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8일 오전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롯데홀딩스 이사회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히고 있다. 황진환기자
롯데가(家) 장남의 '권토중래(捲土重來)'가 시작됐다.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의 패배로 잠시 물러났던 신동주 전 부회장이 법적 소송을 통해 반격할 것으로 예견은 됐지만, 이번엔 확 달라진 모습으로 동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겨누는 모습이다.
◇ '대주주'로서 쓸 수 있는 카드 모두 꺼내는 신동주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신 전 부회장을 지원하는 화려한 고문단이다. 신 전 부회장이 신동빈 회장과 처음으로 경영권 분쟁을 벌이며 맞붙었을 때 지원군이 대부분 롯데가 친인척들로 이뤄졌다면, 이번에는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신 전 부회장이 설립한 한국 법인에 고문단으로 이름을 올렸다.
대표적인 인물이 민유성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이다. 민 고문은 리먼브라더스 서울지점 대표, 모간스탠리 서울사무소장 지점장 등 외국계 금융기관에 근무하면서 포항제철과 한전 민영화 작업을 이끈 국제금융통이다. 신 전 부회장은 민 고문과 함께하게 된 배경에 대해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으로 이번에 한국에서 문제가 되니까 여러가지 상의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민 전 산은회장 이외에도 한국과 일본에서 소송을 이끌게 되는 법무법인 양헌의 김수창 대표변호사와 법무법인 두우의 조문현 대표변호사도 자리를 함께하며 신 전 부회장을 적극 지원했다. 이들은 '경제적 지분 가치'라는 개념과 소송 진행 과정 등을 통해 신 전 부회장의 주장이 적법하다는 것을 설명했다.
지원군 자체를 금융·법률 전문가들로 구성한 것은 신 전 부회장이 제기한 경영권 분쟁이 '형제의 난'에서 '롯데 집안 싸움'으로까지 확전된다는 부정적 시각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신 전 부회장이 일본과 한국을 오가면서 신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였을 땐 누나인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 작은 아버지인 신선호 일본 산사스 사장 등이 옆에 있었지만 이렇다할 반격 한 번 하지 못했다.
8일 오전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신동주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의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김수창 변호사, 민유성 고문, 조문현 변호사. 황진환기자
한국 법인 설립과 홍보대행사를 통한 대대적인 언론플레이 또한 신 전 부회장의 달라진 모습이다. 신 전 부회장은 이날 한 홍보대행사를 통해 긴급 기자회견 장소와 시간을 알렸고 기자회견 현장에서 자신이 한국에서 설립한 SDJ 코퍼레이션이 한국 활동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기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한 것과 달리 이날은 전 언론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법적 소송 과정과 그 의미 등을 설명한 것이다. 일본어로만 의사소통을 하는 것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의식한 듯 한국말로 짧은 인사를 하기도 했다. 물론 자세한 입장은 부인이, 소송에 대한 설명은 고문단이 도맡았다.
신 전 부회장은 지금껏 주장했던 아버지의 위임과 긴급 이사회 소집의 부당성 말고도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카드는 거의 모두 다 빼들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한국에서 제기하겠다고 한 '회계장부 열람등사 가처분 신청'도 그 가운데 하나다. 신동빈 체제의 롯데그룹 경영 부실과 부정 특혜에 대해 대주주로서 감사권을 발동하겠다는 것이다.
신 전 부회장 측 김수창 변호사는 "그룹 전반에 대해 경영 상황을 정밀 검사할 것"이라며 "롯데 계열의 모든 내부 경영 자료를 취합하는 법률 절차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롯데 바라보는 여론, 다시 '싸늘'…신격호 위임 진위 여부 여전히 의문
이처럼 신 전 부회장은 경영권 분쟁 2라운드에서 내놓을 수 있는 반격 카드를 모두 빼들 것으로 보이지만 그의 주장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 부호가 따라 온다.
새롭게 동원된 개념인 '경제적 지분 가치'가 대표적이다. 신 전 부회장 측은 주주들 가운데 의결권이 없거나 단순 의결권만 갖고 있는 LSI(롯데홀딩스와 상호출자 관계)와 종업원 지주회, 임원 지주회 등을 빼고 '진짜 의결권'을 가진 주주들의 지분만을 모수로 다시 계산하면, 광윤사의 지분율이 과반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즉, 롯데홀딩스의 실제 경영상태, 기업가치 등과 이해관계가 가장 밀접한 주주가 광윤사라는 것이고 이 광윤사의 최대 주주가 신 전 부회장인만큼 신 전 부회장이 그룹 승계자로서 정당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롯데그룹 측은 '경제적 지분 가치'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경제적 지분 가치라는 말은 처음 들어본다"며 "상법 절차에 따라 홀딩스 주주들의 대표가 모인 이사회와 임시주총에서 신 회장을 그룹 총수로 인정했기 때문에 신 회장의 경영권 확보는 적법하다"고 밝혔다.
또 다시 등장한 신격호 총괄회장의 위임장과 위임장에 서명을 하는 동영상 진위 여부도 신 전 부회장이 풀어야 할 숙제다. 신 전 부회장은 과거에도 신 총괄회장의 친필 위임장, 해임지시서, 녹취록 등을 공개했지만 신 총괄회장의 진정한 의사에 따른 것인지 의심스럽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