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 세대가 당면한 과학과 예술의 윤리적 문제, 환경 문제에 대한 작가들의 시선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직무대리 김정배)은 한국-호주 국제교류전 '뉴 로맨스'(New Romance)를 오는 22일부터 2016년 1월 24일까지 서울관에서 개최한다. 한국에서는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포스트 휴먼'에 대한 전시이다.
이 전시의 기본 아이디어와 전체 구성은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의 소설 '뉴로맨서(Neuromancer)'에서 출발했다.
1984년 발간된 이 소설은 사이버 스페이스를 다양하고 생동감 넘치는 이미지로 그려낸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우리나라에는 원제인 ‘뉴로맨서(Neuromancer)’가 아닌 ‘뉴 로맨서(New Romancer)’로 종종 오인되어 소개되었다. SF가 순식간에 로맨스로 바뀐 것이다.
2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흥철 학예연구사는 "이처럼 우연히 의미가 탈바꿈을 하는 과정에서 기계미학과 뉴미디어 분야에서 나타나는 낭만성과 연결했다"고 이번 전시를 설명했다.
전시는 한국과 호주에서 뉴 미디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14인의 영상, 설치, 퍼포먼스 작품을 입체적으로 선보인다.
한국 작가 7명(강애란, 정승, 이소요, 진시영, 양원빈, 이기봉, 이상현)과 호주 작가 7명(스텔락, 패트리샤 피치니니, 레베캐 바우만, 헤이든 파울러, 패트리샤 피치니니, 레베카 바우만, 이안 번즈, 웨이드 메리노우스키)이 참여했다.
전시는 원작의 거대 SF 서사구조를 전시공간에 도입했다. 마치 우주 공간에 있는 기분도 들고, 연구실에 있는 기분도 든다.
가장 먼저 전시장을 들어서기 전 강애란의 거대한 책이 사방으로 뿜어내는 시구들을 만난다. ‘뉴로맨서’와 ‘로맨스’ 사이의 간극을 ‘뉴로맨서’의 텍스트와 낭만적 영미시의 하이퍼텍스트로 채운 설치작품이다.
스텔락_익스텐디드 암_2000-2015.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전시실 입구에는 자신의 신체를 사이버네틱스의 실험실로 삼는 전설적인 아티스트 스텔락의 '확장된 팔 Extended Arm'이 허공에 매달려 관객을 맞는다. 이 팔은 기계를 통해 인체를 확장했지만, 오히려 피조물인 로봇에게 인간이 통제당하는 역설을 선보인다.
디지털 기술과 조각을 결합한 작가 패트리샤 피치니니는 생김이 다르기 때문에 소외되고 고통 받는 존재들을 따뜻한 눈길로 감싸 안아 우리와 공존하게 한다.
이기봉_만년설_2015.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기봉은 자연 현상을 공학적으로 재해석한 '만년설'을 최초로 공개한다. 작가의 손을 본뜬 기계 팔이 반복된 동작으로 작고 둥근 원을 유리판 위에 무수히 수놓는 키네틱 작품이다. 4개월이 넘는 전시기간 동안 이 원들은 무수히 겹쳐져 눈보라처럼 혹은 거품처럼 전시장 벽을 뒤덮을 것이다.{RELNEWS:right}
이상현은 일제로부터 이식받은 한국의 근대화와 자본주의 초창기 양상을 수많은 영상자료와 사진, 음악으로 집요하게 파고들어 재구성한 작품 '조선 신 연애'를 선보인다. 이수일과 심순애의 금강석 반지 순애보로 유명한 ‘장한몽’의 스토리와 결합된 영상은 배금주의에 물든 우리를 통렬히 꼬집는다.
그 밖에도 레베카 바우만, 이안 번즈, 헤이든 파울러, 이소요, 정승, 웨이드 메리노우스키, 양원빈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날 간담회에서 블레어 프렌치 호주현대미술관 큐레이터는 "기술, 과학, 인관관계가 현대미술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고, 또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 확인하는 흥미로운 전시가 될 것"이라 자부하며 "관객은 재밌다고 느낄 것 이고 참여하는 작가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2011년 한국-호주 수교 50주년 행사로 순회 개최되었던 '텔미텔미'전에 이어 국립현대미술관과 호주현대미술관이 공동으로 기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