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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의 채용 과정에서 이른바 '스펙'의 비중은 줄었다지만, 또다른 형태의 부담이 취업준비생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자기소개서가 핵심 평가 대상이 된 것으로, 이를 준비하는 업체들까지 호황을 누리는 가운데 자소서 대필까지 성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서류전형 뛰어넘기의 열쇠, 스펙 → 자기소개서최근 현대자동차와 LG, SK그룹 등은 입사지원서에 인턴 경력이나 어학연수, 수상실적 등의 기입란을 없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2015년 신입사원 채용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국 377개 기업 중 68.8%의 기업은 스펙을 '서류전형 시 최소한의 자격요건' 정도로만 활용한다고 답했다.
스펙을 '채용 과정 전반의 핵심요소'로 보는 곳은 7.0%로, 지난 2013년에 비해 2.5% 감소했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지원자들 사이에 실제로 일을 할 때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인턴이나 어학연수 경험 등에 스펙 경쟁이 붙어 버렸다"며 "무의미한 경쟁을 멈추게 하고자 해당하는 칸을 아예 삭제했다"고 밝혔다.
그러다 보니 서류전형의 핵심 평가 대상은 자기소개서가 돼버려서, 국민은행의 경우 하반기 공채에서 자기소개서만으로 서류전형을 진행할 예정이다.
자연히 취업준비생들의 주요 과제 역시 눈길을 끄는 자기소개서 작성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최근 취업포털 인크루트 조사 결과, 입사지원자들은 취업 준비를 위해 가장 많은 시간을 자기소개서 작성(55%)에 할애하고 있었다.
이는 인턴, 어학학습, 공모전 등 스펙을 쌓을 수 있는 다른 활동보다도 높았다.
◇ "4시간에 58만원"…'자소서' 작성 학원 성황이들이 자기소개서 작성에 열을 올리면서 각종 취업학원이나 온라인 취업 컨설팅업체 등은 문전성시다.
한 자기소개서 컨설팅업체의 경우 온라인 카페 회원 수만 2천 명에 육박한다.
겟잡취업클리닉 박규현 대표는 "이전에는 서류전형에서는 스펙만 평가하고 자기소개서는 보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며 "최근 자소서가 당락을 결정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카페를 찾는 학생이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 서초구 A 취업준비학원 '자소서 집중반'에는 한 반에 7~10명씩이 모인 학생들이 각각 48만원씩을 내고 모두 12시간의 수업을 받는다.
이미 자소서 집중반 5개 강좌에는 취업준비생들이 몰려 빈자리가 없을 정도.
자기소개서를 1:1로 지도해주는 강남구 B 취업컨설팅업체의 수강료는 훨씬 더 비싸다.
지원자들은 이틀에 걸쳐 모두 4시간 동안 지도를 받기 위해 수강료 58만원을 내야 한다.
여기에 4시간 추가수업을 신청하면 모두 110만원이 소요된다.
B 업체 관계자는 "가격이 적지 않지만 현재 자소서 첨삭을 담당하는 강사들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거의 모든 시간 투입되고 있다"며 "하반기 공채 원서 접수가 한창인 요즘에는 새벽이나 밤 늦은 시간까지 수업을 열 정도로 학생이 몰린다"고 말했다.
◇ 자소서 대필, 자'소설'로 만들어지기까지자소서가 취업 첫 관문의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대필'을 의뢰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취업준비생 노모(27·여)씨는 지난 7월 인터넷 카페를 통해 만난 '대필작가'에게 자기소개서 대필을 의뢰했다.
'대학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어떤 아르바이트를 했는지' 등 작가가 요구한 10여 개의 질문에 대한 답을 이메일로 정리해 보낸 뒤 12만원을 보내자, 며칠 후 멋드러진 문장으로 빚어진 자기소개서 한 통을 이메일로 받았다.{RELNEWS:right}
노씨의 자기소개서를 대필한 C씨는 "하반기 공채 시즌에는 원래 의뢰를 다 받지 못할 정도로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며 "9월에 받을 수 있는 대필 의뢰는 벌써 거의 다 찼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학교 4학년 백가연(24) 학생은 "친구들 중 상당수가 컨설팅 업체의 도움을 받고 있다"며 "혼자만 안 하면 도태될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취업준비생 이상윤(26) 씨는 "취업 시장에까지 사교육이 만행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혀를 찼다.
자신을 소개하는 자소서가 자'소설'이 돼버리는 현실, 고용절벽 시대에 보여지는 또하나의 씁쓸한 단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