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하게 떠나 보낸 남편의 장례도 못 치렀습니다. 집안에 격리돼 있다 보니 밭에서 애호박이 썩는데도 도움을 청할 곳이 없어요. 이웃한테도 죄를 지은 것 같아 민망하구요"
충북 옥천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숨진 A씨 유족들이 '몹쓸 병을 퍼뜨렸다'는 주변의 따가운 눈총 속에 생계수단인 농작물조차 수확하지 못하는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A씨의 부인(63)은 13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도 피해자인데, 마치 죄인이 된 것 같아 얼굴을 들 수 없다"고 괴로운 심경을 토로했다.
숨진 A씨는 지병인 간경화가 악화돼 올해 초 삼성서울병원서 간암 색전술을 받았지만, 틈틈이 농사를 거들면서 건강회복을 꿈꿔왔다.
아내와 함께 경작하는 포도와 애호박 비닐하우스만 4천㎡가 넘는다.
하지만 그는 지난 6일 갑자기 열을 동반한 호흡곤란 증세로 병원을 찾았다가 청천병력 같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난달 27일 진료를 위해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한 게 화근이 됐다. 사경을 헤매던 그는 이틀 만에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가족들의 삶까지 예기치 못한 곤경으로 몰아넣었다.
아흔을 바라보는 노모와 아내, 두 아들 등 온 가족이 메르스 전파 가능성 때문에 집 안에 격리돼 있고, 화장한 그의 유골은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근처 납골시설에 맡겨진 상태다. 장례식은 가족들의 격리가 풀리는 21일에야 비로소 이뤄진다.
집 근처 밭의 수확하지 못한 애호박은 덩굴에 말라붙어 썩고 있다.
그의 부인은 "호박밭 출입이라도 허용해주면 좋을텐데, 꼼짝 없이 집에 격리돼 있어 비닐하우스에서 수확 시기를 놓친 애호박이 썩어나가는데도 보고만 있어야 하는 처지"라며 "죄인 취급을 받다 보니 어디 하소연할 곳조차 마땅찮다"고 애를 태웠다.
애호박은 A씨 부부의 주된 수입원이었다.
4채의 비닐하우스에서 하루 200∼300개씩 수확할 수 있어 한 달이면 200만∼300만원의 소득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의 상태라면 1천 만원 어치의 애호박을 고스란히 밭에서 썩혀야 한다.
A씨 부인은 "이웃들도 왕래를 꺼리는 상황이어서 대리 수확을 부탁할 사람도 없다"며 "남편을 덮친 몹쓸 병이 원망스러울 뿐"이라고 울음을 터뜨렸다.
A씨 가족의 딱한 처지를 전해들은 옥천군은 고민에 빠졌다.
메르스 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가족에게 애호박 출하를 허용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공무원들을 동원해 대신 수확하기도 꺼림칙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군 관계자는 "A씨 가족이 처한 상황은 이해는 되지만, 방역 매뉴얼에 따를 뿐 지금으로서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며 "A씨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격리 농민 지원방안을 충북도 등과 협의해 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