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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영화톡]영화 평론가와 함께 본 '암살'…"또 다른 꿈을 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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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컷 영화톡]영화 평론가와 함께 본 '암살'…"또 다른 꿈을 꾸게 한다"

    1930년대 항일 무장투쟁 기록·추모…"장르영화 멋진 미덕"

    널리 알려진 대로 1930년대는 나라 안팎에서 제국주의 일본의 조선 지배를 정당화하는 목소리가 극에 달했던 때다. 지난 22일 개봉한 영화 '암살'(감독 최동훈. 제작 ㈜케이퍼필름)은 그 시대에 대해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널리 알려지지 못했던, 그 어느 시기보다 조직적으로 벌어졌던 항일 무장투쟁의 역사가 그것이다. 그 안에는 지금 우리네와 결코 다르지 않은 꿈을 꿨던 사람들이 있었다. 암살은 대중성을 담보로 한 흥미로운 영화적 서사와 묘사를 통해 그들을 기록하고 추모한다. 암살을 본 뒤 이명희 영화 평론가와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 주]

    ※ 이 기사는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암살' 스틸(사진=케이퍼필름 제공)

     

    이명희 영화 평론가: 임시정부의 수장 김구와 의열단장 김원봉은 일본총독과 친일파 우두머리를 암살하는 계획을 세우고, 1933년 암살단을 상하이에서 경성으로 보낸다. 저격수 안옥윤(전지현)을 대장으로 한 암살단은 일대 활극을 벌이는데, 액션의 통쾌함에 예측을 불허하는 이야기가 재미를 더한다. 친일파의 확실한 척결을 구현하는 영화 암살의 영웅들은 무명의 독립투사들이다.

    이진욱 기자: 작가 조정래의 열두 권짜리 대하소설 '아리랑'을 두 시간 반 정도로 압축해 본 느낌이다. 영화 속 캐릭터들은 말과 몸짓으로 그 시대를 오롯이 증언한다. 1930년대 일제를 상대로 벌였던 치열한 항일 무장투쟁사를 비롯해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엿보인다. 무엇보다 영화가 재밌다.

    이명희: 최동훈 감독의 다른 영화들처럼 암살 역시 암시와 추리에 바탕을 둔 두뇌싸움을 통해 장르적으로 뛰어난 오락적 재미를 선사한다. 다소 복잡한 정황에서 시작하는 암살 계획에 이어, 이를 둘러싼 방해공작을 뚫고 실행에 이르는 캐릭터들을 톱스타들이 연기했다. 캐릭터들의 지략과 심리전, 재치있는 대사, 긴박하면서도 잔인하지 않은 액션 등 암살에서도 최 감독은 일관된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영리하고 통쾌했으나 '범죄의 재구성' '타짜' '도둑들'은 사기꾼들의 세계를 보여 주는 범죄스릴러였다. 차가운 두뇌의 영화로 기억되는 이 작품들과는 달리, 암살은 감정적이며 비감한 여운을 남긴다. 조국을 구하기 위한 독립투사들의 활약을 마음껏 즐기는 한편, 역사적인 내용의 의미가 단순한 스릴러액션물을 초월한다. 암살은 장르영화라고 치부하기에는 훨씬 훌륭한 가치를 담고 있다.

    이진욱: 공감한다. 이야기가 단순히 일제 시대 독립군의 활약에 머물게 하지 않고, 해방 뒤 친일파 처벌을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의 활동까지 이어짐으로써 그 시대의 모순이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인상을 준다. 실제 역사가 그렇지 않나. 해방 뒤 목숨을 건지려 달아났던 친일파들이 남한에 들어선 미군정을 등에 업고 다시 요직을 차지했다. 그들이 현재도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한국 사회 아닌가.

    이명희: 암살의 이야기는 단선적이지 않다. 1911년, 1933년, 1949년이라는 시간과 경성(서울), 상하이, 항저우, 만주라는 공간을 누비며, 몇 가닥의 다른 이야기가 평행선을 가다가 교차하고 얽히고 매듭짓는다. 각본이 얼마나 풍요롭고 치밀한지 증명하는 셈이다.

    이진욱: 최근 인터뷰를 위해 만난 최동훈 감독이 "1930년대를 다룬 영화를 꼭 만들고 싶었다. 이때 소재는 반드시 무장투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말을 하더라. 영화의 결말만 빼고 시나리오 전체를 뒤엎기도 했단다. 그만큼 그 시대상을 제대로, 흥미롭게 전달하기 위해 애썼던 흔적이 영화 곳곳에 배 있다.

    영화 '암살' 스틸(사진=케이퍼필름 제공)

     

    이명희: 시공간적 설정과 역사적 맥락을 부지런히 이해하기를 요구하는 영화 전반부에서, 시대적 재현의 디테일을 놓친다면 애석한 일이다. 1930년대 도시풍경의 디테일은 즐거운 눈요깃거리다. 전반부, 당시의 이국취미 현상도 재미있다. '경성은 데카당스하다'는 표현으로 웃음을 자아내고, '아네모네 카페'에서 당시의 프랑스 배우 장 가뱅이 부르는 노래에 맞춰 춤추는 모습, 백화점 할인풍경 등, 1930년대 경성과 상하이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디테일도 인상적이다. 영화 속에서 재현된 당시 상하이와 서울 세트의 세련됨과 스케일은 한국영화에서는 처음일 것이다.

    이진욱: 깊은 산 속에 진지를 두고 일본군을 상대로 싸우는 독립군 소속 안옥윤이 극 초반 '커피를 마셔보고 싶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는 암살 작전 투입에 앞서 상하이에 잠시 머물던 그녀가 프랑스 조계지 내 한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뭉클하더라. 해보고 싶은 것이 많은, 지금 우리네 젊은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봤던 까닭이다. 이렇듯 그 시대를 재현한 세트들이 화려함을 뽐내는 데 머물지 않고 인물들의 감정을 설명하는 장치로도 쓰인 점이 흥미롭다.

    이명희: 암살은 1930년대 시대적 배경을 성실히 고증한다. 잘 모르는 역사와 당시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최 감독의 세계가 달라졌다고 느끼게 한다. 김구와 김원봉, 의열단, 신흥무관학교, 간도참변, 상하이 조계지, 반민특위, 살부계 등등 잘 모르는 역사적 사실들이 무수히 영화에 거론됨으로써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진욱: 뚜렷한 역사의식을 밑바탕에 둔 덕이 아닐까. 극중 사람들이 붐비는 역사에서 사이렌이 울리자 사람들이 일제히 하던 일을 멈추고 거대한 일장기를 향해 고개를 조아리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일제시대에 볼 수 있던 풍경이다. 국가 등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하는 전체주의, 파시즘이 만들어낸 이러한 풍경이 해방 뒤 한국 사회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최근 부활을 주장하는 목소리까지 들려 온다. 영화 암살은 이런 식으로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을 곳곳에 배치해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영리하다.

    이명희: 배우들은 멋지고 훌륭하다. 죽음을 무릅쓰고 민족의 반역자들을 처단하는 독립투사들의 활약과 액션은 통쾌함을 넘어서 장쾌하다. 암살이 비감한 여운을 남기는 것은 '커피를 마시고 연애도 하는' 꿈을 꾸고, 춤도 추며 삶을 찬미했던 젊은이들의 쾌활함이 그들의 처절한 희생과 대조되는 장면이 많기 때문이다.

    영화 '암살' 스틸(사진=케이퍼필름 제공)

     

    이진욱: 이 영화는 암살 임무에 투입되기 전 대원들이 경직된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 장면 등을 통해 이름 없이 스러져간 독립군의 얼굴들을 세밀하게 기록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독립군이 한 명 한 명 세상을 등질 때마다, 카메라는 그 쓰러진 모습을 2, 3초간 조용히 비추며 그들을 추모한다.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낸 이들에 대한 기록과 추모는 이 영화의 미덕 중 하나로 다가온다.

    이명희: 전지현은 영화에서 쌍둥이다. 이 설정은 묘하게도 1930년대 김래성의 대중추리소설 '마인'을 기억하게 했다. 비록 장르와 이야기는 아주 다르지만, 모던하고 자유로우며 복수의 목적을 이루는 강한 여주인공의 기구한 쌍둥이 운명과 당시 소설속의 경성이 영화로 시각화된 느낌이었다. 호사스러운 친일파의 딸과 독립군 암살대장이라는 정반대의 상황을 살아가는 자매의 운명, 격렬한 액션연기와 당대 유행을 누리는 여성, 그리고 억울한 희생을 멋지게 연기해냈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꽃다발과 가터벨트에 무기를 숨긴 아름다운 여자가 벌이는 액션신은 압도적이며 할리우드적이다.

    이진욱: 영화 암살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캐릭터가 여성이라는 점은 극에 대한 감정 이입을 배가시킨다. 극 말미 안옥윤이 친일파 암살 작전을 벌이기 전 자기가 입어야 할 웨딩드레스를 보면서 결국 참았던 눈물을 보이고야 마는 장면은 결국 이 영화가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증언한다. 전지현은 전작 '도둑들'에 이어 최동훈 감독과 작업하면서 과감해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 과감함이 전지현을 배우로서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이명희: 암살대장 역을 맡은 전지현을 축으로 대결하는 한 쌍의 인물이 염석진(이정재)과 하와이피스톨(하정우)이다. 신비주의가 감도는 두 인물은 선과 악, 백과 흑, 애국자와 반역자 같은 반대적 성격의 대칭 구도를 이룬다. 하정우는 애초에 청부살인업자에 불과했지만, 민족의식을 발휘해 독립투쟁에 가담하는 인물이 되고, 이정재는 독립투사로 시작했으나 변절, 밀정의 역할을 함으로써 친일파 매국노로서 정반대의 운명을 사는 인물이다.

    하와이피스톨은 로맨틱한 매력남이며 영원한 청년이지만, 염석진은 '인생은 요령'이라는 신념으로 해방 후 경찰 특무대 수사관이 돼 비열하게 늙어간다. 흥미로운 것은 하와이피스톨이 살부계였다는 자신의 과거를 밝히는 것이다.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고 작위를 받은 매국노 아버지들이 수치스러워 그들의 자식들이 서로의 아버지를 죽여주기로 한 모임도 있었다나.

    영화 '암살' 스틸(사진=케이퍼필름 제공)

     

    이진욱: 염석진이 당대 우리네 민낯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인물이라면, 하이와피스톨은 그 시대가 필요로 했던 인물상이라는 점에서 다소 이상적인 모습이 투영돼 있다. 안옥윤, 염석진, 하와이피스톨…. 그 시대를 살았을 법한 이들 캐릭터가 얽히고설키면서 빚어내는 긴장감은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동력이다. 배우들이 정말 잘해냈다.

    이명희: 염석진과 쌍을 이루는 강인국(이경영)은 친일매국노 일인자다. 강인국은 일본총독 앞에서 아부하는 코믹한 장면으로 시작해 악인 중의 악인 연기를 유감없이 보여 준다. 속사포(조진웅)와 영감(오달수)도 주연 못지않게 빛나는 연기를 보여주는데, 코믹하고 세태풍자적인 대사로 시종 웃음을 유발한다. 또한 독립운동가 김원봉을 연기하는 조승우의 성실함은 특별히 돋보인다.

    이진욱: 개인적으로 극중 암살단에 속한 속사포 캐릭터가 내내 눈에 들어오더라. 훈련된 독립군을 배출하던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그는 다소 가벼운 언행으로 재미를 선사한다. 그런데 당시 목숨을 내놓은 채 전투를 치르고, 작전에 투입되던 이들은 실제로 가벼운 농담을 즐겼다고 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항상 대면하고 있던 그들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명희:
    장르영화로서 이 영화가 흔들리는 부분이 있다. 관객의 기대대로 친일파 처단, 즉 선이 악을 물리치고 정의가 불의를 무찔러야 하지만, 영화는 끝 무렵 흔들리며 지연된다. 즉 친일파가 해방 후에도 권력을 거머쥐고 득세하는 모습에서 긴장이 해소되지 않고, 욕구불만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암살에서 이 부분은 무력감을 경험하게 하는 순간으로 전환된다. 친일파를 척결하는 흥미진진한 꿈을 꾸다가 갑자기 깨어나보니 친일파가 득세하게 된 실제 역사, 즉 현실을 인식하는 순간이다.

    이진욱: 우리네의 비극적인 현실 아닌가. 강대국의 지배 논리에 떠밀려 스스로의 힘으로 해방을 얻을 기회마저 놓쳐 버린 우리는, 지금 남북 분단이라는 참담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당시 성별, 계급, 이념을 뛰어넘어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던 독립군의 무장투쟁 역사가 한국 사회에서 널리 알려지지 못한 데는 친일의 잔재 또한 큰 몫을 했다.

     

    이명희: 그러나 영화 암살은 또 다른 꿈을 꾸게 한다. 장르영화에서 악은 끈질기고 강하지만 결국 선이 승리하는 법. 친일파가 처단되지 않은 한국사의 비극이라는 심리적 중압감과, 선이 악을 이기지 못한 불안감은 또 다른 반전의 결말로 해소된다. 억압된 분노에 시달렸던 관객은 더욱 속이 후련하다. 영화는 시작부터 여러 번의 암살 시도 액션을 보여준다. 특히 1933년 일본인총독과 매국노의 암살은 영화 전면에서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는 반면, 1949년 경찰권력으로 살아남은 친일반역자의 암살은 임팩트가 있는 결말이다. 이 일련의 장면들이 핵심적인 영화적 진실이며, 역사의 허구를 뛰어넘어 영화의 의미를 만드는 장면이다.

    이진욱: 극중 안옥윤의 "알려 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영감의 "우리 잊으면 안 돼"라는 대사를 들으면서 울컥하게 되는 데는 그 짧은 말에서 암흑의 시대를 희망으로 살아낸 이의 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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