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MVP 먹었어' 두산 정수빈이 31일 삼성과 한국시리즈(KS) 5차전에서 우승을 이끈 뒤 시리즈 MVP로 뽑혀 부상으로 받은 KIA 자동차 K5에 오른 모습.(잠실=두산 베어스)
두산이 14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마무리된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한국시리즈(KS). 두산은 삼성의 사상 첫 5년 연속 정상을 저지하며 2001년 이후 통산 네 번째 KS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두산은 10월 31일 잠실에서 열린 삼성과 KS 5차전에서 13-2 대승을 거뒀다. 1차전 패배 뒤 내리 4연승하며 시리즈를 화끈하게 마무리했다. 프로 원년인 1982년과 95년, 2001년에 이은 네 번째 우승이다.
특히 두산은 2001년에 이어 다시 정규리그 3위로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4위와 준플레이오프, 2위와 플레이오프(PO)를 거쳐 KS까지 오르는 험난한 과정을 이겨낸 우승이라 더 값졌다. 공교롭게도 2001년에 이어 올해 KS 상대도 정규리그 우승팀 삼성이었다.
이번 시리즈 역시 수많은 사연이 있었다. 잇딴 부상에도 투혼을 발휘한 두산과 결전 직전 돌발 악재를 만난 삼성 등 승자와 패자 모두 할 말이 많은 KS였다. 그러나 올해 KS는 시리즈 MVP 정수빈(25)의 두 마디면 깔끔하게 요약, 정리할 수 있다.
▲"투수 3명 빠진 삼성, 뒷문 약해졌다"KS MVP에 오른 정수빈은 우승 뒤 인터뷰에서 상당한 의미가 담긴 말을 했다. 진한 감동과 동료애가 담긴 우승과 MVP 소감 뒤에 나온 발언이었다.
먼저 KS 상대 삼성과 관련한 한 마디. 정수빈은 "삼성 마운드 핵심 3인방이 빠진 게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을 받았다. 이에 정수빈은 일단 "우리도 워낙 타격 감각이 좋았다"고 운을 뗐다. 이후 "그러나 주축 투수 3명이 빠진 삼성의 뒷문이 많이 약해져서 그것도 우리가 우승할 수 있었던 한 원인이었다"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결전을 앞두고 도박 스캔들에 휘말려 한국시리즈 명단에서 빠진 삼성 윤성환(왼쪽부터)-안지만-임창용.(자료사진)
삼성은 KS 직전 주력 투수 3인방의 도박 파문이 일었다. 중국 마카오에서 최대 10억 원대 원정 도박을 한 혐의로 경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는 것. 결국 삼성은 한창 KS 대비 훈련이 진행 중이던 지난 20일 이들을 KS 명단에서 빼기로 결정했다.
25일 KS 명단이 발표되면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이들의 실명도 밝혀졌다. KS 명단에 오르지 못한 이름은 선발 윤성환과 중간 요원 안지만, 마무리 임창용이었다. 사실 이들 중 2명만 경찰 내사를 받고 있었지만 삼성은 모두 제외했다.
이는 KS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7승 선발 투수와 홀드왕(37개), 구원왕(33개)을 잃은 삼성은 최근 4년 연속 우승팀의 전력이 아니었다. 1차전에서 우여곡절 끝에 이기긴 했지만 선발 피가로가 무너졌고, 2, 3차전도 선발 장원삼과 클로이드 이후 마땅한 롱릴리프가 없었다.
무엇보다 4차전이 아쉬웠다. 삼성은 필승 카드 차우찬을 투입하는 초강수 끝에 3-4로 재역전패했다. 특히 9회 1사 만루에서 잇딴 내야 땅볼로 동점과 역전 기회를 날렸다. 약해진 투수진에 타선까지 반드시 쳐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렸고, 엷어진 마운드에 동점 작전을 펼 수 없었던 사연까지 있었다. 결국 삼성은 5차전도 3일만 쉰 장원삼이 등판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 우승컵을 내줬다.
▲"더 중요한 건 우리가 하나로 뭉쳤다는 것"하지만 더 의미가 있는 정수빈의 한 마디가 있었다. 우승의 원동력에 대한 질문에 정수빈은 "두산은 가을야구를 치르면서 하나로 똘똘 뭉쳤다"면서 "그 정신력으로 체력적으로 힘든 것, 부상도 잊었는데 2013년보다 2~3배는 더 뭉쳤다"고 강조했다.
'이 순간 진정한 원 팀!' 두산 선수단이 삼성을 꺾고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뒤 시상식에서 김태형 감독(앞 중간)에 대해 김현수(앞 오른쪽)와 양의지가 샴페인 세례를 퍼붓는 모습.(잠실=두산 베어스)
사실 두산은 KS에 진출하기까지 삼성보다 9경기나 격전을 더 치렀다. 넥센과 준PO 4차전과 NC와 PO 5차전 등 전쟁과 같은 험난한 여정을 넘었다. 정규리그와는 차원이 다른 체력과 정신력 소모가 이어진 경기들이었다. 체력적으로 한계가 이른 게 사실이었다.
부상자도 속출했다. 4선발이자 필승 롱릴리프로 꼽히던 스와잭이 준PO 1경기만 던지고 어깨 이상으로 낙마한 것은 애교였다. 투수 리드와 5번 중심 타자 역할을 맡은 안방마님 양의지가 PO 2차전 도중 상대 타구에 맞아 오른 엄지 발가락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었다. 공격 첨병이자 중견수 수비의 달인 정수빈도 KS 1차전에서 투구에 맞아 왼 검지 첫 마디가 찢어졌다.
하지만 정신력으로 극복해냈다. 양의지는 진통제를 먹고 출전해 PO 4, 5차전 빼어난 리드로 마운드를 이끌었고, 5차전에서는 홈런까지 쳐내 경기 MVP에도 올랐다. 아픈 몸으로 도루까지 시도했던 양의지의 투혼은 두산 선수단 전체를 감응시켰다. 팀 4번 타자 김현수는 "양의지가 저렇게 뛰는데 우리가 어떻게 열심히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PO에서 양의지였다면 KS에서는 정수빈이 투혼을 발휘했다. 6바늘을 꿰맨 정수빈은 2차전에 결장했지만 3차전부터 중견수 수비를 버리고 지명타자를 자청, 맹활약했다. 5차전 쐐기 3점 홈런 포함, 14타수 8안타 5타점을 올렸다. 5차전까지 치러진 KS에서 4경기만 출전하고도 MVP에 올랐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축하해요' 류중일 감독 등 삼성 코칭스태프(오른쪽 위)와 선수들이 10월31일 두산과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졌지만 상대 우승 시상식 때 도열해 축하해주는 모습.(잠실=삼성 라이온즈)
삼성도 변수가 있었지만 두산도 그 못지 않은 악재가 있었다. 하지만 두산은 놀라운 투혼과 단결력으로 고비를 넘어섰다. 무엇보다 넥센과 준PO 4차전에서 역대 포스트시즌 최다 점수 차 역전승(7점)을 만들어낸 뒷심은 무서울 정도였다. 만약 삼성이 마운드 3인방이 있었다 해도 우승을 장담할 수 어려웠던 이유일 터였다.
류중일 감독을 비롯한 삼성 선수단이 두산의 우승 세리머니 때 도열해 축하해준 까닭이다. 한국시리즈를 정리해준 MVP 정수빈의 두 마디, 그러나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 마디가 더 큰 울림을 주는 것도 같은 맥락일 테다.