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에 대해 오길영, 윤지관 교수 간 찬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윤 교수의 7월 14일 기고문에 대해 오 교수가 반박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윤 교수가 재반박에 나섰다.
윤 교수는 7월 14일자 다산연구소의 [다산포럼]을 통해 “문학에서의 표절이란 무엇인가: 신경숙 사태를 보는 한 시각”이라는 글을 기고한다. 여기서 그는 영국의 시인 겸 평론가 T.S 엘리엇의 “미숙한 시인은 흉내 내지만 성숙한 시인은 훔친다”는 문구를 인용하며 신경숙 작가를 두둔한다. 다음 [ ]안 내용은 윤 교수의 위 기고문 일부이다.
[‘좋은 시인은 훔쳐서 더 낫거나 다른 무엇을 만든다’
표절 논란이 있을 때마다 흔히 인용되는 것이 영국시인 T. S. 엘리엇의 “미숙한 시인은 흉내 내지만 성숙한 시인은 훔친다”는 문구다. 표절을 정당화하기보다 문학에는 어떤 ‘독창적인’ 표현이라도 선대 작가들이 이룩해놓은 언어의 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인식이 담겨있다. 엘리엇은 이어서 말한다. “나쁜 시인은 훔친 것을 훼손하고 좋은 시인은 더 낫거나 최소한 다른 무엇으로 만든다. 좋은 시인은 훔친 것을 원래와는 판이한 자기만의 전체적인 감정 속에 녹여내지만 나쁜 시인은 버성기게 엮어놓는다.”
작가가 미시마의 작품을 읽었든 아니든, 그 사실을 기억하든 못하든, [우국]의 일부 문장이 [전설]에서 전혀 다른 감정에 결합되어 빛나고 있다면 작가는 할 일을 한 것이다. 작품과 작가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전설]에서 신경숙은 자신이 엘리엇이 말하는 ‘좋은 시인’임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출판사는 이 작품을 작품집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는데 과연 그것이 정당한가? 문학에서 표절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한 까닭이다.]
이에 오 교수는 “윤 교수의 이런 엘리엇 인용은 논의의 맥락을 호도하는 궤변이다”고 반박한다. 아래 [ ]안 내용은 오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반박문 일부이다.
[엘리엇이 말한 "언어의 망"이나 평론가 해럴드 블룸이 말한 "영향의 불안" 등은 후대 작가의 표절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나온 말이 아니다. 앞선 선배 작가들이 이미 쌓아놓은 문학적 영토 안에서 활동해야 하는, 후대 작가나 시인이 개척해야 하는 새롭고 독창적인 영토를 만들기가 매우 어려운 과업이라는 것. 그 독창성을 얻기 위해 자기 앞에 씌어진 영향력있는 작품들의 말과 표현과 형식과 내용과 주제들이 무엇인지를 최대한 정확히 이해하고, 그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작품을 쓸 때만, 자신만의 작품이 탄생할 수 있다는 창작의 어려움을 표현한 것.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엘리엇의 문제의식이다.
창작의 독창성을 획득하는 과정의 어려움에 대한 엘리엇의 논지는 윤지관에 따르면 표절의 옹호 논리가 된다. 이런 창작의 과정에서 설령 앞선 작품을 인용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그 인용에 대해 적절한 표기와 출처를 밝혀야 한다. 표절, 인용, 인유, 오마주를 그렇게 아무렇게나 뒤섞어서 표절을 옹호해서는 안 된다. 그의 말이 머나먼 한국에서 어느 표절 작가의 입장을 옹호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걸 안다면, 엘리엇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다.]
윤 교수도 오 교수의 반박을 재반박한다. 윤 교수는 이렇게 주장했다. “필자가 엘리엇을 인용한 것도 표절을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라 문학에서 일어나는 차용의 성격에 따라서 어설픈 베끼기에서부터 창조적 변용까지 다양한 형태의 결과가 도출된다는 점을 환기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신경숙의 [전설]의 경우, 일부 문장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표절이 분명해보인다 하더라도, 작품 전체는 그런 과오나 부주의를 넘어설 정도의 성취를 이룩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래도 표절은 표절 아니냐고 하면 인정해야겠지만, 그 정도가 그리 심각한 것도 아니려니와 문학에서 언어 활용에 대한 자유는 폭넓게 인정되어야 하고, 무슨 규율이나 법적인 차원에서 가릴 일도 아닐뿐더러 그것을 빌미도 매도할 일도 아니라고 본다.”
윤 교수는 오 교수가 “창작과정에서 앞선 작품을 차용하는 경우 적절한 표기와 출처를 밝혀야 한다”고 비판한 데 대해 다음과 같이 응수한다. “사실 [전설]의 경우에도 작가가 [우국]에 대한 차용이 있었음을 밝혔다면 이렇게까지 ‘공분’을 사지는 않았을 터이다. 그만큼 둘은 전혀 다른 작품이기 때문에 그런 차용이 그리 큰 흠이 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해도, 원칙적으로 학술논문과는 달리 창작품에서 일일이 주석을 단다는 것은 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그리 좋은 방식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창작자의 예술적 판단과 양심에 맡길 문제인 것이다.”
오 교수는 윤 교수의 재반박에 대해 예상한 답변이라며 이렇게 반응했다. “결국 신경숙의 표절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표절의 ‘혐의’는 있으나 작품의 ‘성취’(?)가 뛰어나므로 표절이 아니라는 논리이다. 처음 나온 창비 명의 재탕이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했으니 이정도로 하겠다”라고.
오 교수는 평론가 황현산 선생이 본인 트위터에 올린 글이 자신의 생각과 같다며 이를 재반론에 대신한다고 밝혔다. "바보는 흉내내고 영리한 자는 훔친다는 엘리엇의 말을 빌려 표절을 합리화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엘리엇의 레토릭일 뿐이고, 그 내용은 표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 교수는 또 “작품의 성취(?)와는 별개로, 표절은 표절이다. 윤지관 선생은 그걸 얼버무리고 있다. 그것이 부분적 표절이든, 전체적 표절이든지. 엘리엇이 말한 남의 것을 '훔쳐오기'는 남의 것을 함부로 가져오라는 뜻이 아니라, 선대의 업적들을 활용하되(표절이 아니라),그로부터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내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해서 남의 것을 함부로 갖다 쓰라는 뜻이 아니다. 위험한 해석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