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노컷뉴스

“선배PD에게 따귀 맞고도 친하게 지내야 했다”

미디어

    “선배PD에게 따귀 맞고도 친하게 지내야 했다”

    [방송사 외주제작 프리랜서 노동인권실태 긴급 증언대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더니, ‘말대꾸하느냐’며 (방송사 선배 PD에게) 따귀를 맞았다. 풀 스윙으로 때려서 (얼굴이) 부었다. 조연출이 PD에게 대들었다가는 PD 입문을 할 수 없고 조직을 떠나야 한다. 나중에 그분이 사과를 해서 다시 친하게 지냈다. 친하게 지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PD가 되어야 하니까.” - 외주제작 프리랜서 이주원 PD(가명)

    방송 제작 시스템이 다단계 하도급화 되면서 독립PD, 작가, 스태프 등 프리랜서들을 향한 방송사 정규직들의 소위 ‘갑질’이 만연해졌다. 돈과 권력을 무기로 어렵고 더러우며 위험한 3D 작업은 독립 PD들의 몫이 됐다.

    앞서 언급한 이주원 PD(가명)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임금 체불, 욕설, 폭행 심지어 성접대 등의 이야기가 풍문으로 들렸다. 어제오늘이 아닌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문제가 될 만한 사건이 발생해도 구조적으로 은폐되고 ‘~카더라’ 수준으로만 전해졌다.

    대다수가 알고 있지만 쉬쉬 넘어갔던 일. 술자리 안주거리로나 삼았던 일.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덮어두었던 일. 그렇게 놔둔 상처가 이제는 곪을 대로 곪아버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다다랐다.

     

    더 이상은 이렇게 일할 수 없다며 ‘독립PD’들이 직접 증언에 나섰다. 28일 오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독립PD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방송사 외주제작 프리랜서 노동인권실태 긴급 증언대회’가 진행됐다.

    이날 증언에 나선 3명의 독립PD는 직접 나타나지 않고, 영상을 통해 익명으로 출연했다. 이들이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는 뻔하다. 신분이 공개되면 방송계에서 완전히 매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방송계는 좁고, 갑을 구조는 명확하다.

    광고를 따오지 못했다는 이유로 방송하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외주제작 프리랜서 김경수 PD(가명)의 사례를 보자.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한 프로그램이 있었다. 격주로 제작사 두 곳이 3개월째 방송을 하고 있었다. 다른 제작사 후배가 어느 날 연락을 해서 ‘이거 선배님이 하는 프로그램인데 우리가 하게 됐다’고 했다. 방송사에 연락했더니 (사전에 이야기도 없이) 그렇게 결정됐다고 통보하더라. 두개 제작사가 하나의 프로그램을 같이 제작하던 상황이었는데, 시청률이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이게 협찬 프로그램이라, 방송사 광고국에서 협찬을 따와서 제작해야 하는 것인데 광고국이 상품에 대해 직접적인 광고를 하라고 요구해왔다. 그때마다 내 결정사항이 아니니 제작국이랑 협의를 하라고 이야기하며 광고국과 싸웠다. 결국, 광고국에서 제작국에 얘기해 나를 일방적으로 자른 결과가 됐다. 더 황당한 것은 방송사 부장이 새로운 (후배가 있는) 제작사에 연락해 누가 (나에게) 얘기했는지 찾아 자르라고 했다. 찾아내지 않으면 일을 안 주겠다고 했다.” - 외주제작 프리랜서 김경수 PD(가명)

    또 다른 증언을 한 하종길 감독(가명)의 증언이다. 그는 종합편집실에서 일하는 업무를 했다.

    “종편을 시작하면 보통 2일 이상 걸린다. 잠도 못자고 수정을 한다. 재종편을 방송사가 요청하면, 추가 요금이 발생해 힘들다. 그런 프로그램은 못하고 줄이고 있다. (방송이 나간 후 수정요구도) 가끔 발생한다. 오타 등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라면 당연히 수정해야 하나, 본사 내부 PD의 취향에 따라 다시 작업해 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개선됐으면 하는 점은) 현실적으로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시간 대비 종합편집료 책정이 다시 이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나온 얘기인데, 월요일에 시사하는 것 자체가 갑질 아니냐고 얘기한 적이 있다. 월요일 오전 시사를 하려면 우리는 주말 내내 일을 해야 한다. 설날이나 추석 명절 연휴 끝난 다음 날 시사하는 것도 개선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도 사람처럼 살지 않겠나. 어이가 없는 게 가편 시사를 하고 나서 채널 PD들이 종합편집실로 오는데 감 놔라 배 놔라 많이 해서 종편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 종편 편집실 하종길 감독(가명)

    증언 영상을 촬영해 상영한 한국독립PD협회 복진오 권익위원장은 “독립 PD들이 모이면 각 방송사에서 당한 이야기들을 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공개적으로 영상을 통해 증언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RELNEWS:right}

    그만큼 공개적인 증언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복 위원장은 “보고 들은 사례가 아닌 직접 경험한 사례들만 모아 계속 영상을 만들어 공개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 영상 제공 : 한국독립PD협회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