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국회의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국론분열이 극심해지자 입법부의 수장인 정의화 국회의장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언론인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었지만 발언 내용을 살펴보면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이 절차나 원칙에 맞지 않을뿐더러 통합을 저해하고 갈등을 조장한다는 문제의식이 담겨있다.
정 의장은 20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좀 늦기는 했지만 절차를 바로잡을 수 있다면 바로잡을 수 있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현행 고시 절차에 대한 시정 필요성을 제기했다.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생략된 만큼 행정예고를 잠시 멈추고 문제의 본질을 찬찬히 따져본 뒤 일을 추진하자는 고언이다.
특히 그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도 "남은 임기 중에 무너지고 있는 홍익인간, 충효, 인의예지 정신을 살리는 노력을 해줬으면 좋겠다. 이번 국정교과서 문제도 있지만 더이상 국민들을 균열과 갈등으로 몰아넣지 말고 통합의 정치로 나라를 이끌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당부했다.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이 행정부의 수반이자 국가원수인 대통령에 대해 정책과 관련해 쓴소리를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자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정 의장의 친정은 새누리당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침을 줬고 김무성 대표가 총대를 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다수의 새누리당 의원들이 침묵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의장이 정부·여당의 방침에 거스르는 발언을 한 것은 사자의 콧털을 건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새누리당 내에서 정두언, 김용태, 정병국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는 국정교과서의 문제점에 대해 소신발언을 했지만 대다수 정치인들은 공개발언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아마도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축출'과정을 똑똑이 보면서 반면교사로 삼았을 것이다. 정의화 의장의 이번 발언은 할 말을 못하는 정치인들에게 해야 할 말은 해야 한다는 본보기를 보인 것일 수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2차대전 전범국 일본조차 조롱할 정도로 국제적인 문제로 전락했을뿐더러, 국민통합을 통해 국가적 에너지를 집약시켜야 할 중차대한 시점에 극심한 분열의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역사학계의 대규모 반대 분위기 속에 뉴라이트계열 학자들은 국가가 쓰는 교과서를 만들자고 외치고 있다. 보수와 진보, 여와 야의 극심한 대립 속에 여당 내에서도 침묵하는 다수가 향후 파장을 숨죽이며 걱정하고 있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