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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뉴턴의 사과나무' 후손이 한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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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뉴턴의 사과나무' 후손이 한국에 있다?

    • 2015-04-21 05:00
    박용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전문연구원

     

    역사적으로 세상을 바꾼 3가지의 사과가 있다고 한다. 에덴동산에 있던 이브의 사과,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의 사과, 그리고 가장 최근에 등장한 스티브 잡스의 사과가 그것이다. 이 중 인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과는 이브의 사과라고 할 수 있겠지만, 과학적 측면에서는 단연 뉴턴의 사과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저녁을 먹은 후 날씨가 따뜻해 우리는 정원에 나가 사과나무들 밑의 그늘에서 차를 마셨다.… 그는 전에 중력에 관한 생각이 떠오를 때와 아주 흡사한 상황이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가 앉아 사색하고 있을 때, 그러한 중력에 관한 생각이 떠오른 것은 사과 하나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왜 사과는 항상 지면에 수직하게 떨어지는 걸까 하고 혼자 생각했다.…"

    1752년 출판된 뉴턴의 첫 회고록을 쓴 윌리암 스터클 리가 1666년 늦여름에 있었던 뉴턴의 사과 일화에 대해 기술한 대목이다. 사과가 떨어지는 순간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닫고, '유레카'를 외치는 뭔가 극적인 장면은 아니지만, 사과는 분명 뉴턴이 중력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동기를 제공한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있는 '뉴턴의 사과나무'

    그의 정원에 있던 사과나무의 후손이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에서 자라고 있다.

    처음 뉴턴의 사과나무가 KRISS에 오게 된 것은 한국표준연구소 설립 당시 산파역할을 했던 미연방표준국에서 한미 과학기술 협력의 상징으로 뉴턴의 사과나무를 기증했기 때문이다. 당시 미연방표준국에서 자라고 있던 뉴턴의 사과나무 가지를 잘라서 접목한 세 그루의 사과나무가 1978년 10월 3일 주한 미국제개발처를 통해 한국표준연구소에 기증됐다.

    원래 뉴턴이 살던 집의 정원에 있던 사과나무는 1816년 폭풍으로 쓰러져 가지가 상했지만, 나무의 주요 부분은 살아남아 다시 심겨졌다. 영국 요크대학 물리학과의 키싱(Richard Keesing)교수에 의하면 놀랍게도 350년이 넘은 이 나무는 지금도 뉴턴이 살던 집(Woolsthorpe Manor)에서 자라고 있다고 한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상징물인 '뉴턴의 사과나무'.(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KRISS 뉴턴의 사과나무'의 계보를 살펴보면, 먼저 린컨셔의 벨톤팍에 있는 브라운로 경의 과수원에서 자라던 1대손 나무로부터 자른 가지가 1937년에 영국 이스트 몰링 과일연구소에 보내져 접목돼 2대손 나무로 자라고 있었다. 그 후 1943년 이 나무는 미국 펜실베니아 역사편찬위원회에 보내지고, 다시 1957년 3월 미 국립표준기술연구소로 옮겨졌다.

    KRISS에 온 첫 세 그루는 바로 이 나무의 가지를 가지고 접목한 뉴턴의 사과나무 원목의 제 3대손이 되는 것이다. 미국으로부터 들어와 KRISS에서 자라던 세 그루의 나무들은 30여 년 정도를 살다 이 중 마지막 나무가 2006년에 죽었다.

    현재는 이 나무로부터 접목되어 키우던 제 4대손 사과나무가 물리동 및 행정동 앞에서 자라고 있어 KRISS의 상징물로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KRISS는 국립중앙과학관, 과천국립과학관과 서울과학고 및 대전과학고 등 11개 기관에 제 4대손 사과나무를 기증해 젊은 학생들이 뉴턴의 과학정신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 뉴턴의 사과나무 정통성은?

    가끔 KRISS를 방문하는 방문객 중에는 원래의 사과 씨를 심어 키우지 않고 왜 접목을 해서 번식하는지를 묻는 사람들이 있다.

    접목이란 뿌리가 있는 다른 나무줄기(대목)에 눈이 붙어 있는 줄기(접수)를 접착시켜 하나의 나무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어찌 보면 다른 나무와 합쳐진 새로운 나무가 과연 뉴턴의 사과나무의 정통성을 이어 받았느냐는 질문일 것이다.

    그런데 과일나무의 경우 과일의 유전인자는 바로 눈이 있는 줄기에 담겨 있다. 그러므로 접목된 나무는 뿌리가 튼튼하고 토양에 강한 대목으로부터 수분과 양분을 공급받고 접목된 줄기로부터 유전인자를 받아 꽃을 피우고 과일을 맺게 된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을 찾은 청소년들이 '뉴턴의 사과나무'를 견학하고 있는 모습.(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예를 들어 고염나무 뿌리에 품질 좋은 단감의 가지를 접목했다면 나중에 이 나무가 자라서 열매를 맺을 때에는 고염이 아닌 단감이 맺히게 된다. 그런데 꽃이 피었을 때 일반적으로 다른 나무의 꽃가루로 수정되기 때문에 열매 속에 있는 씨앗은 접목된 가지의 유전자뿐만 아니라 다른 나무의 유전자를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이 씨앗을 심게 되면 열매를 맺었던 나무와 조금 다른 유전자를 지닌 잡종 나무가 되어 열매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즉 뉴턴이 보았던 사과와 꼭 같은 유전자를 지닌 사과를 보기 위해서는 씨를 사용하지 않고 원 나무의 가지를 접목하는 방법을 사용해야만 한다. 물론 토양과 기후가 다르기 때문에 과일의 크기나 당도 등은 달라지게 될 것이다.

    뉴턴보다 훨씬 이전부터 사과는 수없이 땅으로 떨어졌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뉴턴은 이 현상에 '왜?'라는 질문을 던졌으며, 이를 통해 과학의 중요한 획을 긋는 발견을 했다. 이처럼 창의력이란 세상에 없는 것을 생각해 내는 능력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는 것들을 다른 시각으로,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능력이다.

    KRISS에 있는 뉴턴의 사과나무가 올해에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많은 사과가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KRISS를 찾아오는 청소년과 일반 방문객들은 뉴턴의 사과나무를 직접 보며 뉴턴과 가슴 설레는 만남을 가질 수 있다. 견학 신청은 KRISS 홈페이지(http://www.kriss.re.kr)를 통해 접수하면 된다.

    ※ 본 기고/칼럼은 노컷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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