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 감독, 얼굴 펴고 합시다' 지난 2013년에 이어 올해도 준플레이오프에서 접전을 펼치고 있는 두산과 넥센. 두 팀은 1, 3차전에서 똑같이 애매한 사구 판정으로 희비가 갈렸다. 사진은 두산 김태형(왼쪽), 넥센 염경엽 감독.(자료사진=두산, 넥센)
좋은 일이 생겼다고 마냥 웃을 수는 없다. 곧바로 나쁜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울상만 지을 필요도 없다. 슬픔을 잊게 할 경사가 뒤따를 수 있는 까닭이다.
인간 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인생의 길흉화복은 돌고 돈다는 뜻의 속담이다. 어떤 일에 너무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차분하게 다음을 대비하자는 교훈을 준다.
새옹지마는 중국 고전 '회남자'(淮南子)에 나오는 고사성어. 북방 국경 지역에 살던 노인이 기르던 말이 오랑캐 땅으로 넘어간 손실과 암말을 이끌고 돌아온 재산 증식, 아들이 그 말을 타다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사고, 그 덕에 징집 대상에서 빠져 전쟁통에 목숨을 건진 다행 등의 과정 등 잇딴 애경사에도 평정을 잃지 않았다는 일화에서 나왔다.
두산과 넥센이 맞붙은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준플레이오프(PO)는 이 사자성어가 절로 떠오를 만하다. 단순히 승패를 떠나 한 팀이 당한 억울한 일이 다른 팀에게도 벌어지는 기현상이 일어 더하다.
넥센은 13일 목동 홈 3차전에서 두산에 5-2로 이겼다. 2연패 끝에 귀중한 반격의 1승을 거뒀다. 에이스 앤디 밴 헤켄의 호투와 서건창, 김하성의 홈런 등 타선 폭발이 일단 1차 승인이다.
'맞았는데...' 두산 오재일이 13일 넥센과 준플레이오프 3차전 9회 조상우의 공에 왼 발등을 맞는 모습(빨간 원). 중계 화면에서는 분명히 공이 발등을 스치며 방향이 바뀐다.(사진=SBS 스포츠 화면 캡처)
하지만 9회 판정의 수혜도 톡톡히 봤다. 3점 차로 쫓긴 가운데 득점권 위기 상황을 애매한 판정으로 벗어난 것이다.
넥센 마무리 조상우는 5-2로 앞선 9회 첫 타자 최주환을 좌중간 안타로 내보냈다. 후속 김현수를 삼진 처리했지만 다음 타자 오재일에게 던진 2구째 변화구가 왼발 쪽으로 향했다. 몸에 맞는 공을 확신한 오재일은 1루로 향했다. 조상우가 1사 1, 2루에 몰릴 판이었다.
그러나 구심은 맞지 않았다며 오재일을 불러세웠다. 마운드의 조상우는 "안 맞았다"고 주문처럼 욌고, 억울한 오재일은 구심에 이어 넥센 포수 박동원을 바라보며 "맞지 않았느냐"고 항변했다. 중계 화면에는 공이 발등을 스쳤다. 두산은 1회 비디오 판독을 소진하면서 판정 번복의 기회가 없었다.
결국 오재일은 삼진으로 물러나 1루가 아닌 더그아웃 쪽으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두산은 이후 민병헌의 유격수 강습 안타가 나왔다. 만약 오재일이 사구로 나갔다면 득점했거나 만루로 조상우를 압박할 수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득점권 기회를 잃은 두산은 후속 장민석이 2루 땅볼로 물러나 3점 차 패배를 안았다.
반면 넥센은 행운의 판정으로 경기를 매조지을 수 있었다. 경기 후 염경엽 넥센 감독은 "오재일이 걸어나가면 조상우가 아무래도 어리다 보니 좀 힘들 수 있었는데 상대가 비디오 판독을 쓰지 못한 상황이라 운이 따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9회 비디오 판독 기회가 없었던 게) 좀 아쉽다"고 했다.
'안 맞았는데...' 두산 김재호가 10일 넥센과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9회 조상우의 몸쪽 공을 피하는 장면. 공은 김재호의 몸을 맞지 않았으나 구심은 사구 판정을 내렸다.(사진=MBC 중계 화면 캡처)
하지만 3일 전으로 시계를 돌리면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지난 10일 1차전에서는 두산이 반대로 판정의 혜택을 입었다. 똑같은 9회 두산 공격에 넥센 투수 주상우, 여기에 사구 장면이었다.
당시 두산이 2-3으로 뒤진 9회말 1사 공격. 김재호는 조상우의 4구째 몸쪽 공에 황급히 몸을 피했다. 몸에 맞았는지 여부가 궁금한 상황에서 김재호는 구심에게 사구 여부를 물었고, 심판이 1루로 나가라는 사인에 출루했다.
하지만 중계 화면 상에는 공이 김재호의 몸이 아닌, 배트 밑부분을 스친 것으로 보였다. 두산은 이게 시발점이 돼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흔들린 조상우가 연속 볼넷 3개를 내주면서 김재호가 동점 득점했다. 결국 연장 10회말 4-3 끝내기 승리를 거뒀다.
다만 넥센은 비디오 판독 기회가 있었지만 쓰지 않았다. 포수 박동원도 포구하는 데 집중하느라 공이 김재호의 몸에 맞았는지 여부를 알지 못했다. 넥센 벤치도 맞았는 줄로만 알아 요청하지 않았다. 이후 염 감독은 "김재호의 잘못은 없고, 나라도 그랬을 것"이라면서도 "나중에 선수협회 등에서 교육이 필요할 것 같다"며 쓰린 속내를 드러냈다.
넥센은 그러나 3일이 지나 비슷한 상황에서 수혜자가 됐다. 대신 두산이 피해자가 됐다. 한번씩 사구 판정을 놓고 희비가 교차한 셈이다.
2013년 준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 때 넥센과 두산 선수단이 선전을 다짐하는 모습. 왼쪽부터 두산 유희관, 홍성흔, 김진욱 감독과 넥센 염경엽 감독, 이택근, 박병호.(자료사진=윤성호 기자)
여기에 두 팀의 준PO는 2년 전과 비슷하다. 2013년 준PO에서 두산은 넥센에 2연패를 당했지만 내리 3연승하며 기적적으로 PO에 진출했다. 그러나 올해는 넥센이 먼저 2연패를 한 뒤 반격에 성공했다.
두산 외야수 민병헌은 3차전에 앞서 "사실 1, 2차전 스코어가 2년 전과 똑같더라"면서 공교로움이 신기한 듯 말했다. 당시도 1차전 4-3, 2차전 3-2의 경기 결과였다. 연장 10회 끝내기 승부가 있던 점도 같다.
물론 승패팀이 바뀌었고, 연장 승부도 2년 전에는 2차전이었지만 올해는 1차전이었다. 그럼에도 묘한 상관 관계가 있다. 먼저 2연패를 당한 넥센이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2년 전 두산이 그랬듯, 2차전 뒤 염 감독의 다짐대로 이번에는 넥센이 리버스 스윕을 할 수도 있다.
두산이라고 해서 과민할 필요도 없다. 또 한번 역전 드라마를 쓸 수 있던 3차전에서 석연찮은 판정이 나왔다고 해서 실망할 이유도 없다. 두산도 뜻하지 않은 행운을 한번 얻었고, 이번에는 상대에게 온 것일 뿐이다. 1차전 사구 판정에 대해 염 감독이 표현한 '하늘의 뜻'이 4차전에서는 두산에 올 수도 있다.
민병헌은 2년 전과 같은 올해 준PO 1, 2차전 스코어를 말했지만 3차전에서는 결과가 달랐다. 2013년은 두산이 4-3 연장 14회 승리를 거뒀고, 올해는 넥센이 5-2로 이겼다. 2년 전과 1, 2차전은 같았지만 3차전부터는 달라졌다. 4차전은 두산이 끝낼 수도 있다.
준PO도 결국은 인간 만사, 새옹지마의 틀에서 벗어나긴 어렵다. 누가 차분하고, 침착하게 경기에 나서느냐가 중요하다. 나아가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다음을 준비하느냐는 비단 준PO뿐만 아니라 인생을 사는 데 있어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