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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학술

    스테디셀러의 힘은 '실험정신과 재미'

    [그림책 작가로 산다는 것 ④]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 박연철

    두고두고 볼 만한 좋은 그림책이 많다. 하지만 '그림책은 어린이용'이라는 선입견이 많고, 대중에게 그림책을 알릴 수 있는 자리가 적어 좋은 그림책이 그대로 묻힌다. CBS노컷뉴스는 창작 그림책 작가를 릴레이 인터뷰한다. [편집자 주]

    기사 게재 순서
    ① '진짜 코 파는 이야기' 이갑규
    ② '엄마는 회사에서 내 생각해?' 김영진
    ③ '괜찮아, 선생님이 기다릴게' 김영란"
    ④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 박연철


    박연철 작가

     

    실험정신과 재미. 그림책 작가 박연철(45)을 두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2005년 '어처구니 이야기'(비룡소)로 데뷔한 박연철 작가는 2007년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시공주니어)로 그해 볼로냐 국제어린이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됐다. 이후에도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2010, 사계절)와 '떼루떼루'(2013, 시공주니어)로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박연철 작가의 책이 스테디셀러가 된 비결은 뭘까. 박 작가는 "책마다 표현기법을 달리하고, 곳곳에 특정 이미지를 숨겨놓는 등 재미요소 넣은 덕분"이라고 말했다.

    "로보트를 B급 정서로 풀어낸 작품을 준비 중인" 그는 "기회가 되면 각설이를 주인공으로 한 책"을 만들고 싶단다.

    ▲ '어처구니 이야기'는 작가가 창작한 이야기지만 옛이야기처럼 자연스럽다.

    특강할 때마다 독자들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그림책 어처구니 이야기는 옛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창작한 이야기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옛이야기 구조에 우리문화를 입힌 거죠. '어처구니'(궁궐 추녀마루 끝자락에 있는 흙으로 만든 조각물)에 관한 자료는 국립민속박물관에도 없었어요. 박물관 학예사가 오히려 저한테 '자료를 찾으면 알려달라'고 부탁했을 정도에요. 그래서 그림도 상상 속 이미지죠. 저는 등장인물 중에서 말썽꾸러기 손행자가 가장 애착이 가요. 손행자 캐릭터가 까불고 거짓말하는 아이의 본질에 가장 가까우니까요.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는 결말이 충격적이다. 망태 할아버지가 아이가 아닌 엄마를 잡아간 것으로 유추되는데, 이에 대한 독자의 반응은?

    ⓒ 박연철 글·그림,《망태 할아버지가 온다》, 시공주니어

     

    2007년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를 출간했을 때 이 책을 구입한 엄마들이 온라인 상에 '반품하자'는 글을 올리면서 반발이 심했어요. 내용이 '섬뜩하다', '사악하다'는 반응이 많았죠. 당시만해도 그림책은 '강아지똥'처럼 따뜻하고 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많았는데, 이 책은 망태 할아버지가 아이를 억압하는 엄마를 잡아간다는 설정이니까요.

    지금은 반응이 제각각이에요. 입이 꿰매진 아이의 모습이 무섭다는 사람도 있고, 엄마가 잡혀간 것으로 유추되는 결말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아이도 있죠.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 겁주기 좋다는 엄마도 있고요. 훈육을 위해 만든 책은 아니지만 그만큼 재해석의 여지가 많은 거니까 다양한 반응이 나오는 건 바람직해요. .

    '망태 할아버지가 간다' 뒷부분에 작가가 고마움을 표시한 꼬마친구 문찬이와 노벨 어린이집 친구들은 누구인가

    그림책 작가를 준비할 때 '어린이책 작가교실'에서 같이 수업듣던 동료가 노벨 어린이집 원장이었어요. 데뷔작인 '어처구니 이야기'는 아이들의 사전 피드백 없이 출간했는데, 제 예상과 달리 대다수 아이가 책의 내용을 어려워해서 당황스러웠죠. 그래서 '망태 할아버지가 간다'를 출간하기 전 노벨 어린이집 아이들한테 더미북(그림책의 가제본)을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았어요.

    그때 유일하게 문찬이라는 아이가 '망태 할아버지가 엄마를 잡아가는 게 재밌다'는 반응을 보였어요. 엄마와 아이의 밀착관계를 틀어놓는 것에 대해 저 역시 두려움이 있었는데, 문찬이 덕분에 용기를 얻었죠. 막상 출간하고 보니 세상에는 문찬이 같은 아이가 많았어요. 하하

    ▲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는 판형과 내용 모두 독특한데.

    ⓒ 박연철 글·그림,《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 사계절

     

    작업기간은 3년 반 정도 걸렸어요. 공을 많이 들였는데 책의 내용이나 형식이 워낙 실험적이고, 보통 그림책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보니 많이 팔리지는 않아요. 기계로 제본하는 다른 책과 달리 이 책은 사람이 일일이 면과 면 사이를 붙여야 해서 제작비가 비싸거든요.

    하지만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만족스러워요. 책 모양이 문자도(글자를 그린 그림)가 그려진 병풍을 본땄는데, 아이들이 책을 병풍처럼 둘러치고 그 안에서 놀아요. 여기저기 숨은 피노키오를 찾으면서 즐거워하고요. 책에 대한 어른과 아이의 반응이 대조적이에요. 어른은 어렵다고 하고 아이는 재밌다고 해요.

    ▲ 책마다 표현기법이 다양한데.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는 무섭고 거친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서 직판화와 꼴라주 기법을 썼어요. '떼루떼루'에 나오는 사람 형상의 목각인형은 제가 직접 나무를 깎어서 만들었고요. 실제 꼭두각시놀이에도 목각인형이 등장하니까 똑같이 나무를 오브제로 사용한 거죠.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에서 배경으로 쓰인 천은 천연 염색한 다음 실크스크린으로 작업한 이미지를 얹었어요.

    직판화 배운다고 1년간 판화 공방을 제 집 드나들 듯 했고, 목각인형도 조각도로 일일이 깎느라 완성하는데 1년이 정도 걸렸어요. 책마다 사용하는 기법이 다르니까 준비기간이 길지만 모르는 것을 하나씩 알아갈 때의 즐거움 때문에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게 돼요.

    ▲ 책에 글자, 숫자, 작가의 얼굴 등을 숨겨놓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를 제외한 세 권의 그림책에는 알게 모르게 모두 제 얼굴이 들어갔어요. '망태 할아버지'에도 올빼미 얼굴에 제 사진을 넣었다가 '무섭다'는 반응이 있어서 뺐어요.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방해가 안 된다면 이런 이미지를 넣는 건 괜찮아요. 그리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재밌으니까요. 아이들은 글자보다 그림으로 줄거리를 파악하기 때문에 그림이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는데 더 효과적이기도 해요.

    ▲책마다 작가 소개가 다르고 독특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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