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밤 지나면 다시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하는 남북 이산가족들은 25일 오후 단체상봉에서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헤어짐을 준비했다.
26일 오전 작별상봉이 남아있긴 하지만 곧이어 귀환 길에 올라야 하는 부담 때문에 마음 속 깊은 얘기를 나누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이산가족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옛 추억을 되살리며 이야기꽃을 피웠고 일부는 박장대소까지 터뜨리며 다가올 이별의 슬픔을 애써 잊으려는 모습이었다.
남측의 조순전(83) 할머니는 적십자사 측이 찍어준 가족사진을 보며 둘째 여동생 성녀(76) 씨를 가리키며 “야, 사람보다 더 이쁘게 나온다”고 했고 이에 성녀 씨가 “사람이 이쁘니까 그렇지”라고 화답하자 가족 모두가 박장대소했다.
그러면서도 큰 여동생 서분(79) 씨는 “언니, 이 사진은 내가 가져가도 될까”라고 말하며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김유남(89) 할머니는 북녘의 동생 이남(83) 할머니 등과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머리와 볼을 감싸며 고통을 호소, 의료진이 출동하는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의료진은 해열제 위주의 약을 조제해 투약한 뒤 휴식을 권고했지만 김 할머니는 “괜찮다. 여기 있겠다”고 손사래를 치며 천금 같은 만남의 시간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곧 이별의 시간이 다가옴을 직감한 이산가족들은 그러나 차고 있던 손목시계나 사진, 가계도를 그린 메모를 교환하며 황망해하기도 했다.
한창길(82) 씨는 남녘에서 온 누나 원자(92) 씨의 결혼사진을 70년간 간직해오다 이번에 전달했다.
북녘에 두고 온 딸 김영심(71) 씨와 상봉하는 아버지를 모시고 온 김현욱(61) 씨는 자신에게는 고모인 영심 씨에게 갑자기 금장 손목시계를 풀어 즉석 선물하기도 했다.
북측의 동생 리영순(79) 할머니를 만나러 온 이선균(90) 할머니는 “내가 나이가 워낙 많아서 이제 언제 만날지 기약을 못하잖아요. 너무 아쉽고 슬프고 그렇다”면서 “내가 나이가 많아서 이제 다시는 못 만나지 싶어요”라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는 사이 “10분 후에 상봉을 끝마친다”는 장내방송이 나왔고 일부 남측 이산가족들은 펑펑 울면서 계단을 내려와 버스에 탑승했다.
북녘 동생과 상봉하는 아버지를 모시고 온 김옥희(54) 씨는 끝내 오열하며 상봉장에서 쉽사리 발길을 떼지 못했다.
결국 이번에 처음 보게 된 북녘의 삼촌 성길(66) 씨가 울지 말라고 달래고 내보낸 뒤 계단을 내려가는 조카의 뒷모습을 흐린 눈빛으로 배웅했다.
금강산 공동취재단=CBS 노컷뉴스 홍제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