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에도 우승했어요." 선일여고의 전승 행진을 이끈 우리은행 전주원 코치. (자료사진=WKBL)
[90년대 문화가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토토가'는 길거리에 다시 90년대 음악이 흐르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90년대는 스포츠의 중흥기였습니다. 하이틴 잡지에 가수, 배우, 개그맨 등과 함께 스포츠 스타의 인기 순위가 실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렇다면 90년대 스포츠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90년대 문화가 시작된 1990년 오늘로 돌아가보려 합니다.]
여자프로농구가 우리은행의 통합 3연패로 막을 내렸습니다. 위성우 감독을 비롯해 전주원 코치와 강영숙은 통산 11번째 우승 반지를 수집했습니다. 사실 전주원 코치는 프로가 출범하기 전부터 우승이라는 단어와 인연이 깊었는데요.
특히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그야말로 대회에 나가면 우승이었습니다.
25년 전 오늘. 그러니까 1990년 4월3일은 코치 전주원이 아닌 고등학생 선수 전주원이 뛰는 선일여고의 전관왕 신화가 시작된 날입니다.
중고 농구 시즌 첫 대회인 제27회 봄철전국남녀중고농구연맹전이 3월27일부터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렸는데요. 4월3일 여고부 결승전에는 선일여고와 마산여고가 맞붙었습니다. (참고로 남고부 결승전은 경복고와 용산고의 대결이었습니다.)
당시 선일여고에는 전주원이라는 고교 최고 가드와 센터 이희주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둘은 그 해 1월 전주원이 1억5000만원에 현대증권행, 이희주가 1억원에 태평양화학행을 일찌감치 확정했을 정도로 기량이 빼어났습니다.
게다가 또 다른 3학년 이지현, 김영숙과 2학년인 한현선이 뛰면서 주전 5명의 평균 신장이 179cm에 육박했습니다.
반면 마산여고에는 1학년 유망주 정선민이 있었습니다.
전반 막판에 25-26으로 역전을 허용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마산여고의 리드였습니다. 하지만 선일여고가 워낙 강했습니다. 결국 후반 마산여고를 압도하면서 64-48, 16점 차 여유 있는 승리를 거뒀는데요. 최우수상을 받은 이희주가 19점을 올렸고, 전주원도 17점을 기록했습니다. 정선민은 12점을 넣었지만, 팀 패배를 막지 못했습니다.
1987년을 시작으로 대회 4연패였습니다. 쉽게 말해 전주원이 뛰는 동안은 봄철대회 우승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다는 말이겠죠.
중요한 건 봄철대회가 시작이었다는 점입니다.
선일여고는 6월 대통령기 3연패에 성공했고, 7월에는 쌍용기마저 접수합니다. 8월에는 제45회 전국종별농구선수권대회에서 5년 만에 우승이라는 감격을 누렸죠. 끝이 아닙니다. 10월에는 전국체전을 제패했고, 11월에는 학산배 우승으로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6관왕의 위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