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지뢰도발로 촉발된 무력충돌 위기를 풀기 위한 남북 고위급 접촉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원칙론'을 새삼 강조하면서 그 배경과 향후 추이에 관심이 집중된다.
박 대통령은 24일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남북 접촉과 관련해 "현재 합의 마무리를 위해서 계속 논의 중에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박 대통령은 이어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결과가 나오는 대로 국민 여러분께 확실한 소식을 전해드리겠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합의 마무리' 등의 비교적 구체적 표현이나 앞뒤 문맥 등을 감안할 때 협상이 말 그대로 막바지 단계에 와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고위급 접촉이 10시간의 1차 밤샘협상에 이어 2차 협상도 24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상황이라 이런 관측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어지는 발언에서 "이번 회담의 성격은 무엇보다도 현 사태를 야기한 북한의 지뢰 도발을 비롯한 도발 행위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가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것은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안위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과거와 같이 북한이 도발 상황을 극대화하고 안보의 위협을 가해도 결코 물러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사진=청와대 제공)
박 대통령은 "매번 반복되어 왔던 이런 도발과 불안 상황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확실한 사과와 재발 방지가 필요하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정부는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고 확성기 방송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박 대통령이 기존의 대북 강경 원칙론을 재확인하고 지침으로 하달하며 사실상 북측의 백기투항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이 전역을 연기한 2명의 병사를 언급하며 '애국심'과 '젊은이들의 귀감'을 강조한 것도 청와대 내 강경 분위기를 반영한다.
청와대는 북측이 먼저 협상을 요청해온 점 등을 고려해 협상의 주도권을 십분 행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도발→위협→보상이란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절호의 기회로 보고 최대한 밀어붙이는 것이다.
실제로 북측 협상단은 그동안 자주 구사해온 '벼랑 끝 전술'(brinksmanship)'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대북 확성기 방송에 따른 타격이 예상 외로 큰데다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분위기도 예전과 사뭇 다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번 지뢰도발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명백한 패착이고 이에 따라 북측이 절대 열세에 놓였다는 것은 지배적인 분석이다.
지난 22일 오후 남북 고위급 접촉이 전격적으로 이뤄진 가운데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오른쪽)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오른쪽 두 번째), 황병서 북한 군총정치국장(왼쪽)과 김양건 노동당비서(왼쪽 두 번째)이 회담 전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부 제공)
하지만 문제는 북측을 '벼랑' 끝까지 몰아붙이는 데에 따른 결렬 가능성이다.
북측이 대북 심리전에 민감한 것은 사실이지만 도발에 대해 직접 사과하고 재발방지 약속까지 하는 것은 북측으로선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북한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 400~500차례의 크고 작은 대남 도발을 가했지만 이 가운데 확실한 사과를 표명한 것은 1968년 1.21 청와대 기습 사건뿐이다.
그나마 사건 직후가 아니라 4년 이상 지난 1972년 5월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평양에 밀파됐을 때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