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기획재정부는 2013년 8월 5일 "연소득 3750만원을 기준으로 세금부담이 늘어나도록 소득세법을 개정했다"고 발표한 뒤 '3450만원이 중산층 이냐'며 여론의 반발이 커지자 닷새 만에 연소득 5500만원부터 세금부담이 늘어나도록 소득세법을 다시 설계했다.
"연봉 5500만원 이하 직장인은 평균 세부담이 증가하지 않고, 연봉 7000만원 이하는 평균 2~3만원 수준에서 증가한다"고 자신했던 기재부는 '예상치 못한 연말정산 파동'을 겪은 뒤 이번에는 연말정산간소화 서비스 개통 닷새 만에 세법을 개정해 소급적용하겠다고 나섰다.
당정은 21일 △1인당 15만원(3인 이상 20만원)인 자녀세액공제 수준의 상향 조정 △자녀 출생·입양에 대한 세액공제 신설 등을 통해 다자녀 가구에 대한 세제 혜택을 늘리기로 했다.
또 △독신근로자 과세 형평성을 위해 12만원인 표준세액공제 상향 조정 △국민 노후생활 지원을 위해 현행 12%인 연금보험료 세액공제 확대 △연말정산에 따른 추가 납부세액의 분납 허용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여론에 떠밀린 개정 세법의 소급적용이 세금정책의 안정성과 정부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김우철 교수는 "세법 개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세금 부담이 돌아가고, 얼마의 세금을 더 내느냐"라며 "정부가 이런 부분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국회도 이를 제대로 심의하지 않아 문제가 된 것인데 이를 개선할 생각은 안하고 (소급적용 등) ‘선물 던져주기 식’ 조세정책을 운용하는 행태는 상당히 후진적이고 과거 회귀적"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세제를 단순화 하고 합리화 해야지 (납세자의) 반발이 나올 때마다 복잡하게 하고 혹을 하나씩 붙일 것인가"며 "예를 들어서 법인세를 바꿔서 시행했는데 '세 부담이 늘었다'며 중소기업들이 들고 일어서면 (법을 고쳐 소급적용하는 방식으로) 바꿀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여론에 떠밀려 급하게 세법을 고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납세자들의 세부담이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
2013년 8월 세법개정 당시에도 기재부는 개별 납세자의 상황에 따라 세금부담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예상했지만 이 정도의 혼란은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세법 개정과 소급적용 이후 제2의 연말정산 파동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인 김진석 세무사는 "정부가 이번에 문제가 된 다자녀 가정이나 미혼 근로자 등에게 세부담이 늘지 않는 방식으로 세법을 보완한다고 해도 이후 또 다른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지난 세법 개정과정에서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못했던 부분을 인정하고 공평과세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소득세 공제제도 전반에 대한 충분한 검토 후 신중하게 세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복지지출 증가에 따른 증세는 불가피하지만 이번 사태로 반발하면 언제든 세법이 바뀔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키워 조세저항을 부추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강남대 세무학과 안창남 교수는 "법인세나 재산세를 올리지 않고 근로소득자만 쥐어짜서 반발이 이는 부분은 있지만 증세 기조로 방향을 바꾼 조치는 큰 틀에서 맞다"며 "다만 이번 사태로 떼만 쓰면 세법을 고칠 수 있다는 인식을 키우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동국대 경제학과 김낙년 교수도 "세액공제는 상대적으로 소득이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세부담을 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큰 틀에서 옳은 방향"이라며 "이번 세법 개정이 왜곡된 세구조를 개편한다는 의미가 있었는데 일부 사람들이 불만일 수 있겠지만 조세저항으로 이미 시행된 법을 바꾸고 소급적용까지 하겠다는 정부의 조치는 향후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소득세 정산을 끝내고 세금을 다 걷은 다음 다시 4월에 국회에서 소득세법을 개정하고, 이를 다시 돌려주는 과정을 거쳐야 해서 엄청난 행정력 낭비도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