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이거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백주부’, ‘백선생’ 등으로 불리며 요즘 대세로 평가받는 요리 연구가 백종원(49) 씨의 요리 방송을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요리 불능 네 남자에게 요리를 전수 중인 백종원 씨. ('집밥 백선생' 중, CJ E&M 제공)
저는 요리를 잘 못합니다. 못하기도 하고, 그다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이걸 '요리'라고 하면 비웃음을 사겠지만 할 줄 아는 건 라면·계란 프라이 정도입니다. 그냥 김이나 젓갈 정도의 밑반찬만 있으면 한 끼 때우고, 정 안 되면 배달 음식을 먹으면 되는데 굳이 요리를 할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요리 하기 싫은 남자의 변명입니다.)
요리 잘하는 남자를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차줌마로 불렸던 배우 차승원 씨가 <삼시세끼 -="" 어촌편=""> 방송에서 선보인 요리 솜씨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따라해 놓고 보면 맛도 없어 핀잔이나 듣고, 설거지 거리만 잔뜩 쌓이니 다시는 안 하게 됩니다.
“요즘 요리하는 남자가 대세”라며 아내는 요리를 해 보라고 권유하지만, “그냥 내가 잘하는 설거지나 열심히 하겠다”며 저는 거절하곤 합니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도저히 미룰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집안 대청소를 하던 중 아내가 허리를 삐끗해서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점심은 별미라며 ㅍ비빔면을 끓여 먹고, 저녁에는 중국집 음식을 주문해 먹었는데, 다음 날도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침대에 누워 티비를 보던 아내가 하필이면 백종원 씨가 김치전을 만드는 방송을 보면서 먹고 싶다고 하는데 어찌합니까. 인터넷 다시보기로 백종원 씨의 김치전 레시피를 찾아봤는데, “이렇게 간단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요리라는 것을 해봤습니다. 백주부가 시키는 대로 하니 생각보다 쉽게 되더군요. (유연석 기자)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겨 “내가 김치전 해줄게”라고 소리치며 당당히 가위를 손에 쥐었습니다. 백종원 씨가 시키는 대로 유리 보울에 김치를 넣고 가위로 '먹기 좋게' 썬 다음 부침가루와 물을 붓고 반죽을 했습니다. (백 씨는 설거지 거리를 줄이기 위해 칼이나 도마 등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입니다)
맛깔 나는 색을 내기 위해 고춧가루를 넣으라고 해서, 그대로 따라했습니다. 아내의 요청에 오징어도 잘라 넣고 프라이팬에 구웠습니다. 맛있는 김치전이 뚝딱하고 바로 나오더군요.
자신감이 더 붙었습니다. 이후 다음 끼니때는 백 씨의 레시피대로 계란말이, 김치볶음밥, 들기름 계란 프라이도 만들었습니다. ‘요리 별거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쉬웠습니다. 아내의 칭찬이 이어집니다. 아무래도 계속 요리를 시키려는 속셈 같습니다만, 나쁘지 않은 칭찬입니다. 백종원 씨 덕분입니다.
◇ ‘먹방’, ‘쿡방’ 유행 시대에 ‘백주부’가 돋보이는 이유지상파와 케이블을 포함해 요즘 티비는 ‘먹방’(먹는 방송), ‘쿡방’(요리 방송)이 유행입니다. 초기에는 맛집을 찾아가던 방송이었다면 이제는 직접 요리를 하고 먹어봅니다.
<식신로드>(K STAR), <테이스티로드>(올리브TV), <맛있는 녀석들="">(코메디TV) 등이 맛집 탐험 프로그램이라면, <삼시세끼>(tvN), <한식대첩>(tvN), <냉장고를 부탁해="">(JTBC) 등은 직접 요리하고 먹어보는 프로그램입니다.
'쿡방'계를 평정한, 대세 요리 연구가 백종원 씨. (박종민 기자)
그럼에도 백종원 씨가 직접 요리하는 프로 <마이 리틀="" 텔레비전="">(MBC), <집밥 백선생="">(tvN)은 이 중 단연 돋보입니다. 다른 요리 프로는 맛있겠다,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만 따라할 엄두는 안 납니다. 재료 준비부터 화려한 요리 방법까지 초보자로서는 부담됩니다.
백종원 씨 요리는 다릅니다. 저같은 요리 문외한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듭니다. 그는 비싼 재료도 쓰지 않습니다. 집에 있을 법한 재료로만, 그의 말대로 ‘고급진’ 요리를 뚝딱 만들어 냅니다.
재료나 조미료를 몇 그램 넣으라는 수치적인 조언도 없이 ‘적당히’ ‘취향대로’ ‘먹고 싶은 만큼’ 넣으라고 합니다. 멸치로 육수를 내야하는데, 멸치가 없으면 ‘멸치 맛 조미료’를 쓰라는 너스레에 괜한 부담마저 누그러듭니다.
계란말이를 찢거나, 춘장을 너무 볶아 딱딱하게 만들어 버리는 일이 발생해도 그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식으로 넘기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방송 캡처)
계란말이를 하다 찢어서 망치고, 춘장을 오래 볶아 못 먹게 만들어 버리거나, 시간 계산을 잘못해 다시 요리를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등 종종 실패의 모습을 보일 때마다 “원숭이도 나무에 떨어질 때가 있다”며 소탈하게 넘어가는 그의 모습은 친근감을 넘어, 요리라는 게 실패할 때도 있다라는 당연한 교훈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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