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아널드 토인비는 저서 '죽음에 대하여'에서 '죽음의 독침은 죄이다'라고 말한다. 돌연한 죽음은 살아남은 자에게 죄의식을 남긴다. '나는 무엇을 해줬나' 하는 자책과 자기비난이 유족을 몰아세우는 것이다. 이 죄의식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면 독침이 되어 유족의 마음과 육체를 파괴하는 게 일반적이다. 대형참사 유족은 직접 가족의 시신을 확인할 때 돌연한 죽음이 초래하는 죽음의 독침으로부터 치유될 수 있다.
신간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펜타그램 펴냄)는 520명이 사망한 1985년 8월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28명이 희생당한 1988년 3월 일본 고교 수학여행단의 상하이 열차 충돌사고 등 대형참사로 사랑하는 이를 상실한 유족이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을 기록한 논픽션이다.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노다 마사아키가 7년에 걸쳐 유족과 나눈 이야기를 담았다.
책의 전반부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유족의 심리상태와 치유과정을 서술한다. 유족에게 시신이 어떤 의미이고, 잘못된 보상의 과정이 어떤 아픔을 안겨주는지, 유족의 시간과 관계자의 시간이 어떻게 다르게 흐르는지 등을 썼다. 후반부는 상(喪)의 비즈니스의 출발점인 언론매체의 선정성을 비판하고, 가해자와 희생자가 뒤바뀐 관 주도 합동 위령제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며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일본사회에 쓴소리를 날린다.
이 책의 출간으로 일본 사회에서 '대형참사 유족의 슬픔은 개인적 차원의 심리 처방으로는 치유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곧이어 유족에 대한 사회적인 심리치료 지원이 시작됐다. 공교롭게도 일본에서는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2014년 4월 16일 이와나미 현대문고를 통해 재발간됐다. 정신의학적 내용을 담았지만 문학성을 인정받아 제14회 고단샤 논픽션상을 받았다.
곧 1주기(4월 16일)를 맞는 세월호 참사는 안전 불감증에 빠진 우리사회의 부산물이다. 죽음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을 관찰하고 분석한 이 책은 세월호 참사 유족의 슬픔과 고통에 대한 이해를 도와줄 것이다.
그녀는 슬픔의 6단계 중 충격 후의 부정, 분노, 우울의 단계를 급속하게 뛰어넘어 사회화의 단계로 나아간다. 남편의 시신만이 아니라 다른 유족들에게도 남아 있는 시신을 돌려주려는 치열한 사회적 활동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평범한 주부였던 그녀는 경찰, 우에노무라 촌(村)사무소, JAL, 운수성을 상대로 싸우기 시작했다. (48P)
{RELNEWS:left}그러나 또 다른 방향의 의미가 있다. 우리는 사건을 통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현대 사회는 어떻게 되어 있나를 알게 된다. 근대 이전에는 사람들은 사건을 통해서 초자연적인 것이나 신의 계시를 들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사건을 통해서 동시대를 사는 인간성 그 자체, 내가 사는 사회 그 자체에 대한 인식을 심화하게 된다. (359P)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 노다 마사아키 지음, 서혜영 옮김 / 펜타크램 / 1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