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노컷뉴스

365명이 하루씩 '써서' 만든 기적…노숙인 자활기

문화 일반

    365명이 하루씩 '써서' 만든 기적…노숙인 자활기

    2015년 달력 만들기 '하루를 쓰다' 프로젝트, 그 뒷이야기


    [YouTube 영상보기] [무료 구독하기] [nocutV 바로가기]

    기사를 읽기 전에 꼭 ☞노숙인·연예인 등 365명이 손으로 하루씩 쓴 달력(2014년 11월 10일 자)를 보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나의 얼마 안 되는 돈을 ‘써서’, 적은 시간을 ‘써서’ 좌절해 있는 누군가에게 새로운 삶과 희망을 선물할 수 있다면, 당신은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정도 행동이 이러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니.’

    지금부터 하는 이 이야기는 지난해 365명이 하루씩 ‘써서’ 만들어 낸 기적에 관한 것이다.

    ◇ 보문동 한 만두 가게에 숨겨진 특별한 사연

    서울 성북구 보문동로 17길. 이 거리에는 9~13제곱미터(3~4평) 남짓한 작은 만두 가게가 약 2개월 전부터 운영 중이다.

    테이블도 없이 오로지 포장 주문만 가능한 이 가게의 이름은 ‘만두동네’.

    겉으로 보면 평범하지만, 여타 만두 가게에서는 접할 수 없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서울 성북구 보문로 17길에 있는 '만두동네'. (사진=김기현 PD / 노컷뉴스)

     

    이 ‘만두동네’는 365명의 하루씩이 모여 세워진 장소라는 점. 또한 이곳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이 노숙인이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예술인 최성문 작가가 노숙인의 자활을 돕기 위해 ‘하루를 쓰다’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최 작가는 하루의 소중함을 잊어버린 채 무의미하게 살기만 하고 있는 노숙인들에게 '하루'를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365명이 하루씩 정성스레 숫자를 써서 달력을 만든 뒤, 그 판매금으로 노숙인의 자활을 돕겠다고 구상했다.

    최 작가는 월별로 의미를 부여한 뒤 그룹을 정했다. 1월은 노숙인과 자원봉사자, 2월은 외국인 노동자, 4월은 문화예술인, 6월은 새터민, 10월은 광장 시민, 11월은 암환우, 다시 12월은 노숙인.

    이런 식으로 그룹 구상을 마친 최 작가는 무작정 해당 그룹의 사람들을 만나러 찾아갔다. 서울이고 지방이고 만날 수만 있다면 어디든 가, 숫자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시작할 때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최 작가의 주변 사람들도, 숫자를 써주는 사람도 '이게 뭔지 모르겠다' '안 될 것 같다'며 반신반의했다.

    '하루를 쓰다'에 참여한 사람들.

     

    하지만 최 작가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 열의는 놀라운 결과로 이어졌다. 프로젝트에 공감하는 몇몇 사람들이 기획자로 참여했고, 그 덕에 유명인들도 섭외하게 됐다.

    특히 신영복 교수,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캘리그래퍼 강병인과 이상현, 가수 악동뮤지션과 YB밴드, 배우 양동근과 이선균·전혜진 부부 등이 하루 쓰기에 동참하면서 달력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처음 요청했을 때는 응답조차 안 했던 사람들이 뒤늦게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다고 했을 정도다.

    ◇ 하루를 선물받은 김인직 씨 "나도 빨리 성장해 친구들 돕고 싶어"

    '하루를 쓰다' 달력을 판매해 약 1500만 원의 순수익을 얻었다. (총수입은 9700여 만 원)

    최 작가는 애초 약속대로 노숙인과 도시빈민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하는 ‘바하밥집’에 전액 기부했다.

    ‘바하밥집’은 이 돈을 기초자금으로 ‘만두동네’를 열었고, 노숙인 두 명을 종업원으로 채용했다.

    두 만두 초보들에게는 20여 년을 넘게 만두 가게를 운영한 70대 노부부가 재능기부 형태로 만두 빚는 기술을 전수했다.

    전문가에게 배웠다고 그 맛이 그대로 나올 리 없었지만, 쉴 새 없는 노력 끝에 지금은 자신들만의 만두 맛과 모양새가 나오기 시작했다.

    '만두동네' 종업원 김인직 씨가 만두를 빚고 있다. (사진=김기현 PD / 노컷뉴스)

     

    종업원 김인직(52) 씨는 노숙인이었던 과거를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고 말한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지만 빨리 삶이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떠냐고 물으니 “힘들게 행복하다”며 부끄러운 듯 웃음을 지어보였다. 매일 앉아서 만두를 빚고 찌는 일상이 힘들기는 하지만 마냥 좋기만 하다.

    그는 “내 손으로 만두 빚는 일을 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면서 “예의상 하는 말일지 몰라도, 만두를 먹은 손님들이 맛있다고 칭찬해 주시면 더욱 열심히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만두동네'에서 일한 지 2개월밖에 안 됐는데, 벌써 나름 만두 빚는 철학도 생겼다.

    “나는 만두가 아니라 꽃을 피우는 거라고 생각한다. 정성스레 빚어서 솥에 넣고 시간이 돼서 뚜껑을 열면 만두에서 빛이 난다. 마치 꽃 같다. 신선한 재료와 정성을 만두에 담아 예쁜 꽃을 피우려 한다.”

    김 씨에게 만두를 빚고 찌는 일은 한 송이의 꽃을 피우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사진=김기현 PD / 노컷뉴스)

     

    노숙인들에게 급식 봉사도 하고 있는 김 씨는 언젠가 자신이 지금보다 성장해서 노숙인 친구들을 제대로 돕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다. 아직은 자기도 자활 걸음마 단계이지만 지금처럼 하루하루 성실히 살다보면 언젠가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처럼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는다.

    기획자인 최성문 작가 역시 이러한 결과가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는 "이 모든 게 기적"이라며 동참해준 사람들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그는 "'하루를 쓰다'는 단지 노숙인의 자활이 목적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하루를 선물해주고 싶었다. 하루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며 "'하루를 쓰다'가 기획한 의도대로 참여한 사람들에게도 그 의미를 전달하고, 또 노숙인들이 자활할 공간을 만들어 내 좋다"고 했다.

    이어 "이 모든 일은 나 혼자 한 게 아니다. 여러분들이 같이 한 거다"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최성문 작가. (사진=김기현 PD / 노컷뉴스)

     

    ◇ '만두동네' 31일 정식 오픈 … "달력 구매자들 오셔서 만두 받아가세요"

    2개월 정도 운영을 한 '만두동네'이지만 정식 오픈은 오는 31일이다. 이날을 오픈 날로 잡은 이유가 있다.

    '하루를 쓰다' 달력을 구매하면 10월 31일은 공란이었다. 구매자도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그 공란은 달력 구매자가 숫자를 채워야 했다.{RELNEWS:right}

    때문에 이 오픈 행사 역시 달력 구매자들의 축하와 격려 속에 진행하기로 계획했다.

    '만두동네'는 이날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하루를 쓰다’ 달력을 가져온 선착순 100명에게 만두 도시락(1인분)을 제공한다. 중간중간 작은 음악회도 진행할 예정이다.

    김 씨는 "(오픈 날) 많이 오셔서 격려도 해주시고, 열심히 사는 나의 모습도 봐 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셔서 만두도 드시면 맛도 좋고, 흐뭇할 거다"고 했다.

    이어 "지금 바닥생활을 하는 분들이 나를 보면서 다시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도와주신 모든분께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