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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억원대 국외재산도피 등의 혐의로 청구된 1세대 무기중개상 정의승(76)씨의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기각되면서 검찰의 군 수뇌부에 대한 로비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서울중앙지법 조윤희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4일 "수사 개시 전에 국외재산 대부분을 국내로 반입한 점, 해외계좌내역을 스스로 제출하는 등 수사에 임하는 태도 등에 비춰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정씨의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앞서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홍콩등 해외에 페이퍼컴퍼니 명의 계좌를 만들어 놓고 독일의 잠수함 건조업체 하데베(HDW)와 엔진제조업체 엠테우 등으로부터 받은 1천억원대 중개수수료를 빼돌린 혐의로 정씨에 대해 지난 1일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RELNEWS:right}
정씨는 과거 엠테우(MTU) 한국지사장으로 일하다가 시스텍코리아와 유비엠텍 등 무기중개업체를 설립한 뒤. 군함과 잠수함뿐만 아니라 육군 K2 전차의 핵심 부품인 파워팩 도입도 중개해온 인물이다.
합수단은 정씨가 빼돌린 돈들을 세탁과정을 통해 국내로 들여와 군 관계자들에 대한 로비자금으로 썼을 가능성을 놓고 수사를 진행해왔다.
실제로 합수단은 지난 2월 구속기소된 안기석 예비역 해군 준장(전 해군작전사령관)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정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정황을 포착하고 안씨에 대해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를 추가했다.
안씨는 자신의 무기중개사업에 부정적인 언론보도를 무마하해달라는 정씨의 청탁과 함께 1억7천500만원을 받은 혐의가 추가됐다.
정씨는 미 경제지에서 "독일 군수업체 싱가폴 지사와 한국 무기중개업체가 한국장교들을 동남아 휴양지에 초청해 향응과 고가의 선물을 제공한 사실이 확인됐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안씨를 찾아가 영향력을 행사해줄 것을 부탁한 정황이 드러났다.
돈을 받은 안씨는 정씨의 부탁대로 해군 명의의 공식 서한을 작성하도록 해군 관계자들에게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씨는 또 2008년 9월과 지난해 8월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이 운영하는 군 장비개발 업체에서 개발 중인 어뢰경보체계장치의 시험평가에 활용하기 위해 군사기밀을 무단으로 탐지하고 수집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정씨는 지난 1993년 율곡 사업 당시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된 이래 22년 만에 철창 신세를 지는 상황을 모면하게 됐다.
정씨는 당시에도 1심에서 실형을 받았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받았다.
반면 거물급 무기중개상을 구속하고 군 수뇌부를 겨냥할 예정이던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의 잠수함 비리 수사에는 급제동이 걸렸다.
합수단은 영장이 기각된 뒤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기각사유를 분석하고 보완수사를 철저히 해 향후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거액의 무기 중개수수료 은닉 및 탈세, 그 과정에서 이를 지키기 위한 로비 등 각종 비리가 방산비리의 출발점이자 본질인 것이 확인된 만큼 묵묵히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며 수사 의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