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 여야 대표가 합의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놓고 여당 내 후폭풍이 거센 가운데 3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김무성 대표가 원유철 원내대표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추석연휴기간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합의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두고 새누리당 친박계가 발칵 뒤집혔다.
급기야 청와대까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는 공급자 우위에서 갑질하는 것"이라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공천룰은 당내에서 결정할 문제'라면서도 정면 대응에 나선 것 자체가 이율배반적이지만,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위기감의 발로가 작용했다.
◇ 안심번호 국민공천제가 뭐길래?이름도 생소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가 어떤 것이기에 여권이 두쪽으로 갈라져 사활을 걸고 싸우는 걸까.
안심번호는 실제 휴대전화 번호 노출을 꺼리는 이들에게 1회용으로 부여되는 050으로 시작되는 11개 숫자의 가상 번호다. 이동통신사가 무작위로 조합해 생성되기 때문에 해당인의 실제 번호와 신상이 노출되지 않는다.
안심번호를 이용한 국민공천제는 정당이 특정 선거구에서 경선을 실시할 경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선거인단의 20배까지 안심번호를 요청하면, 선관위는 이동통신사에 안심번호를 요청하고 이통사는 성별과 연령 등을 고려해 무작위로 선거인단을 추출해 안심번호로 암호화해서 정당에 제공한다.
모집된 선거인단을 상대로 100% 여론조사를 실시할 수도 있고 현장 투표를 실시할 수도 있다.
국민의 의사를 물어 공천자를 정하기 때문에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준다는 상향식 공천 제도의 원칙이 반영된 것으로 볼수 있다.
김무성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 등의 반대로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이 무산되자 꺼내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 안심번호 정말 안심한가?청와대와 친박계는 이에 대해 인구수가 적은 지역구의 경우 안심번호라 하더라도 노출될 가능성이 있고, 지지 정당을 먼저 물어보기 때문에 역선택의 우려도 있다며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 정당 후보자를 결정하는 공천비용을 국민세금으로 충당하는게 타당하지 않다는 입장도 내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김무성 대표측은 오픈프라이머리는 100% 현장투표 방식이라 조직력이 개입할 여지가 있지만,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는 개인의 정보를 전혀 알수 없는 상태에서 선거인단이 구성되기 때문에 오히려 더 공정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다만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지 않은 유권자들의 경우 참여가 원천 배제된다는 점, 소도시의 경우 조직력이 강한 후보가 더 유리하다는 단점이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이 제도는 새정치민주연합 중앙위가 지난 달 16일 공천혁신방안으로 채택하면서 야당이 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앞서 지난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치관계법 개정안으로 제시한 바가 있다.
이에 국회 정치개혁특위 소위는 지난 8월 25일 여론조사시 안심번호를 도입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추석연휴 여야 대표가 합의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놓고 여당 내 후폭풍이 거센 가운데 3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원유철 원내대표(좌측)와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 차기 대선까지 겨냥한 계파간 전쟁오픈프라이머리 도입에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한 김무성 대표로서는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준다'는 대의명분을 지키지 못할 경우 실제로 정치생명에 위기가 올 수도 있다.
때문에 오픈프라이머리에 준하는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는 김 대표로서는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일 수 있다.
김 대표가 30일 의원총회에서 "일부 최고위원들과 의원들의 압박이 있었는데 당론으로 채택되고 대선공약이었던 걸 추진하는 게 문제인가"며 "전략공천은 하지 않을 것"라고 거듭 선언한 것도 이런 배경이다.
김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는 김 대표로서는 최저한의 방안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와 친박계가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유는 결국 공천권이라는 칼자루를 누가 잡느냐 하는 문제로 모아진다.
청와대의 공천개입을 저지하려는 김 대표와 전략공천 지분을 확보하려는 친박계가 첨예한 대치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김 대표 입장에선 오픈프라이머리가 무산된 자리에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도입해 박근혜 대통령의 공천권 행사를 저지하려 하고 있고 친박계는 이를 무산시켜 전략공천지분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이다.
특히 친박계로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4년차 국정운영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선 세확보가 필수적이지만 공천지분을 보장받지 못할 경우 19대 국회에서의 친이계 신세로 전락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작용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7월 전당대회와 유승민 원내대표 당선 과정 등에서 친박계는 열세를 절감한 바 있다. 현역의원들에게 유리한 이 제도가 시행된다면 여권의 세력균형은 친박열세인 현재의 분포도가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RELNEWS:right}
친박계가 오픈프라이머리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강력 비판하면서도 공개적으로 전략공천을 요구하지 못하는 속사정도 바로 여기에 있다.
더 나아가면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여권의 갈등은 차기 대선과도 연결된다.
친박계 입장에선 총선을 통해 세를 확장해야 김무성 대표에 맞서는 자체 대선 후보를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공천 룰을 둘러싼 계파간 전쟁은 2017년 대선을 둘러싼 여권의 권력투쟁이 이미 시작됐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