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란아, 이제 네가 팀을 이끌어야 한다' 올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국민은행의 중심에는 현재와 미래의 에이스 변연하(오른쪽)와 홍아란이 자리잡고 있다.(자료사진=국민은행)
남자프로농구(KBL)에 이어 여자프로농구(WKBL)도 '봄 농구'가 한창입니다. 정규리그 3위 국민은행이 2위 신한은행을 격침시킨 데 이어 1위 우리은행에까지 먼저 일격을 가하는 등 '언더독의 반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국민은행 돌풍의 중심에는 '맏언니' 변연하(35 · 180cm)가 있습니다.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 2014-2015 여자프로농구' 플레이오프(PO) 2연승은 물론 22일 우리은행과 챔피언결정 1차전에서도 맹활약하며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여기에 3년차 홍아란(23 · 173cm)의 분전도 돋보였습니다. 신인 티를 벗고 서서히 팀의 주축으로 자리잡고 있는 홍아란이 변연하를 도와 승리를 뒷받침했습니다. 현재의 에이스와 미래의 에이스, 12살 차 띠 동갑이 국민은행의 거침없는 상승세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2일 우리은행과 1차전 승리는 38점 16리바운드의 괴력을 뽐낸 스트릭렌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변연하, 홍아란이 없었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변연하는 37-35로 쫓긴 채 들어선 3쿼터만 3점슛 2개를 터뜨리며 리드를 벌렸고, 살얼음 승부가 이어지던 4쿼터 막판에는 절묘한 스텝과 날카로운 커트인, 침착한 자유투로 쐐기를 박았습니다. 이날 17점 5도움의 만점 활약. WKBL 16년차, 역대 챔프전 통산 최다 득점(775점), 현역 최다 출전(45경기)의 경험이 빛났습니다.
'저건 못 막아' 국민은행 변연하(10번)가 22일 우리은행과 챔프전 1차전에서 레이업슛을 넣는 모습.(춘천=WKBL)
홍아란의 활약도 뒤지지 않았습니다. 이날 홍아란은 6점 5리바운드 2도움으로 수치상으로는 평범했습니다. 하지만 승부처에서 맹활약했습니다. 3점 차로 쫓긴 경기 종료 1분40초 전 상대 휴스턴의 공격자 반칙을 유도했고, 역시 1점 차던 종료 18초 전 천금의 미들슛으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여기에 4쿼터 막판 잇따라 귀중한 공격 리바운드를 잡은 것도 컸습니다.
경기 후 서동철 국민은행 감독은 "변연하가 사실 허리 근육통으로 전날 훈련을 거르는 등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도 좋은 활약을 펼쳤다"고 칭찬했습니다. 홍아란에 대해서도 "막판 쐐기 득점 하나만으로 오늘 공격은 다한 것이나 다름없고, 공격자 반칙 유도도 값졌다"면서 "큰 선수로 거듭났다"고 격찬했습니다.
신한은행과 PO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변연하는 1차전에서 3점슛 4개 포함, 양 팀 최다 14점 팀 최다 5도움으로 54-51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2차전에서는 7점에 머물렀지만 양 팀 최다 8도움을 올리며 노련하게 경기를 조율, 역시 65-62 역전승을 견인했습니다.
홍아란도 1차전에서 변연하와 함께 팀내 유이한 두 자릿수 득점(10점, 3도움)을 올렸고, 2차전에서도 13점 5리바운드로 든든하게 뒤를 받쳤습니다. 올 시즌 생애 처음이자 팀내 유일한 정규리그 '베스트5'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입증했습니다. 변연하의 뒤를 이을 차세대 에이스를 증명했습니다.
'절대 못 내줘' 국민은행 홍아란(왼쪽)이 22일 챔프전 1차전에서 우리은행 이승아를 스크린 아웃하는 모습.(춘천=WKBL)
사실 둘의 관계는 애틋함이 물씬 묻어납니다. 홍아란은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베스트5를 수상한 뒤 소감을 밝히다가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언니 변연하의 희생에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홍아란은 수상 소감으로 "팀 모두에게 고맙지만 특히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은 변연하 언니"라면서 목소리에 울음이 섞였습니다.
끝내 눈물을 쏟아낸 홍아란은 "내가 1번 포인트 가드 역할을 많이 못 해서 연하 언니가 많이 힘든데도 언니 자리가 아닌 1번으로 뛰었다"면서 "언니 역할은 대한민국 최고의 포워드인데 항상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라는 걸 꼭 얘기하고 싶다"고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올 시즌 국민은행의 1번은 홍아란이었지만 시즌 초반 2번 슈팅 가드로 옮겨갔고, 그 자리를 변연하가 대신했습니다. 홍아란은 정규리그 평균 10.5점(15위)으로 득점력이 뛰었고, 2점 야투상(55.06%)과 자유투상(90.41%)까지 받았습니다.
변연하도 도움 2위(4.2개)에 오르는 등 변신에 성공했습니다. 팀도 PO에 진출해 승승장구, 실로 '윈-윈'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언니, 고마워요... 뭘 그걸 갖고'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베스트5에 오른 국민은행 홍아란(왼쪽)이 수상 소감에서 특별상을 받은 변연하에게 감사함을 밝히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자료사진=WKBL)
변연하는 국가대표에서 에이스의 자리를 후배에게 물려줬습니다.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20년 만에 금메달을 이끈 변연하는 우승 축하연에서 후배 김정은(28, 하나외환)을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습니다.
당시 변연하는 "사실 정은이는 WKBL 최고 선수인데 대표팀에서는 나 때문에 많이 못 뛰었다"면서 후배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어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 아시안게임인 내 상황을 알고 잘 이해해줬다"면서 "이제 대표팀을 이끌 선수는 김정은"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소속팀에서는 아직 에이스의 자리를 놓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경기에서 왜 그래야 하는지를 플레이로 입증했습니다. 그러나 변연하는 언젠가 마음놓고 그 역할을 홀가분하게 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래, 아니 어쩌면 현재의 에이스로 쑥쑥 크고 있는 홍아란이 있기 때문입니다.
변연하는 신한은행과 PO 1차전 때 홍아란을 비호하며 맏언니의 카리스마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홍아란이 상대 하은주(32)와 신경전을 벌이자 앞에 나서서 후배를 챙긴 겁니다. 변연하는 "무서우면 내 뒤로 숨으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변연하의 애정과 보호 속에 홍아란이 무럭무럭 커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에이스 계보'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축하연에서 우정을 과시한 변연하(오른쪽)과 김정은.(자료사진)
p.s-김정은은 아시안게임 우승 축하연 뒤 변연하가 자신을 울렸던 사연을 들려줬습니다. 대회에 앞서 변연하가 "언니가 너무 오래 뛰면서 네 자리를 뺏는 것 같아서 정말 미안하다"면서 "나는 마지막이니 이제는 네가 에이스로서 대표팀을 이끌어달라"는 말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는 겁니다.
홍아란도 그렇고, 변연하는 후배들을 많이 울리네요. 하지만 그 눈물은 아픔이 아니라 고마움으로 뭉클합니다. 언니로서, 선배로서 따뜻함이 묻어나는 짠맛입니다. 눈물 속에 여자는 성장하고 에이스가 크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