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만큼 '미투 제품(Me-too·모방)'이 곧바로 나오는 시장도 드물다. 경쟁이 치열하다는 얘기인 만큼 경쟁자가 새로 진입하면 무조건 배척하고 경계할 것 같지만, 알고보면 동반자적인 측면이 있다. 더 정확히는 '적대적' 동반 관계다. 허니버터칩이 등장한 감자칩 시장과 갈수록 경쟁자가 늘어가는 요리에센스 시장이 대표적이다.
◇ "너를 이겨야 하지만 없애진 않을게"
해태제과가 지난 해 8월 '허니버터칩'을 내놓으면서 기존 감자칩 시장을 주름잡고 있던 오리온제과와 농심은 바짝 긴장했다. 농심이 지난 해 말 허니버터칩의 대항마로 출시한 수미칩 허니머스타드의 판매량을 놓고 해태와 농심이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감자칩 시장 1위인 오리온은 일찌감치 달콤한 맛을 내는 제품을 낸 바 있다고 선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언론을 통해 업체 간 날선 비판이 횡행하다보니, 감자칩 시장이 한쪽이 득을 보면 반대 편은 손해를 보면 제로섬 상황이라는 인식을 갖기 쉽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허니버터칩의 등장으로 해마다 7, 8% 늘고 있던 감자칩 시장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고 보는 시각이 더 많다. '짠 맛'에 편중된 기존 감자칩 카테고리에 '달콤한 맛'을 추가함으로써 외연을 넓혔다는 것이다. 해태제과 관계자는 "감자칩 자체에 관심이 없던 소비자를 시장으로 유입 시키는 데 허니버터칩이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강력한 신규 경쟁자의 등장에 대해 오리온 관계자는 "허니버터칩이 등장했다고 해서 자사 제품의 매출이 떨어진 것은 아니다"라며 지난 달 시장조사기관인 닐슨의 통계자료를 인용해 포카칩의 지난 해 매출액이 1300억 원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농심 관계자 역시 "확실히 허니버터칩이 시장에 긍정적인 자극이 된다"고 말했다.
◇ "경쟁자, 들어와~ 들어와~"
시장에 생소한 제품을 내놓을 때는 경쟁자와의 동반자적 관계가 더 명확해진다. 콩 발효 맛내기 제품인 '요리에센스' 시장의 경우 2012년 샘표가 '연두'로 시장을 개척한 이후 신송 '요리가 맛있는 이유'와 대상 청정원 '요리의 한수'가 참여하면서 시장 규모가 커지는 추세다.
샘표는 2010년 연두를 처음 출시할 당시 '4세대 조미료'라는 타이틀로 시장에 진입했지만 소비자들로부터 '조미료의 일종'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안착에 실패했었다. 그러나 2년 뒤 조미료 카테고리를 벗어나 아예 '요리에센스'라는 새 장르를 만들면서 다음 해 매출액을 3배로 키웠다.
여기에 경쟁자까지 시장에 진입하면서 샘표는 기존 조미료와 요리에센스의 차이를 '어렵게' 설명하는 작업이 훨씬 수월해졌다고 말한다. 조미료가 첨가재료의 맛에 의지해 감칠맛을 내는 식이었다면 요리에센스는 따로 인위적인 맛 없이 음식재료의 맛을 살려주는 제품이다.
샘표 관계자는 "제품을 놓고는 경쟁하는 관계지만 시장 전체로 보면 동반자"라면서 "그동안 조미료와의 차이점을 알리기 위해 직접 요리를 해서 소비자와 만나는 방식을 고수해야 했는데 경쟁업체들과 마케팅하는 과정에서 '아, 요리에센스가 조미료와 다른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더 쉽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NEWS:right}
업계 관계자는 "최근 경기위축 등으로 전체 파이가 정체돼 있는 상황에서 식품업계의 경쟁이 격화된 측면이 있다"면서도 "길게 보면 경쟁자와 함께 시장 전체 파이를 키우는 적대적 동반 관계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