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가운데),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 장남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
현해탄을 넘나들며 벌어지는 롯데그룹의 경영권 다툼이 한편의 막장드라마로 치달으면서 대한민국 재벌가들의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부정적 과거사가 새삼 여론의 도마위에 오르고 모처럼 조성되고 있는 재벌총수 사면분위기에도 찬물을 끼얹어 롯데일가를 바라보는 재계의 시선이 곱지 않다.
노쇠해진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그룹 장악력이 갈수록 약화하면서 내연하고 있던 롯데그룹의 경영권 승계가 이번주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그룹 부회장의 선제공격으로 표면화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측은 즉각 주주총회가 요건을 갖추지 못해 무효라고 주장하고 나섰고 이에 신동주 전 부회장은 아버지의 지시서를 공개하며 신동빈 회장측을 압박했다. 신동빈 회장의 독주를 못마땅하게 여긴 신영자 롯데문화재단 이사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이 아버지를 설득해 신동빈 체제전복에 나서고 신동빈 회장은 아버지까지 퇴진시키며 정면대응에 나서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롯데그룹의 경영권을 둘러 싼 다툼의 끝이 보이지 않고 있는 31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신관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이 호텔 신관 34층에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집무실이 위치해 있다. 박종민기자
롯데그룹 입장에서는 경영권 사수가 급선무인지 모르나 국민들 시선에는 재산을 탐한 형제간의 사생결단식 싸움으로 비쳐질 뿐이다. 발단은 90대가 넘도록 그룹의 후계구도를 명확히 정리하지 못한 신격호 총괄회장의 안이한 대응이지만 이를 원만하게 풀어갈 원로도 시스템도 없는 롯데일가의 무능력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권에 눈이 먼 가족간 편가르기에 타협과 합리적 해결의 가능성은 실종된 듯하고 롯데의 오늘이 있게한 고객과 주주들은 아랑곳 않는 분위기에 재계는 물론 국민들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S그룹의 한 관계자는 31일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현재로서는 교통정리가 잘될 여지가 남아 있지만 점점 갈등이 심화되고 추악한 모습으로 발전하면 재벌들 돈 때문에 부모도 형제도 없고 이전투구를 벌인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전체 재계도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특히 재계 전체적으로 악재가 첩첩인 상황에서 롯데 일가가 경영권 다툼을 벌여 과거 재벌가 형제들의 재산다툼 잔혹사에 대한 나쁜 기억을 되살리는 매개체가 되고 있어 대놓고 비난은 못하지만 롯데의 행태가 더욱 못마땅하다.
H와 S, 또다른 S그룹 등 과거 잊을만하면 재현됐던 재벌그룹의 경영권이나 재산, 유산다툼은 국민들에게 적지 않은 피로감을 안겨줬고 최근 들어서는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갑질까지 불거지면서 재벌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은 어느때보다 커진 상황이다. 롯데의 유산다툼은 여기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땅콩 회항' 사태로 논란을 일으킨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 (윤성호기자)
그뿐이 아니다. 지난달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밝힌 광복절특사에 까지 악영향을 미칠 조짐이다.
박 대통령은 특유의 원칙주의에서 물러나 광복 70주년 계기 국민대통합 사면의 필요성을 지난달 13일 역설했지만, 롯데파문으로 인해 재벌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대통령 사면결정에도 부담거리가 됐다.
'한 두번도 아니고 매번 문제를 일으키는 재벌을 사면하는데 대한 반대여론이 간단치 않은데 왜 굳이 재벌에게 또 특혜를 주느냐'는 여론이 비등해진다면 대통령으로서도 전적으로 무시하기 어렵다.
{RELNEWS:right}재계에서는 지난 13일 대통령의 사면발언 이후, '30대그룹 사장단의 경제위기 극복 성명발표'와 '창조경제 챙기기' 등으로 박근혜정부와 호흡을 맞추고 있고 전경련과 새누리당 지도부가 재계 총수 사면을 잇따라 건의하면서 사면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총수가 사면 대상자로 거론되는 SK나 한화, LIG그룹 등에서는 민감한 이슈인 사면과 관련해 말을 아끼고 있지만 모처럼 조성된 분위기가 외적변수 때문에 불발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한화그룹 고위관계자는 31일 "회장님이 대외적인 활동을 하는데 여러 제약요인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롯데분쟁 같은 외생변수가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고 SK그룹 A 임원은 "지난해 말에도 나오신다는 말이 있었지만 외부 변수가 작용해 나오지 못했고 실망이 컸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