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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도 기사 쓰는 세상, 기자들의 생존법은?

책/학술

    로봇도 기사 쓰는 세상, 기자들의 생존법은?

    [신간] <좋은 기사를 위한 문학적 글쓰기>

    지난달 27일 미국의 AP통신은 ‘애플, 월가 1분기 전망치 상회(Apple tops Street 1Q forecasts)’라는 제목의 바이라인(작성자 이름이) 없는 기사를 송고했다. CNBC, 야후 등에도 게재된 이 기사는 사실 AP 기자가 아닌 로봇이 쓴 것이었다. AP 스타일 가이드를 알고리즘화한 로봇이 실적 자료를 토대로 곧바로 송고한 기사였다.

    이처럼 로봇이 기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외국에서는 로봇 저널리즘(robot journalism)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로봇이 기사를 쓴다는 것으로, 처음에는 소소한 스포츠 경기 결과 기사를 쓰는 정도였지만 최근에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금융 전문기사를 작성한다고 한다.

    더 재밌는 사실은 독자들은 로봇이 썼는지 사람이 썼는지 전혀 구분하지 못하며, 오히려 로봇이 쓴 기사에 대해 신뢰도를 더 부여했다는 연구 결과까지 있다는 점이다. 전문 영역으로 치부됐던 기자의 영역이 몇 년 후면 로봇에게 빼앗기는 세상이 곧 올지 모른다.

    '하루 빨리 직업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고민과 함께, 외국 사례는 모르겠지만 국내에서는 어쩌면 자초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위 '기레기'를 양산하는 한국의 언론 환경이 기사를 쓰는 게 사람인지 로봇인지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확인 없이 다른 언론의 보도를 보고 그대로 따라 보도하는 행태, 트래픽 장사 때문에 어뷰징을 강요하는 회사(언론사), 조회 수 높아야 능력 있다고 인정받는 기자들의 현실, 그래서 쏟아지는 복사해서 붙여 넣고 문장의 말미만 살짝 바뀐 고만고만한 제목의 셀 수도 없이 많은 기사들…. 이런 기사들이라면 독자 입장에서도 혹은 사주 입장에서도 굳이 사람이 쓰든 로봇이 쓰든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출간된 <좋은 기사를="" 위한="" 문학적="" 글쓰기="">(한울 아카데미 출판)는 현 언론 상황을 우려하며 변화를 고민하는 기자들이 주목할 만한 책이다.

     

    "기사가 단지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라면 매일 쏟아지는 각종 보도 자료나 통계발표 등과 같은 사실 공지들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언론인을 꿈꾸는 이라면 사실 속에 진실을 찾아 밝히는 것이 기사이며 글의 힘으로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 기사라고 말할 것이다."

    저자는 보도 문장이라도 사실만 전달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냉철한 문장 위에 인간적·문학적 향기가 풍겨 나와야 독자에게 읽기 좋고 공감할 수 있는 기사가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문학적 글쓰기란 감성적·정서적 문장만을 쓰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사건과 상황에 따라 냉철하고, 준엄하고, 냉소적이고, 해학적이고, 호쾌하기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찾아 밝히는 힘, 파헤치는 힘이 아무리 크다 해도 그것이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가지 못하면 기사의 위력은 반감된다. 독자의 눈높이에서 독자의 지성과 감성을 자극하며 기자와 함께 사건의 한복판에 뛰어들고 난해한 퍼즐을 함께 풀어갈 수 있도록 당기는 힘이 ‘문학’에 있다."

    인화학교 성폭행 사건을 쓴 <도가니>의 저자 공지영 작가가 <한겨레신문>의 기사를 보고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당시 기사 문장이 ‘(가해자들이)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순간 청각 장애인들의 울부짖음이 법정을 울렸다’이다. {RELNEWS:right}

    만약 로봇이 썼다면 기사는 '(가해자들이) 집행유예를 받았다'로 끝났을 것이며, 그렇다면 우리는 소설 '도가니'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도가니법'이라 불리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분명히 로봇은 도달할 수 없는 사람만의 영역이 있을 것이며, 이것이 기레기와 기자를 구별하는 지점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책은 '한국일보'에서 사회부·국제부·문화부를 거친 박래부 기자가 썼다. 예비 언론인들을 위한 책이라고 하지만 사실 기계적·기능적 글쓰기에 익숙해진 현직 기자들에게 더 좋아 보인다.

    <좋은 기사를="" 위한="" 문학적="" 글쓰기=""> / 박래부 지음 / 한울 아카데미 출간 / 232쪽 / 1만 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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