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저씨' 스틸(사진=오퍼스픽쳐스 제공)
'영화는 우리에게 무엇일까?'라는 물음이 던져졌다고 치자. 그대는 어떻게 답할 텐가.
시인 원재훈은 "영화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질없는 희망보다는 삶의 용기를 주었다"고 전한다. 최근 출간된 영화에세이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엔딩 크레딧'(원재훈·라꽁떼)을 통해서다.
'좋은 시네마의 한 장면은 현실과 환상이 빛과 어둠처럼 스며 있고, 사실과 거짓이 진실이라는 삶의 그릇에 담겨 있다. 그렇다. 적어도 우리에게 의미를 던져주는 시네마들은 그 시대의 진실을 담는 그릇이고, 거기에는 우리들이 눈여겨보아야 할 삶이 가득하다.' (프롤로그 중에서)
조각미남 배우 원빈의 스타일리시한 액션으로 흥행에도 성공한 영화 '아저씨'(2010)를 본 시인의 생각을 들어보자. 그가 극중 인상적인 대사로 꼽은 "한번만… 한번만 안아보자"와 관련한 것이다.
'훈련과 작전으로 온몸에 끔찍한 상처들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고, 출산을 앞둔 천사와 같은 아내가 갑자기 달려온 대형트럭에 압사하며 흐르는 더운 피를 본 그의 몸과 마음은 이제 인간을 가까이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무술 실력이 있어도 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다른 상처일 뿐입니다. 그가 전당포를 하면서 인생의 그림자가 되어, 귀신처럼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사실 현실적으로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뭘 못하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모든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끔찍한 폭력에 시달리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다시 사람을 안고 싶다고 합니다. 단 한번이라도.' (98쪽)
지은이는 서른 편의 영화를 골라 각 작품을 '분노' '사랑' '행복'이라는 세 가지 시선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는 공 들여 각 영화에 담긴 삶의 메시지를 길어 올리는 작업을 벌인다. '영화는 우리네 실제 삶을 다시 한 번 성찰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믿음을 지닌 까닭이다.
시인이 각 영화를 관통하는 한마디 대사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 적어 놓은 대사들은 나에게는 매우 울림이 큰 잠언들이었다. 때론 상처받은 마음에 문학적인 메시지로, 소통의 한마디로 다가왔던 말들"이라는 것이다.
◇ "우리는 지금을 사는 것 같지만, 지금에 녹아드는 미래를 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엔딩 크레딧ㅣ원재훈ㅣ라꽁떼
지은이에게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 같소"라는 강렬한 대사로 기억되는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1910~1998)의 '라쇼몽'(1950)을 보자.
'아무리 세상이 험하고 황무지라도 인간이 인간을 바라보는 눈빛은 별보다 빛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흑백영화로 처리된 화면은 붓으로 그려낸 농담이 느껴지는 깊이가 있습니다. 간혹 흑백영화를 보고 싶으면 라쇼몽을 봅니다.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는 어두운 하늘과 인간성이 무너진 자리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니까요. 그래도 어린아이를 아무런 조건 없이 거두는 사람이 있어 인생은 살 만하다고 스스로 위안하기도 합니다.' (286쪽)
시인은 "이제 사람들은 영화관의 스크린을 통하여 과거에 책에서 얻던 인생의 자양분을 섭취하기도 하고, 공포에서 벗어나기도 하며, 위안과 힐링의 기운을 받아온다"고 강조한다.
그가 전쟁 영웅의 대명사 격이 돼 버린 '람보'(1982)를 사회 고발 영화로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람보는 결국 수갑을 차고 체포당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지요. 영화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들의 이름이 올라오는데, 그가 고개를 돌려 노려보고 있습니다. 사람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밀림에서 사냥당한 짐승이 울부짖는 모습 같기도 합니다. 그 시선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입니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다리 없는 사람들을 부랑아 취급하는 사회 시스템입니다. 결국, 한 사람이 먼저 움직여서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필요하지요. 하지만 이 영화는 품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냉정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감독은 막을 내려 버립니다. 탁월한 선택이지요. 거기가 바로 현실이니까요.' (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