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전 중앙대 재단 이사장이자 두산중공업 회장
"제 목을 쳐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내가 쳐줄 것이다."
이 말은 수니파 무장단체인 IS가 인질 참수 전 유튜브에 남긴 경고가 아닙니다.
'킹스맨' 해리가 악당 발렌타인에 의해 심어진 분노 유발 유심칩으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면서 한 말도 아닙니다.
바로 박용성 전 중앙대 재단 이사장이자 두산중공업 회장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박 전 회장은 지난달 24일 학과제 폐지 등 학내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교수들에게 인사보복을 추진하며 "목을 쳐주겠다"는 고상한 '회장님'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표현을 썼습니다.
글재주보다 칼재주(?)가 뛰어난 박 전 회장은 중앙대 이용구 총장과 보직교수 등 20여명에게 보낸 '참수 예고 이메일'로 여론의 뭇매를 맞다 한달 여만인 21일 이사장직과 두산중공업 회장 등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습니다.
박 전 회장은 지난 2010년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은 뒤 이름뿐인 회장직만 유지해왔습니다. 교내 막말 파문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면 사실 이사장직만 사임해도 될텐데 두산중공업 회장, 대한체육회 명예회장까지 내려놓았습니다.
경영권을 놓고 형과 다투던 '욕심꾸러기'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소탈한 모습에 두산 그룹조차도 당황스럽다는 반응입니다.
치명적이었던 페놀 사건에, 형제의 난으로 핏줄과도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그가, 고작 한 달 동안의 비난 여론에 못 이겨 한 벌도 아닌 모든 옷을 벗었을까요?
'막말 이메일'이 직격탄이 됐지만 검찰의 칼끝이 박 전 회장을 겨누면서 전격적으로 사퇴했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립니다.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수사망을 좁히면서 박 전 회장의 소환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습니다.
박 전 수석은 4년 전 중앙대 캠퍼스 통합과 적십자간호대 인수 당시, 자신이 총장을 지낸 중앙대에 특혜를 주도록 교육부 등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요,
검찰은 그 과정에 박 전 회장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등 학교 정책에 전권을 행사한 것으로 판단하고 소환 시기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중앙대와 적십자간호대의 합병 과정에서 중앙대 이사장이던 박 전 회장에게 합병 실무가 모두 위임된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
검찰이 박 전 회장의 목을 조여오자, 그는 "목을 쳐주겠다"는 막말 이메일을 빌미삼아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습니다. 그저 자신의 목을 숨기기에 급급한 모양입니다.
{RELNEWS:right}"최근 중앙대와 관련해 빚어진 사태에 대해 이사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대학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이 과정에서 논란과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학내 구성원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것이 박 전 회장의 입장입니다.
아버지 세대 취업 준비생들의 로망이었던 OB맥주, 얼마나 우직하고 든든했으면 야구 구단 이름도 '베어스'로 지을 만큼 세대를 거치면서도 '신뢰' 이미지를 굳혀왔던 기업 회장의 불명예스러운 퇴장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막말 파문에 온갖 비리로 신뢰를 잃은 박 전 회장의 종착점이 '자진 사퇴'인 것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인 셈입니다.
'검(檢) 무서운 지 모르던' 박 회장이 '제가 놓은 검(劍)'에 목을 내놓아야할 처지가 됐습니다. 다만, 검찰의 칼끝이 얼마나 날카로울지, 갈수록 무뎌질지는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