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를 잊게 만드는 충북 제천의 청풍호반을 무대로 펼쳐진 제11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지난 18일 6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올해 제천음악영화제는 역대 최대 규모, 최다 관객 기록을 모두 새로 썼다. 25개국 103편의 음악영화를 선보인 데 힘입어 3만 3000여 명의 관객을 불러 모은 덕이다. 이번 영화제 기간 제천을 찾은 이명희 영화평론가의 3회에 걸친 글을 통해 생생한 현장 분위기를 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스크린 타고 호숫가에 내려앉은 희망의 노래② "음악이 곧 역사"…스크린 속 뮤지션들의 외침
③ 갈등 누그러뜨리는 음악적 교감 직시한 카메라
지난 13일 충북 제천 청풍호반무대에서 제11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이하 사진=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공)
제천국제음악영화제로 가는 여정은 호숫가에 자리잡은 스위스 휴양지 몽트뢰, 로카르노를 연상시킨다. 몽트뢰는 7월 재즈음악페스티발로 유명하며, 로카르노(올해 홍상수 감독의 낭보가 날아온 바로 그 곳)는 8월 초중순에 영화제를 개최한다. 언제나 한여름 광복절 공휴일을 끼고 영화제를 여는 제천도 아름다운 산과 호수가 있는 고장이다.
'원 써머 나잇'이란 프로그램으로 저녁마다 관객을 매혹시키는 야외영화 상영과 공연이 펼쳐지는 청풍호반. 이곳에서 호수를 굽이굽이 에워싼 산풍경에 감탄하고 청정한 공기를 맛보면, '영화와 음악 그리고 자연이 함께 하는 영화제' '휴양영화제'라는 제천음악영화제의 캐치프레이즈에 동의하게 된다.
국내 영화제 가운데 휴식과 행복감을 가장 만끽하게 한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 제천음악영화제다. 그래서일까, 13일 저녁 오상진과 장윤주의 사회로 진행된 개막식과 함께 청풍호반의 야외극장에서 소개된 개막작 '다방의 푸른 꿈'은 더욱 특별했다.
소박한 스타일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김대현 감독의 이 다큐멘터리가 관객을 압도한 이유는 일제시대와 6·25를 거쳐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잊힌 역사를 증언하는 진귀한 소재를 다뤘기 때문이다.
◇ 잊힌 한국 대중음악사에 관한 경이로운 기록
지난 13일 제11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개막식 특별공연에서 김시스터즈로 활동하던 김민자 씨가 열창하고 있다.
영화 속 '목포의 눈물'의 가수 이난영과 6·25 때 납북돼 죽은 그녀의 남편이자 천재적인 작곡가인 김해송의 자료화면은 고난의 한국 현대사를 살아간 예술가들의 애환이 서려있다. 아직 스무살도 안 된 그들의 두 딸과 조카인 애자, 숙자, 민자 3인이 김시스터즈를 결성해 1959년부터 최초의 아시아 여성 보컬그룹으로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활동한 기록은 파묻힌 보석을 재발견하는 느낌이었다.
'세 명이지만 여섯 명처럼 보이는 사람들'이란 평을 들었던 김시스터즈가 노래는 물론, 가야금부터 백파이프 등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기를 연주하는 천재들이었다는 기록 화면도 경이로웠다.
어려움 속에서도 국민에게 여흥을 준 한국 대중가요를 대표했던 음악가족 이야기인 이 독특한 다큐는, 김해송과 이난영의 오빠 이봉룡의 노래 '선창에 울러 왔다' '풍차도는 고향' '오빠는 풍각쟁이야' '청춘계급' 등이 영화 '박쥐' '전우치' '국제시장' '해피엔드'에 쓰인 사실도 상기시킨다.
70대 중반의 나이가 된 김민자 씨가 헝가리에서 남편 토미 빅 씨와 함께 내한해 개막작 상영에 앞서 선사한 특별공연은 인상적이었다. 1950년대에 재즈를 금지했던 헝가리의 공산주의체제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활동했던 재즈뮤지션의 연주에, 오래 전 고향을 떠나 고난과 영예를 살아 온 최초의 한류 여성 가수는 '목포의 눈물'과 '싱, 싱, 싱'을 불러 감개무량한 순간을 만들었다.
◇ '킵 온 키핑 온' 대상·'막스와 레니' 심사위원특별상…신선하고 진솔한 수작
개막작 '다방의 푸른 꿈' 스틸
개막식에서 '장화, 홍련' '괴물' '마더' 등 20여 편의 한국영화를 위해 음악을 만든 공로로 이병우 음악가가 제천영화음악상을 받았으며, 폐막식에서는 경쟁부문 '세계 음악영화의 흐름'에 출품된 7편의 영화가운데 '킵 온 키핑 온'이 대상을, '막스와 레니'가 심사위원 특별상을 차지했다.
6편의 극영화와 1편의 다큐라는 다소 불균형적인 경쟁부문이긴 했으나, 대중적인 영화스타일보다는 신선하고 진솔한 수작 두 편에 1000만 원과 500만 원의 상금도 수여했다.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