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최근 몇 년간 세계적 '환율전쟁'에서 대표적으로 불이익을 당한 나라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제강국들의 양적완화로 원화가치가 급상승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미국 등은 한국을 대표적 외환시장 개입 국가로 지목했다. 이에 따라 한국이 차별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6일 국제금융시장에 따르면 환율전쟁의 대표적 승자로 꼽히는 일본 엔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유로화와 비교하면 원화의 상대적 강세는 뚜렷하다.
엔화 대비 원화 가치는 2013년 이후 지금까지 36.0% 급등했고 유로화 대비 원화 가치도 작년 하반기 이후 지금까지 14.71% 뛰어올랐다.
문제는 이 같은 원화의 상대적 강세에도 한국이 오히려 외환시장 개입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달 주요 교역국의 경제·환율 정책 반기 보고서에서 한국을 대표적인 외환시장 개입 국가로 지목하고 시장 개입을 줄이라고 요구했다.
재무부는 한국 정부가 원화 절상을 막기 위해 작년 여름 외환시장에 강하게 개입했고 작년 12월과 올해 1월에도 개입을 재개했다고 주장했다.
재무부는 한국 당국이 원화 추가 절상을 허용해야 한다며 "이 사안에 대해 관여를 강화했다"고 '옐로카드'를 날렸다.
이에 대해 한국 당국은 원화 절상을 막기 위한 외환시장 개입을 부인했다.
더욱이 미국이 선진국인 일본·유로존과 한국을 차별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한국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이 엔화·유로화의 대폭 약세에 대해서는 전혀 비판하지 않으면서 원화의 상대적 강세로 어려움을 겪는 한국만 압박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관점은 통화완화 정책을 '환율전쟁의 무기'로만 좁게 보는 시각에서 비롯한 '오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통상 금리인하·양적완화 등 통화완화를 기본적으로 내수경기 부양을 위한 정당한 정책으로 평가한다.
따라서 이에 따른 통화 약세는 부산물 정도로 간주해 당국의 외환시장 직접 개입과는 철저히 구분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당국은 일본·유로존의 통화완화를 지지하는 입장을 지속해왔다.
작년 11월에는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과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11월 일본은행과 유럽중앙은행(ECB)에 경기 회복을 위한 통화완화 정책을 권고한 바 있다.
미국은 문제의 재무부 환율 보고서에서도 일본·독일 등에 대해 내수를 부양해 과도한 경상흑자를 줄이라고 주문하면서 이를 위한 정책 수단으로 통화완화와 재정부양, 구조개혁의 '3종 세트'를 제시했다.
여기에는 통화완화가 가져오는 엔화·유로화 약세 및 달러 강세로 인한 미국 수출의 손해보다는 일본·유로존의 내수 회복에 따른 미국 수출의 이익이 더 클 수도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IMF의 경우 일본은 물론 한국에도 경기 회복을 위한 추가 통화완화 정책을 촉구하고 있다.
IMF는 최근 한국과의 연례협의(Article IV Consultation) 결과 발표에서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1%로 낮추고 추가 통화완화와 재정지출 확대 등을 주문했다.
통화완화를 환율전쟁과 동일시하는 시각에 대해 세계적 자산운용사 핌코의 앤드루 볼스 세계채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유로화 약세를 초래한 ECB의 양적완화는 "'무역 상의 전쟁 행위'(act of trade war)가 아니라 유로존의 심각한 디플레이션 리스크에 대한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달러 강세 또한 외국의 외환시장 개입이 아닌 미국과 다른 나라 경제의 근본적인 차별화 때문이므로 미국은 환율전쟁의 피해자가 아니라고 평가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은 통화완화로 경기를 회복시켰기 때문에 통화정책에 따른 환율 변동은 용인하는 편이나, 외환시장 개입을 통한 환율 조정은 상당히 경계한다"고 지적했다.
성 교수는 "따라서 한국이 내수 문제 등을 고려해 통화정책을 사용하고 그 과정에서 원화가 엔화와 비슷한 추세를 유지했다면 미국이 이렇게까지 압박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통화 당국의 적극 대응 필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