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주주총회 (사진=삼성물산 제공)
"수많은 독립 주주들의 희망에도 합병안이 승인된 것으로 보여 실망스럽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지난 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이 가결처리된 이후 나온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반응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놓고 삼성그룹과 일전을 치뤘던 엘리엇이 어떤 형태로든 후속액션에 나설 것이란 점을 암시한 것으로 해석됐지만 현실적으로 엘리엇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넓지 않다.
◇ 엘리엇의 3가지 시나리오= 소송, 주주권행사, ISD제기엘리엇이 삼성그룹에 대항해 내놓을 수 있는 대응방안은 큰 틀에서 3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 이번 합병의 부당성을 다투는 제반 소송, 둘째는 대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방안, 세째는 투자자국가소송에 호소하는 방법이다.
삼성그룹은 향후 엘리엇의 세부대응 시나리오로 대략 6가지 정도를 상정하고 있다. ▲ 주주총회 결의 무효소송 ▲ 삼성SDI와 삼성화재 이사진에 대한 배임 소송 ▲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 통합 삼성물산 지분불리기(3%) ▲ 이사진 교체요구 ▲ ISD(투자자-국가 간 소송) 제기 등이 그것이다.
큰틀의 3가지 방안 가운데 마지막 방안은 엘리엇 스스로 '투자자 국가소송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둔 상태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20일 CBS와의 통화에서 "국내 자본시장법이, 엘리엇이 삼성물산에 투자하기 이전에 만들어진데다 이번 사안이 민간기업의 합병 문제이므로 ISD 제소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분석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엘리엇은 소송 아니면 주주권행사 투트랙에서 대(對) 삼성그룹 대응전략을 짤 가능성이 높다.
엘리엇이 앞으로 추진할 소송의 대전제 가운데 하나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주주이익에 반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법적.물적근거를 얼마나 확보하느냐는 것이다. 역으로 삼성그룹이 주도한 합병이 양사 주주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소송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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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엇, '주주정서법' 뛰어넘을 묘책은?엘리엇이 제기할 수 있는 소송은 합병무효를 다투는 소송, 합병 찬성표를 던진 '삼성그룹 계열사'에 대한 배임 소송(삼성SDI와 삼성화재가 대상이 될수 있다), 합병을 주도한 삼성물산 등기이사들에 대한 소송, 국민연금에 대한 소송 등을 상정할 수 있다.
하지만 소송전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이유는 두가지다. 법원의 선행판결들이 모두 삼성에 유리한 방향으로 내려졌고 주주총회를 계기로 주주들의 의사가 명약관화하게 드러났기 때문.
법원은 7일 삼성물산의 자기주식에 관한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라며 엘리엇이 삼성을 상대로 낸 자사주 매각금지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법원의 판단이유는 "삼성물산의 KCC에 대한 자사주 매각이 사회통념상 현저히 불공정하거나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앞서 주주총회 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가처분소송에서도 엘리엇이 패했다.
소송전의 발단은 하나같이 합병추진이 원인이 됐고 소송전이 시작된 건 엘리엇이 합병을 막고자하는 움직임 때문이었다. 엘리엇이 제기할 소송내용에 따라 다르겠지만 법원이 선행판결을 완전히 도외시한 채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지난 17일 오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에서 참석 주주들이 합병 안건에 대한 투표를 하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 낮아진 지분, 반 헤지펀드 정서도 '엘리엇의 아킬레스건'
주주권리를 내세운 대응방안으로는 임시주총 소집, 회계장부 열람 등의 방법으로 파상공세가 가능하다. 하지만 전제조건은 상법상 소수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요건(3%)의 충족이다.
통합 삼성물산에서 엘리엇이 갖게 되는 지분율은 통합전 7.12%→2.05%로 뚝 떨어진다. 삼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엘리엇으로서 지분을 추가매입해야 한다. 엘리엇이 지분 3%를 보유할 경우 그나마 대응력을 가질 수 있다. ▲ 이사교체나 선임을 위한 임시주주총회 소집권 ▲ 주주제안권 ▲ 회계장부열람권 ▲ 검사인 선임 청구권 등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이같은 엘리엇의 대응전략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변수는 두가지. 첫째는 낮아진 엘리엇의 지분이고 둘째는 주주총회 결과 나타난 삼성물산 주주집단 내부의 불리한 역학관계다.
엘리엇의 지분이 7.12%에서 2.05%로 낮아져 회사에 미치는 영향력은 줄수 밖에 없다. 이보다 더 치명적인 약점은 엘리엇이 주총 표대결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패배했다는 점이다. 즉 다수의 주주가 엘리엇의 목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엘리엇의 대응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란 일각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주주들의 정서다. '삼성이 좋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헤지펀드인 엘리엇의 편을 들수는 없다'는 것이고 이런 정서는 주주총회장에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