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이 미국에서 경유 차량의 배출가스 낮추기 속임수로 세계적인 파문을 일으킨 가운데 최근 정부가 실제 도로 주행 조건에서 경유차의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을 조사한 결과 허용기준의 7∼8배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질소산화물은 오존을 생성하며 미세먼지 발생의 원인이 돼 인체 유해물질로 작용한다.
유럽연합(EU)과 국내에서 적용되는 유로 6 배출가스 기준상 대기오염물질인 질소산화물 허용치는 0.08 g/㎞ 이하다.
23일 국립환경과학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A 차종은 실주행 조건에서 인증기준의 7.5배에 달하는 ㎞당 0.597g의 질소산화물을 배출했다. 또 B 차종의 실주행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0.667g/㎞으로 허용치의 8.3배나 됐다.
이번 조사는 지난 5월 한-EU 공동 실주행 배출가스 시험 방법이 공표된 이후 처음으로 지난달 시범적으로 이뤄졌다.
차량에 장착해 실도로 주행상태에서 배출가스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시험장비인 PEMS가 사용됐다.
종전 방식과 달리 에어컨을 가동하는 등 실제 도로 조건에서 측정됐다. 인증 모드는 대기온도 20∼30℃에서 측정하지만 실주행 배출가스 시험방법의 온도는 -2∼35℃이며 주행경로는 도심(0∼60㎞/h)과 교외(60∼90㎞/h), 고속도로(90∼145㎞/h)로 3분의 1씩 나뉘었다.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해당업체 관계자는 "실험실보다 환경이 가혹한 도로에서 배출가스가 다소 많이 배출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환경과 차량, 운전 습관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이지 자동차 메이커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직 실도로 조건의 배출가스 규제도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이전 방식으로 디젤차 4개 모델의 질소산화물을 측정했을 때는 배출량이 0.100∼0.224로 인증기준의 1.3∼2.8배였다.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무작위로 시험한 6개 차종은 모두 국내에 시판 중인 유로 6 모델이다. 국산차는 물론 독일차도 포함됐으며 세단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해치백 등이다.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는 2014년 보고서에서 대도시 질소산화물 농도 개선 미흡의 원인으로 실도로 조건에서 경유차의 질소산화물이 과다 배출되는 것을 꼽았다. 배출 허용 기준은 유로 3(2000년)의 0.5g/㎞에서 유로 6(2014)의 0.08 g/㎞으로 6배 이상 강화됐지만 실제 주행 시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40% 감소하는데 그쳤다는 것이다.
권상일 국립환경과학원 연구사는 "미세먼지는 필터를 통해 거의 걸러내지만 질소산화물은 다른 물질보다 억제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도로의 질소산화물 과다 배출 문제는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속임수 사건으로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다. 지난 19일 미국 환경보호청(EPA) 발표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디젤 승용차가 검사를 받을 때는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실제 도로에서 주행할 때는 이를 꺼지도록 해 기준치 40배의 질소산화물을 배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2년에는 현대차와 기아차가 투싼과 스포티지에서 에어컨 가동 시나 고속구간에서 출력과 가속 응답성 향상을 위해 질소산화물 저감장치의 작동을 축소해 질소산화물을 과다 배출한 것으로 밝혀져 21만8천대를 리콜한 바 있다.
이후 환경부는 EU와 함께 경유차 질소산화물 과다배출에 대응해 실도로 조건 시험방법과 배출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공동 기준은 3.5t 이상의 대형차는 내년 1월부터, 그 외의 소형차는 2017년 9월부터 도입될 예정이다.
자동차 제작사 관계자는 "정부가 마련하는 규제 수준에 충족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연구개발 노력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