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회항'으로 물의를 빚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사건 발생부터 법원 판결까지 뜨거운 '갑질' 논란을 불러일으킨 '땅콩 회항' 조현아(41)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지난 12일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2월 5일 뉴욕 JFK 국제공항을 떠나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KE086 여객기가 기내 서비스 문제로 회항하는 초유의 사태였다.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이 승무원의 견과류 서비스를 문제 삼아 욕설을 퍼붓고, 급기야 움직이는 항공기에서 박창진 사무장을 강제로 내리게 하면서 해외뉴스 토픽에도 소개되는 등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이어 항공보안법상 항공기항로변경, 항공기안전운항저해폭행, 형법상 강요,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되는 등 형사처벌 대상까지 올랐다.
◇ "재벌오너 통제불능 상태에서 자신이 법 위에 있다고 착각" 전문가들은 이번 '땅콩회항' 사건이 단순한 재벌 자녀들의 일탈행위가 아닌 우리 사회에 암묵적으로 형성된 '갑을문화'를 대표한다고 진단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돈과 권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저질렀던 수퍼 갑질이 근절되는 계기가 될 것 같다"며 "재벌 기업의 총수 일원이라면 시민의 안전마저도 제멋대로 할 수 있다는 발상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건이 알려진 후 초동 조사 과정에서 대한항공 출신 국토부 인사가 사건축소와 조사내용 유출에 관여해 조직적 은폐를 시도한 점도 충격을 줬다.
안 사무처장은 "이번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확인하도록 지난해 12월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며 "국토부를 전면 감사해 대한항공이 아닌 국민의 국토부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벌오너 통제가 불가능한 구조에서 족벌화되면서 조 전 부사장은 자신이 법 위에 있다고 생각했다"며 "이 과정에서 대한항공 간부는 물론 국토부 공무원들까지 사태진화에 나섰다 결국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꼬집었다.
대한항공과 조 전 부사장이 땅콩 회항의 원인을 끝까지 승무원들의 잘못된 기내서비스 탓으로 돌리면서 반성하지 않은 점도 눈길을 끌었다.
지난 2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조 전 부사장은 "기내에서의 행동이 여승무원 김모씨의 서비스 위반으로 인한 것이고, 이 과정에서 박창진 사무장이 매뉴얼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냐"는 검찰측 신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조 전 부사장은 "사건의 원인제공을 승무원과 사무장이 했다는 것이냐"는 검사의 추가 신문에도 "승무원 서비스가 매뉴얼과 다르다고 생각해 이를 확인하기 위해 매뉴얼을 가져오라고 했고 그 매뉴얼을 찾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고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 했다.
고계현 경실련 사무처장은 "최근 한국 대기업들은 재벌 3, 4세 경영승계를 앞두고 있는데, 그룹마다 조 전 부사장과 같은 재벌가 인물이 꼭 한두 명씩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귀공자, 공주처럼 자라고 제왕으로 군림하면서 기업을 개인 소유로 착각하는 행태가 이번 사태를 불렀다"고 말했다.
조국 교수도 "나는 부사장이니까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생각에서 모든 문제가 출발했다"며 "통제되지 않는 재벌 일가의 큰딸로 자신의 말이 곧 회사의 법인 삶을 살다 보니 기업 외부에서도 민주국가의 시민이 아닌 법 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성하지 않는 권력자에 대한 시민분노는 극에 달했지만, 조 전 부사장 개인에 대한 과도한 신상털기와 마녀사냥식 보도에 우려를 표명하는 의견도 나왔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승무원들이 당한 일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면서 열화와 같은 반응이 일어났다"며 "각자 다양한 공간에서 겪은 아픔을 댓글 등의 형태로 다양하게 표출하고, 응어리진 감정을 조현아를 표적으로 삼아 풀어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