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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만, 쌍둥이까지 아들만 4명… 가장 기뻐할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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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만, 쌍둥이까지 아들만 4명… 가장 기뻐할 사람은?

    "박 회장, 청와대에 불러도 안 갈 것"

    박근혜 대통령의 유일한 남동생인 박지만 EG 회장 (사진=박종민 기자)

     

    두 아들의 아빠인 박지만 EG 회장이 또 아들 둘을 얻었다. 아들만 4명인 다둥이 가장이 됐다.

    지난 2004년 46세에 늦깎이 결혼을 한 박 회장은 부인 서향희 변호사가 또 아들 쌍둥이를 낳자 흥분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서 변호사가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아들 두 명이 한꺼번에 태어날 줄을 몰랐다"면서 "또 두 아들을 보게 돼 몹시 기뻐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첫째 세현이와 둘째 정현이를 낳은 뒤 그만 낳을까 생각을 했으나 아이를 갖게 되면 더 낳겠다는 서 변호사의 뜻을 꺾지 못했다고 들린다.

    박 회장은 위로 누나들이 있었지만 형과 남동생이 없이 외롭게 자란 탓인지 내리 네 명의 아들이 태어난데 대해 자신처럼 외롭게 크지 않겠다며 안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박 회장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인 지난 1974년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흉탄에 서거하고 육군사관학교 3학년 때인 1979년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마저 돌연 세상을 뜨자 의지할 곳을 찾지 못해 몹시 방황했다고 한다.

    박지만 씨와 서향희 변호사의 결혼식 (자료사진)

     

    박 회장은 유독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으로 형제가 많고 형제애가 남다른 친구들과 동료들을 부러워했다고 한다.

    그는 잔정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에게 아들 4명이 태어났으니 하늘을 날아갈 듯이 기뻐했을 게 당연하다"고 박 회장의 한 후배는 말했다.

    아들 4명 출산에 대해 박 회장 다음으로, 박 회장보다 더 기뻐할 사람은 생존해있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였을 것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지난 2월 22일 부인인 고 박영옥 여사의 빈소를 찾은 박지만 회장이 "집사람이 쌍둥이를 임신해 오지 못했다"라고 하자 "이왕이면 세쌍둥이를 만들라. 아버지가 계시면 얼마나 좋아하실까"라고 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겐 아들 한 명에게서 손자만 4명이 태어났으니 JP의 말처럼 손자들을 안고 껑충껑충 뛰어다녔을지도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7년도에 쓴 자서전에서 "동생 지만이가 태어났을 무렵 나는 여섯 살이었다. 아버지는 지만이를 끌어안고 세상에서 제일 큰 부자인양 웃고 계셨다, 착하고 영리한 지만이는 웃음이 많아 주위의 사랑을 독차지했다"고 적었다.

    지만 씨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사랑을 독차지했다는 간접적인 설명이다.

    그런 박 전 대통령이었으니 '손자들이야 오죽했을까'라는 추정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조카 두 명이 쌍둥이로 태어난 데 대해 반갑지 않을리 없겠지만 지금까지 표시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인은 "박 대통령 축하 난이 오지 않은 것으로 알며 산모를 찾았거나 동생인 박 회장에게 축하 전화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쌍둥이 조카 출산(4월 28일) 일주일이 지난 6일 아침까지 박 대통령이 조카들의 출산과 관련해 축하 등의 조치를 취했다는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지난 2005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지막 씨의 득남을 축하하고 있다. (자료사진)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지난 2005년 10월 12일 큰 조카가 태어난 뒤 직접 병원을 찾아 산모이자 올케인 서 변호사의 출산의 고통을 위로했으며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한 친박계 의원은 "아버지께서 계셨으면 몹시 기뻐하셨을 것이라는 말을 한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 박 회장 부부와 조카들을 청와대로 부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박 회장도 청와대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한 지인은 "일부 언론에서는 박 대통령이 박지만 회장을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게 한다고 보도하지만 박 회장 본인이 결코 가고 싶지 않아 하고 있으며 누나인 대통령이 오라고 불러도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에게 청와대란 어릴 때부터 놀던 놀이터와 같은 곳으로 그 어떤 매력도 없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과 박지만 회장과의 사이에 금이 간 것은 정권 출범 이후로 알려졌다.

    항간에는 박지만 회장이 박 대통령에 직언을 했다가 핀잔만 맞았다는 설이 흘러다닌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신당동 가옥 자녀방 액자사진, 박정희 전 대통령 품에 있는 아이는 어린시절의 박지만 씨,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의 어릴적 모습 (서울시 제공)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선거를 도왔던 지만 씨는 지난해 무렵부터 주위에 박 대통령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토로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정윤회 문건 파문이 난 이후 상당 부분 소원해졌다는 후문이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정윤회 문건 파문에 박 회장이 연루된 것에 대한 입장을 말해 달라'는 질문에 "자기(조응천 전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을 지칭한 듯)의 개인적 영리, 욕심을 달성하기 위해 전혀 관계없는 사람과 사람(정윤회 씨와 박 회장) 중간을 이간질시켜 어부지리를 노리는 데 말려든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그런 '바보' 같은 짓에 말려들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된다"고 박 회장을 향해 강력히 경고했다.

    박 회장은 그 이후 검찰 소환을 받고 모든 것을 안고 가겠다며 입을 닫았다.

    겉으론 누나인 박 대통령과 박지만 회장 사이엔 앙금이 남은 것처럼 보인다.

    한 정치인은 "박 대통령과 박지만 회장과의 관계는 박 대통령이 대통령 자리에 있는 한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안다"고 내다봤다.

    정치권에서는 박지만 회장이 누나인 대통령의 힘을 악용해 이권과 인사에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이 회자된다.

    한편 박지만 회장은 부인인 서향희 변호사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무척 존경한다고 한다.

    지난 74년 육 여사를 눈물로 보낸 이후 40년 만에 방황하던 삶의 종지부를 찍게 해준 반려자가 서 변호사라며 무척 고마워한다는 것이다.

    74년 이후의 삶은 마약과 구치소, 유흥가 전전으로 점철된 '방황' 그 자체였다.

    박 회장은 1989년부터 2002년까지 6번이나 마약투약으로 적발돼 구치소와 치료시설을 들락거렸고, 2002년 10회 이상 상습적으로 히로뽕을 투약한 혐의로 5번째로 구속됐었다.

    풀려난 뒤 광주 출신인 서 변호사를 만나 2004년 결혼을 했고 이듬해 첫 아들을 얻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의 도움을 받아 설립한 회사도 그때부터 잘 나갔다고 한다.

    박지만 회장은 작은 누나인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에게 지난해 말 전셋집을 얻어줬다고 남편인 신동욱 씨가 밝혔다.

    박 회장은 둘째 누나의 생활비도 보조해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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