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자료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직전 국가정보원이 수사내용을 부풀려 언론에 흘려 여론을 조작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009년 노 전 대통령 수사 내용 일부를 과장해 언론에 흘린 건 국가정보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전 태광그룹 회장으로부터 명품시계를 받은 혐의로 대검 중수부에서 조사를 받았다.
조사 다음날 권여사가 선물로 받은 명품시계를 논두롱에 버렸다고 진술했다는 내용이 일부 언론에 보도됐는데 이 언론보도가 국정원 주도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보도 이후 열흘 만에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전 부장은 노 전대통령이 시계문제가 불거진 뒤 바깥에 버렸다고 한다고 답했으며 논두렁 얘기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국정원이 말을 만들어 언론에 흘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국정원장은 최근 대선개입혐의로 구속된 원세훈 전 원장이었다.
이같은 내용은 당시 노 전 대통령 수사를 담당했던 책임자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신빙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이 전 부장의 발언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치졸한 정치보복이 국정원이 개입해 이뤄졌다는 것으로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전 정권의 국정원에서 이뤄진 일이라고 덮어버릴 사안도 아니다.
진상을 분명히 가리고 책임자를 엄중히 처벌함으로써 다시는 국가기관이 본연의 임무를 벗어나 국정을 농단하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은 이미 대선과정에서 노골적으로 댓글작업을 통해 선거에 개입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정부 들어와서도 공개해서는 안될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는 등 정치개입 행위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지난해 임명된 이병기 국정원장이 정치관여는 머릿속에서 지우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국정원장 개인의 다짐으로 이뤄질 사안이 아니다.
국정원장이 교체되면 또다시 정치개입이 일어날 수 있는 만큼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재발방지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자료사진)
국정원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업무의 특성상 직원들의 신원을 보호하고 예산집행이나 사업내용에 대해서도 거의 국민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이같은 비밀주의가 통할 수 있는 것은 국정원이 비밀스러운 정치공작에 나서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정원이 오히려 비밀 업무라는 특성을 악용해 정치에 개입했다면 다른 어떤 범죄보다 더 철저히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엄중히 문책해야 한다.
이를 그대로 넘어가면 국정원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신뢰가 떨어지고 국정원의 존립기반 자체를 흔드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다분히 정치보복의 성격이 짙은 만큼 우리 사회에 다시는 불행한 정치보복이 재연되지 않도록 한다는 차원에서도 반드시 진상이 규명돼야 할 사안이다.
전 정권의 일이어서 책임이 없다는 말로는 안된다. 국민을 위한 국정원으로 거듭나도록 해야 할 책임이 이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